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시절에 나는 미술시간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림솜씨도 없을 뿐 만 아니라 유명화가의 그림을 보아도 별 느낌이 없을 정도로 미술작품에 무관심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의 두 딸들은 누굴 닮았는지 그림그리기 등등 미술을 무척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화실에 가서 그림을 배우고 있는데 가끔 유명화가의 그림을 공부하고 따라 그려보는 시간이 있다. 그래서 그런 주에는 공부할 화가와 그림을 함께 고르게 된다. 그렇게 종종 화가와 그의 그림을 접하다 보니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점차 생겨나고 작품을 보는 눈이 조금은 생기는 것 같다.

    최근엔 강원도 양구 출신 화가 박수근에 대한 공부를 한다고 하여 그의 그림을 고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 유난히도 나무가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내가 나무와 숲을 다루는 산림공무원이라서 그런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나무들에 대해 남다른 정감이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에게 나무는 맑은 공기와 목재를 제공해 주는 존재이지만 박수근에게 나무는 예술적 영감을 주는 정신적인 존재였던 것 같다.

    박수근화백은 왜 그 많은 그의 작품에 나무를 등장시켰을까. 검색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져보니 “박수근의 풍경은 나무에서 시작된다. 그의 풍경화에 나무가 없으면 별 의미가 없다. 풍경 속에 나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풍경 그 자체이다.”라는 누군가의 글이 발견된다. 또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 박수근’이라는 어린이용 도서도 있다.

    그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나름대로 그의 그림을 감상한 느낌을 정리해 본다. 박수근의 화면에 등장하는 계절은 이른 봄이나 겨울이다. 따라서 풍경의 핵심이 되는 나무 역시 이른 봄이나 겨울의 나무들이다. 주로 잎이 떨어진 나무로 등장하지만, 이른 봄의 나무에선 때때로 푸른 새잎이 돋아난 모습도 발견된다. 나무와 함께 서민생활을 하는 여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같은 화폭에 서민들과 대등하게 나무를 등장시키고 있는 화가는 서민들 삶의 애환과 동시에 봄이 되어 새 잎이 나기를 기다리는 나무를 통해 삶의 희망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우리의 삶의 동반자적인 관계로서 등장시켜서 서민들의 힘겨운 삶의 무게를 조금 덜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는 그림속의 나무가 박수근 화백 본인은 아닐까. 나무처럼 새 봄의 희망을 품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말엔 늦가을 정취를 물씬 풍길 배후령 고개(춘천~양구)를 넘어 ‘박수근 미술관’(강원도 양구 소재)에 가서 나무가 되고 싶었던 화가 박수근을 만나고 싶다. 그의 그림 속 나무들과 내 삶의 무게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