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에 이 신문 이진녕 논설위원이 쓴 '논공행상 하더라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기수 씨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이다. 34세 때인 1980년 제 발로 상도동 진영을 찾아가 야인이나 다름없던 YS를 수행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28년째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YS는 청와대에 있던 5년간 그를 위해 수행실장(1급)이란 자리를 만들어 줬다. 

    대통령은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새 정권이 탄생하려면 김 씨 같은 사람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명박 당선인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수백, 수천은 될 것이다. 이제부터 정부 각료와 청와대 비서진을 비롯해 여러 요직에 대한 인사(人事)가 줄을 이을 테니 제각기 공(功)을 내세워 자리다툼을 벌이는 ‘내전’이 치열할 것이다.

    정권 교체에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이치는 마찬가지다. 그런 동기 부여가 없다면 누가 인생의 일부나마 투자할 것이며, 정치세력은 또 어떻게 형성될 수 있겠는가.

    어느 정권에서나 보은 인사는 있었다. 문제는 논공행상(論功行賞)과 자리 배치가 적절했는지, 뒤처리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여부다.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해 늘 말썽이 생기고, 욕을 먹는 것이다.

    당선인의 고민이 클 것이다. 주변 인물들의 기대도 채워 줘야 하고, 참신하고 능력이 출중한 인재를 발탁해 국민의 기대도 충족시켜야 하고…. 이럴 때 진짜 실력이 나타나는 법이다. 별다른 묘수가 없을 땐 나름의 원칙을 세워 그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무엇보다 논공행상이 공정해야 하고, 보은 잔치의 대상은 되도록이면 적을수록 좋다. 그래야 뒷말도 적을 것이고, 국민도 얼굴을 덜 찡그릴 것이다. 정옥자(국사학)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공신제도도 별다른 공이 없는 사람들까지 마구 상을 주는 바람에 폐해가 많았다”고 했다.

    아무리 공이 크고 당선인과 옆구리가 가까운 사람이라도 능력이나 인물 됨됨이를 고려해 감당할 수 있는 자리를 맡겨야 한다. 중간 관료 정도가 적당한 사람에게 대뜸 장관 자리를 준다면 당사자도 힘들 것이고, 결국 조직과 정권에도 해를 끼칠 뿐이다.

    도덕성 문제는 당선인 본인 때문에라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대선에서 국민은 다른 더 큰 가치를 위해 당선인의 도덕적 결함을 눈감아 줬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지도 모른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요직에 앉힌다면 그 화가 당선인에게 미칠 수밖에 없다. 측근들의 ‘비리 DNA’에 대한 관찰력도 필요하다.

    보은 인사의 결과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위세를 앞세워 거들먹거리거나, 부패에 관련되거나, 패거리를 짓거나, 맡은 바 소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할 땐 가차 없이 벌을 줘야 한다. 일단 공직을 맡은 공신들에게는 당선인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대해선 안 될 것이다.

    당선인이 정작 고심해야 할 점은 이런 보은 인사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선진화 정권’을 끌고 갈 인재를 어디서 어떻게 구하느냐는 것이다. 능력이 가장 중요한 잣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능력이 있더라도 행실이 지저분하거나, 이리저리 권력을 좇은 편력이 심하거나, 정체성이 불분명한 인물은 피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뒤탈을 남기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