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최보식 기획취재부장이 쓴 '영혼을 버린 전직 언론인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이 ‘국정홍보처’를 폐지하겠다고 했을 때, 그 결연한 뜻을 의심하는 바 아니나, 솔직히 웃음이 나왔다. 정말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한 번 더 야당 할 셈인가. 이번 대선에서 이기는 경우는 계산을 않는다. 지금의 국정홍보처를 없애면 어디서 이만한 정권의 수문장을 찾을 수 있을까. 혹 이를 없앤 다음, ‘정권홍보처’로 아예 문패를 바꿔 달아 훨씬 강력하고 노골적인 놈을 만들겠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러니 한나라당의 ‘폐지’ 으름장에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작년 이맘때쯤 한나라당 소속 A지사가 국정홍보처를 방문했다. “항의하러 왔던 게지”라고 지레 짐작하면 하수(下手)다. 당시 언론의 ‘비협조’에 폭발 직전이었던 그는 한 수를 배우러 왔던 것이다. 그는 국정홍보처의 언론대응 시스템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전한다. 정치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늘 이런 것이다.

    장담컨대 다음 정권이 등장하면 홍보처의 조직과 인력·예산은 더욱 늘어나고 권력자의 총애는 더 두터워질 것이며 위세로는 모든 정부 기구를 장악할 정도가 될 게 틀림없다. 과거 안기부가 음지(陰地)에서 정권 보위의 방패 노릇을 했지만, 이제는 국정홍보처가 환한 대낮에 그런 역할을 맡게 됐음을 자각해야 한다.

    또 당연한 말씀이 되겠지만, 국정홍보 책임자는 역시 감(感)을 빨리 잘 잡는 언론인이 제격이다. 그전에는 막연히 느낌만 갖고 있었으나 현정권을 겪으면서 확실해졌다. 기사에는 즉각 반론이나 정정으로 대응하고, 법적 소송을 벌이고, 공무원 기고와 인터뷰를 금지시키고, 취재에는 불응케 하고, 전 공무원을 동원한 대응홍보매체를 만드는 노하우는 어느 선진국의 정부기관도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이는 언론의 속성을 아는 언론인 출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눈부신 역할은 계속된다. 몇 달 전 노무현 대통령은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 기사의 흐름을 주도하고 담합한다”고 터뜨렸다. ‘통일부 남북정상회담 올해 추진’이라는 기사도 그 심기를 건드렸던 것 같다. “언론이 있지도 않은 정상회담까지 꺼내서 ‘그거 대선용 아니냐’라고 몰아치고 시비한다”는 것이었다. 청와대 386의 사조직이 정상회담 밀사(密使)로 등장하는 요즘 뉴스를 보면 그때 그렇게 속된 표현을 안 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사소한 팩트 한 개를 확인하기 위해 날밤 새우는 언론사 밥을 먹어봤다면, “죽치고 담합한다”는 발언이 얼마나 현실에 동떨어졌는지 안다. 대통령이 그걸 모른다면 적어도 언론인 출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간언해야 옳다. 자신들도 기자 시절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대통령 발언 직후 홍보처는 “브리핑실이 많고 송고실은 출입기자실화되고 있다”는 발표를 내기 위해, OECD 회원국의 기자실 운영실태를 조사하는 법석을 떨었다.

    얼마 전부터 공기업의 광고 집행까지 국정홍보처가 통제하기 시작했다. 어떤 신문에 얼마 크기의 광고를 할지 등을 보고케 한 것이다. 효율적인 전자시스템은 홍보처 책상에 앉아 클릭 한번으로 이 모든 것을 한눈에 감독할 수 있게 한다. 비판신문으로 찍힌 조선·동아·문화에 정부 정책 광고가 안 실리는 마당에, ‘간 큰’ 공기업이 생길 리 없다. 이런 기발한 발상이 모두 언론인 출신에게서 나왔다.

    기자직은 과거처럼 ‘평생 쟁이업’이 아니다. 설령 그렇게 주장한들 칼날 같은 현실이 밀어내고 있지만. 내 중년 나이는 기자직을 떠나는 선후배들의 ‘밥’을 위한 선택을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젊은 시절 소중하게 여겼던 국민의 알권리와 자유언론에 반하는 행위를, 정치권력에 언론을 예속시키려는 짓을, 너무나 손쉽게 하는 이들은 아직 이해 못하겠다. 밥벌이도 정도껏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