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은 바야흐로 대선정국으로 접어들었다. 17대 대선을 7개월 앞둔 시점에 정당정치의 위기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공당과 사당’, ‘전국정당과 지역정당’의 논쟁이 한창이다.

    한나라당은 이명박당 대 박근혜당의 대치구조로 재편되어 급기야 “이 당은 박근혜당도, 이명박당도 아닌 한나라당”이라는 홍준표 의원의 비판이 나왔으며, 여권내부의 권력투쟁도 점입가경으로 접어들어 노대통령과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의 대립전선에는 상대방을 죽이려는 살기마저 느껴진다.

    대선과 총선이 4개월 차이로 치러지는 정치 일정이 이와 같은 현상을 잉태한 면이 있지만, 정치권은 좀 더 냉정해 져야 한다. ‘정권쟁취 이전에 국리민복과 나라의 선진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번 17대 대선은 ‘대선 열국지(列國志)’가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된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명박·박근혜 중 누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경선에서 패배한 진영은 총력전을 펴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래서 정권교체의 꿈이 물거품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범여권은 아직도 모든 정파를 아우를 수 있는 절대적인 ‘카리스마’의 출현이 요원하기 때문에 모든 세력들을 움직일 수 있는 내부 동력이 부족하다. 후보 단일화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걸겠지만 사정은 한나라당보다 더 궁핍한 것은 속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건 범여권이건 ‘정당정치가 실종되었다’는 것은 환갑을 바라보는 헌정 60년 한국정치의 일대 위기이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당이 정강·정책과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선룰을 놓고 파국 직전까지 몰렸던 한나라당이 벼랑끝 타협으로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 이명박·박근혜·강재섭 3인의 지도자가 개인의 유불리(有不利) 보다는 당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린 결과이다.

    그러나 ‘큰 틀의 합의’는 이루었지만, 복격적인 세부각론은 ‘산너머 산’이 될 전망이다. 당직개편, 사고지구당 정비, 여론조사 기법 등과 경선관리위원회·국민검증위원회 구성 등 산적한 현안들이 ‘강재섭 대표 체제’를 또 다시 시험할 것이다.

    논어(論語)에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면 의리에 맞는지를 생각하고, 위태함을 보면 목숨을 내던진다)이란 대목이 있다. 당이 어려울 때 구당파(求黨波)들이 앞을 다투어 나서야 하건만, 한나라당 중립성향 의원들조차도 당직취임을 고사(固辭)한다는 보도가 있다.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은 이·박 양 후보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중립지대에 지금보다 더 많은 의원들과 원외 위원장들이 모일 때 가능할 것이다. 이들만이 후보의 입장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고, 경선의 공정성을 담보하며,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립지대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이·박 양 캠프가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고, ‘대세론(大勢論)’ 등으로 당이 어느 한 쪽으로 급속히 쏠리는 현상을 막아야 경선 이후의 후유증을 극소화할 수 있는 법이다. “흥행이 되지 않는 장사는 이문을 남길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차제에 “줄 세우기가 너무 심했다”는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 내정자의 충고도 한나라당 당원들은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여야 정치인 공히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권 후보에게 줄서는 것 보다 ‘당에 줄서고 충성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각 대선 캠프는 선거대책본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원만 보유하고 나머지는 당에 복귀시켜 달라”라고 한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향후 국민들은 소용돌이 치는 대선정국의 흐름과 난무하는 후보들의 부침에 관심을 보이기 보다는 여야 정당의 정체성과 지난 4년 3개월에 대한 냉정한 평가, 그리고 대선주자들의 애국심과 원칙을 지키는 행보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