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칼럼 ‘대선, 로또? 야바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 집에 살아도 시동생 성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남편과 시동생의 아버지가 달라서 혼란스럽다는 뜻일 터이다. 요즘이야 아버지 다른 형제자매들이 같이 사는 게 드물지 않아 그게 별로 흉도 아니다. 그래서 콩가루 집안을 가리키느라 만들어졌을 이 속담은 쓸모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요즘 (구)여권 인사들이 이렇지 않을까 모르겠다. 아니 시동생은 그만두고 제 성이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족보를 바꾸니 자기가 열린우리당 소속인지, 중도개혁통합신당 소속인지, 중도통합민주당 소속인지, 무소속인지 아니면 한나라당 소속인지 헷갈리지 싶은 것이다. 며칠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동지들을 만나 당신은 지금 무슨 당이냐고 묻는다 해서 웃을 일도 아니다.

    그렇게 난파선에서 미물들 탈출하듯 열린우리당에서 족보를 바꾼 인사들은 지난 4년 동안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고 있다. 많이 뱉으면 그럴수록 자신의 허물이 더 많이 벗겨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그런 주제에 또 편을 갈라 그 우물물을 더 많이 마신 당신들과는 같이 못 가겠다며 삿대질을 해댄다.

    그러나 기자의 눈엔 족보를 바꾸고 편을 갈라 침을 뱉으며 삿대질을 해대는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족보를 지키고 있는 인사들까지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지금 (구)여권 인사들의 새판 짜기가 모두 눈속임의 야바위 짓 내지는 위장전입으로밖엔 안 보인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은 티격태격하면서 바람을 잡지만 초등학교 졸업식 때 불렀던 노래처럼 멀지않아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다시 한 지붕 밑에 모일 게 틀림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인사들이 이처럼 선명성과 노선에 큰 차이나 있는 양 허풍을 떨면서 삿대질을 하는 건 새판을 짜는 데 주도권을 잡아 선거 때 더 많은 배당을 받겠다는 속셈 이상 아무 것도 없다. 기껏해야, 한 집안 식구가 된 뒤 대선 때 자파 후보를 내세워 운 좋게 당선되면 더 말할 나위가 없으려니와 당선이 안 되더라도 그 여세를 몰아 당권을 잡고 내년 총선 때 공천과 득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다 합쳐도 한줌이 될까 말까한 이들이 동냥아치 자루 찢듯 이렇게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삿대질을 해대며 자기들만의 리그전을 펼치는 건 그나마도 구심점이 될 만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지지율을 막대그래프로 나타내면 돋보기나 써야 보일 정도다. 이처럼 구심점이 없고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그만그만하니까 면장 자리도 아까운 인사들까지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져 (구)여권의 후보만 15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기야 이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대통령직도 로또복권쯤으로 여겨 망둥이까지 뛰는지 모른다. 정권 초에 대통령 인사 보좌관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이가 장관과 같은 정무직을 로또복권처럼 본인의 복이나 운이나 시대적 흐름과 맞아떨어지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갈파’한 일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실제로 지난번 대선에서의 승리를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개도 했는데 나라고 못하겠느냐는 배짱이 생겼을 법도 하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로또복권 추첨하듯 대통령을 뽑아서는 안 된다. 복이나 운에 기대 대통령이 되겠다는 한탕주의에 당해서는 안 된다. 잘 봤다 못 봤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는 야바위에 속아선 안 된다. 잘못했으면 선거에서 상응한 값을 치르도록 하는 게 책임정치다. 이에 맞서는 쪽도 자살골을 먹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고.

    성 모르는 시동생들과 한 집에 사는 게 흉 안 되는 세상이라지만 족보를 바꿔가며 근본없이 떠도는 야바위꾼을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