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고백해라. 참 어리석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에 대한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깊은 아쉬움이 배인 말이다. 김 교수는 최근 ‘조국근대화론 대 대중경제론’이란 제목의 학술논문을 통해 DJ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져 왔던 ‘대중경제론’은 원래 좌파 경제학자인 박현채 전 조선대 교수의 대필이었으며, 1980년 이후 DJ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박정희식 발전모델’을 인정하는 쪽으로의 화려한 ‘변신’을 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일본 큐슈대학 객원교수로 일본에 머물고 있는 김 교수는 최근 뉴데일리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대중경제론 출생의 비밀에서부터 그 이후의 변신 과정까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간간히 DJ에 대한 아쉬움섞인 쓴소리도 서슴치 않았다.

    김 교수는 “대중경제론은 지난 71년 대선에서 DJ가 처음 들고 나온 것이 분명 아니다”고 단언했다. 1966년 민중당이 ‘대중자본주의’ 개념을 제시했고, 이것이 그 뒤 대선에서 윤보선 유진오의 공약으로 이어졌지만 두 사람의 낙선으로, 69년부터 DJ가 자신의 이름으로 대중경제론을 만들어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중당이 대중자본주의 개념을 만들 당시 DJ가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경제론의 지적소유권이 DJ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김 교수는 분명히 했다.

    김 교수는 “69년부터 71년까지 김대중 이름으로 대중경제론에 관한 논문이나 책자가 세 개(▲김대중씨의 대중경제 100문100답(71년) ▲경희대 석사논문(69년) ▲신동아 기고문 ‘대중경제론을 주창한다’(69)) 나오는데 그것은 모두 박현채 전 교수가 써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김 교수는 71년 대선을 앞두고 출간된 ‘100문100답’이 박 전 교수가 대필했다는 증언이 있었던 데다가, ‘100문100답’의 제1장(대중경제의 이론)과 DJ가 제출한 석사논문의 제4장(한국적 대중경제론의 구상)은 거의 같은 내용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한국경제의 실상을 부문별로 비판하는 석사논문 제3장의 내용도 71년 책의 제3장부터 9장에 분산된 채 포함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박 전 교수는 한 문장이 한 단락을 이룰 정도로 글을 길게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대중경제의 이념이나 원리 등 이론적인 내용을 다룬 부분에서는 ‘박현채식’ 독특한 문체 스타일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김상현, DJ가 말 안해 줄거야"

    김 교수는 이어 “혹시 ‘대중경제론’이라는 최초의 말 자체는 DJ가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를 확인하려고 DJ와 면담을 신청했으나 만나주지 않더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래서 측근인 김상현씨를 만나서 얘기했더니,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확인할 수가 없다. DJ가 제대로 말을 안 해줄거야’라고 말했다”고 연구 당시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어 박 전 교수의 대필인, DJ의 대중경제론은 80년대 이후 박 전 교수를 일부 급진적 경제학자로 전락시키는 등의 부정을 통해 그렇게도 싫어하던 ‘박정희식 발전모델’을 인정하는 쪽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고 설명했다. 대중경제론은 80년대 전반 DJ 도미 당시 첫 번째 변신을 하며, 97년 대선을 앞두고 또 한번 옷을 갈아입었는데, 변신할 때마다 본래 지녔던 민족주의적 성격이 옅어져갔다는 것이다. 1971년 ‘대중경제 100문100답’에서 조국근대화론을 공격하는 근거로 삼았던 폐쇄적인 내포적 공업화론을 1986년 유종근씨의 도움을 받아 다듬어 출간한 ‘대중경제론’과 1997년 ‘대중참여경제론’에서 스스로 부정했고, 더 나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조국근대화론의 수출지향산업화를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인정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변신'을 “대필한 박 전 교수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면서 DJ에 대한 못마땅함을 내비쳤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런 변신은 애초 대중경제론을 집필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배반’의 과정이었지만 조국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투항’의 과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면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변신은 박정희와 김대중의 ‘화해’ 과정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DJ, 스스로 역사적 평가 더 높게 받을 기회 놓쳐" 

    김 교수는 “박정희를 그렇게 인정했다면,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그가 이룩한 발전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추진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다면 지금의 보수 대 진보간 갈등도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남남갈등 이념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박정희는 죽었고, 김정일은 우리의 영향력 바깥에 있는 사람이다. 갈등을 줄여 화합과 통합으로 나가게 할 살아있는 변수는 DJ"라면서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박 전 대통령과 가까워질수도 멀어질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이 참된 지도자가 아니냐‘고 아쉬워했다. 김 교수는 “지금이라고 솔직히 인정을 하면 호남만의 지도자가 아니라, 전국적인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데 참 어리석다”며 “스스로 역사적으로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