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칼럼 '이명박은 생각하지 말라니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청계천이 복개되지 않고 그냥 있었다면 이명박은 뭘 했을까.” 누군가 퀴즈 내듯 물었다. “그야 거꾸로 청계천을 복개했겠지.”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맞다.” 우리는 웃었다.

    뭔가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의 경상도 식 표현으로 ‘하고잡이’라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스타일을 놓고 오간 우스갯소리다. 그러나 이는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그가 단순히 우스갯소리의 소재를 제공한 차원을 넘어 대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국민의 관심과 이슈를 선점했음을 말해주는 예다. 그는 청계천의 여세를 몰아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 건설 계획 등으로 아직까지 대선 정국의 중심에서 논쟁을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 봄 국회의원들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을 애독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미국의 조지 레이코프라는 언어학자가 쓴 책으로, 미 대선에서 민주당이 계속 패하는 것은 공화당(코끼리)이 마련한 틀 위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슈)로 싸우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 같은 선거 전략서까지 독파한 정치인들, 이른바 한다 하는 선거 기술자들이 책에서 배운 대로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그렇게 충고했는데도 오히려 코끼리를 좇아가며 소리를 질러 흥행을 도와주고 있는 모양새다. 대권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 전 시장이 만든 틀 위에서 그가 사용하는 언어로 싸우고 있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은 이 전 시장에 대해 네거티브 캠페인(흠집 내기 운동)을 펼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 1탄으로 이 전 시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따라하기를 선거 전략으로 이용하고 있으나 이는 패착이자 퇴행적 성형수술이라고 비판했다. 또 좀처럼 남의 말을 하지 않는 고건 전 총리도 “깜짝쇼식 토목사업으로 미래와 경제를 개척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청계천 및 대운하 사업을 겨냥했다. 같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까지도 운하 사업을 비판하고 이 전 시장이 아직 검증받지 않은 인물이라는 투의 발언을 하고 있다.

    이처럼 경쟁자들이 책에 있는 정석을 벗어나 변칙 플레이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정석으로 대응해선 안 될 만큼 사정이 절박하다는 반증이다. 갈수록 이 전 시장과의 지지율 격차가 커지니 초조해지고,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유력한 후보의 사람됨과 공약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건 꼭 거쳐야 할 과정으로 그 자체에 긍정적 측면도 없진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선거 전략 면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코끼리는…’이 갈파하고 있듯이 상대방의 이슈를 가지고 싸우는 건 축구에서 상대방의 홈그라운드에서 하는 시합, 즉 어웨이 게임과 마찬가지다. 또 다수의 경쟁자가 한 사람만 공격하는 건 의도와는 달리 그가 가장 유력한 주자임을 홍보해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경우 지난번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진영이 재미를 봤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러나 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일 뿐 아니라 이번 선거에선 지난번의 학습 결과로 유권자들을 식상케 할 것이어서 상대방을 한방에 쓰러뜨릴 정도가 아니면 오히려 자해행위가 될 우려가 없지 않다.

    따라서 경쟁자들은 앞선 주자를 비난, 견제하기보다 온 국민을 논쟁 속으로 몰아넣을 만큼 큰 이슈를 던져 스스로 코끼리가 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만든 틀 위에서 자신의 언어로 싸우도록 상대방을 유도함으로써 선거를 자기 페이스로 끌고 가라는 얘기다.

    하기야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자고 해서,또 스스로 코끼리가 되자고 해서 그게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