• 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이선민 논설위원이 쓴 '지난 10년도 역사의 한 과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좌파와 우파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승부를 벌였던 대통령 선거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압승으로 끝나고 한 달이 지났다. 우파는 권력을 다시 찾은 기쁨 속에서 국정 운영 구상에 한창이고, 좌파는 예상을 넘어선 참패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좌에서 우로의 권력 반환을 지켜보며 지난 10년의 역사적 의미를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 진보·좌파가 정권을 잡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 이명박 차기 정부와 보수·우파는 그들의 유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전개됐던 '잃어버린 10년' '되찾은 10년' 논쟁은 이런 성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과 우파 지식인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경제대란·집값대란·실업대란·교육대란·안보대란·헌법대란의 '육란(六亂)시대'로 규정하면서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이에 대해 여당과 좌파 지식인들은 '건국 이후의 권위주의와 정경 유착을 벗어나서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성취한 시대'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선 담론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이 논쟁은 양쪽이 진전된 논리를 내놓지 못하고 네거티브 공세가 선거 국면을 압도하는 바람에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대선 결과를 보면 이 논쟁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명확하다. 압도적인 다수가 '잃어버린 10년'설(說)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 우파 진영은 그런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대통령직인수위를 앞세워 국가의 전면 재편에 나섰다. 경제·교육·남북관계 등 당면 과제들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앞 정권들이 한 일을 뒤엎는 개혁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년 특히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너무나 많은 국정 운영이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났던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은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지만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은 아니다. 지난 두 정권 시기를 우리 역사와 기억에서 몽땅 지워버려야 할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수십년 묵은 과제였던 지역 감정과 계층 갈등을 차례로 통과해 사회 통합이 크게 진전됐다. 보수·우파가 계속 정권을 잡았더라면 기대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여야의 평화적 정권 교체도 튼튼하게 자리를 잡았고, 사회 안전망도 많이 강화됐다. 오랫동안 권력의 단맛에 빠져 있던 보수·우파가 들판으로 밀려나 찬바람을 맞으며 자기 쇄신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도 성과다. 비록 권력의 무능과 고집으로 큰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사회 전체로는 체질이 한층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제 우리 사회가 1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싫든 좋든 그 동안 진행된 상당 부분을 '현재 상태'로 인정해야 한다. 국민은 지난 두 정부의 능력에 실망한 것이지 그들의 문제 의식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10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은 우파는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중요 가치로 부상한 평등·복지·평화를 자유·시장·안보라는 전통적 가치와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하는가라는 커다란 과제를 새로 안게 됐다.

    이런 난제를 지혜롭게 풀어가려면 '잃어버린 10년'이란 선거용 구호에서 벗어나 지난 10년의 대차대조표를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선진화'라는 새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 위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지난 10년을 부정하고 뒤엎는 방식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 정치권과 언론·지식인 사회는 지금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