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정말 희한한 '집권 5년차'>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 해는 네 계절을 갈아타며 돈다. 인생은 유년, 청년, 장년, 노년기를 차곡차곡 밟아간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대통령 임기인 5년 단위로 한 주기가 만들어진다. 집권 1년차, 2년차, 3년차, 4년차, 5년차마다 특유의 풍경이 있다. 어느 정권이나 비슷하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모양이다. 노무현 정권이 바로 그 예외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집권 첫해 하늘이라도 꿰뚫을 듯 치솟는다. 그러다 서서히 낮아져 집권 마지막 해엔 바닥을 친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첫해 지지율은 연말까지 60%선을 지켰다(김영삼 59.1%·김대중 62.8%, 이하 갤럽조사).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3년 12월 지지율이 22.3%까지 곤두박질쳤다. 당시 “정권 말기현상이 4년 앞당겨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집권 5년차는 전혀 다른 줄거리다. 김영삼 대통령의 1997년 4월 지지율은 8.8%, 김대중 대통령의 2002년 4월 지지율은 23.4%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4일 지지율이 29.8%였다. 일부 조사에선 30%가 넘는 결과도 나왔다. 집권 5년차 지지율이 집권 첫해 지지율보다 높은 대통령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집권 5년차엔 여권(與圈)의 주인공이 바뀌는 법이다. 대통령은 무대 중심에서 비켜서고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가 그 자리를 꿰찬다. 5년 전 오늘, 집권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 8주 일정 가운데 5주째를 마친 상태였다. 민주당 후보는 ‘노무현’으로 거의 확정됐다. 노 후보는 ‘코드가 맞는’ 한나라당 의원 영입 계획을 밝히는 등 여권의 주연 역할을 하고 있었다.

    10년 전 요즘 무렵엔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비리 의혹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김 대통령은 ‘뒤뚱거리는 오리(레임 덕)’ 정도가 아니라 ‘식물’ 상태였다. 집권당인 신한국당에선 이회창 대표체제가 출범했다. 힘의 중심이 이 대표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었다.

    그러나 2007년 4월 집권 세력에선 대선 후보의 희미한 윤곽조차 잡히지 않는다. 여권 후보가 언제 정해질지 스케줄도 나와 있지 않다. 8월 한나라당 후보 경선 이후 어느 시점이 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추측이 있을 뿐이다. 여당 출신 주자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10%가 안 된다. 이들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릴 리 없다. 봄 여름을 지나 찬 바람이 불 무렵까지 여권에선 대통령의 독주가 계속될 전망이다.

    일반적인 집권 5년차라면 정치권에서 ‘대통령 때리기’가 유행처럼 번진다. 야당은 대통령 집권 4년에 대한 심판 분위기를 대선까지 끌고 가려 한다. 대통령 앞에 납작 엎드렸던 여권도 유력 주자 중심으로 대통령 격하운동에 돌입한다. 그러나 노 정권에서 ‘대통령 때리기’는 정권 중반기 인기 품목이었다. 집권 5년차엔 너무 식상한 메뉴가 돼버렸다.

    집권 5년차 대통령은 4년차까지 얻은 득점을 굳히는 데 주력한다. 4년차까지 벌어놓은 점수가 없는 노 대통령은 집권 5년차에도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미 FTA라는 ‘한 건’을 터뜨렸다. 경기 운영방식을 180도 바꾼 덕이다. 우파 논객들이 대통령의 결단을 치켜세우는가 하면, 좌파 진영에선 정권 타도 구호가 들린다. 여야 대치 전선이 완전히 헝클어졌다. 정치권은 피아 식별이 안 되는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부 기자는 보통 5년 경력이면 풍월을 읊는다. 대통령 임기 한 사이클을 겪고 나면 정치권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5년차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처녀림이다. 하루 하루가 매일 새롭다. 한 달 후, 두 달 후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아무도 점칠 수 없다. 노 정권이 열어 가는 전인미답의 길을 온 국민이 스릴을 맛보며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