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인 김진홍 목사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독일 작가 안톤 슈나크의 글이 생각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의 글이다. "…비 오는 날 비오롱의 가락 긴 흐느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는 한 구절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요즘 들어 뉴스를 보노라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장면들을 접한다. 시위대에 죽봉으로, 쇠파이프로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경찰들을 볼 때다. 그럴 때면 이런 나라에 세금 내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슬프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지금 세계에서 경찰이나 군인이 시위대에 매 맞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더욱이나 그렇게 매 맞고도 말도 못한 채 쉬쉬하는 나라가 또 있겠는가?

    지난 한 해만도 1000여 명의 경찰이 시위대에 매 맞아 중경상을 입었다. 팔이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고 허리디스크가 생기고, 심지어 죽창에 찔려 눈이 멀게 된 경우까지 있다. 지금도 경찰병원에는 시위 현장에서 부상한 전경들이 숱하게 입원 중이다. 그들 중 고군(20세)은 지난번 경찰 차 3대가 불탄 여의도 농민시위에 나갔다가 시위대 한가운데 갇혀 쇠파이프로 허리를 맞고 몸을 짓밟힌 뒤 허리디스크로 누워 지내는 경우다.

    GM대우 창원공장 앞에서 매 맞았던 창원중부서 한 경사의 경우도 있다. 보도된 그의 말을 인용해 보자. "노조원들이 전경대원을 끌어내 헬멧을 빼앗고 폭행하기 시작했다. 젊은 애들이 맞고 있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폭행하고 있는 노조원의 마스크를 벗겼다. 이 순간 노조원의 주먹이 날아왔다. 도로 위에 떨어진 안경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자 수명의 노조원이 달려들어 폭행했다. 도로변 인도 쪽으로 5m나 끌려가다 옷이 벗겨졌다…." 문제는 이렇게 맞고도 쉬쉬하고만 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듣기로는 지난해 말 과격 시위 도중 농민 시위대의 한 농민이 죽게 되자 그 책임을 물어 임기가 1년이나 남은 경찰청장을 강제 사퇴시킨 이후부터 경찰의 '쉬쉬병'이 더 심해졌다는 소문이다. 그 뒤로 시위 현장에서 부하대원들이 쇠파이프로 맞고 있는 현장에서 경찰 중간 간부들이 뒤에서 "차라리 그냥 맞아라. 맞아!" 하고 고함친다는 것이다. 결국 시위대에 경찰이 짓밟히는 원인을 정부가 제공한 셈이다.

    시위의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 시위대가 허락된 지역에서 나와 경찰선을 벗어나거나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서는 경우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초강경 대응을 한다.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현장사살까지 허용된다. 일본에선 시위대가 경찰관을 폭행하면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으로 강제연행하는 게 관례로 돼 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과격 시위를 잠재웠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노조원들의 시위가 법 질서의 테두리를 넘어서자 기마경찰대를 보내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몇 명이 부상했다. 후에 노조운동 지도자들이 총리를 방문해 항의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잘못했군요.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기마대가 아니라 탱크를 보내겠어요. 노조든 누구든 법 질서를 어기는 것을 방치한다면 민주주의는 사라지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다. 민주사회에서 법 질서가 지켜지지 않게 되면 손해 보는 것은 시민들이다. 지금 우리 경찰은 옛날과는 다르다. 지난날 부패 경찰의 오명도 벗어나게 되었고 수준 역시 두드러지게 높아졌다. 일선 경찰관들의 수고와 헌신은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강력범 검거 실적이나 마약단속 실적 같은 경우는 세계가 알아주는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 국가나 시민들이 그들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가 바뀌지 않는다면 경찰 자체만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경찰의 사기를 높여 줘야 한다. 비록 월급은 많이 주지 못 할지라도 명예만이라도 높여 줘야 한다. 그리고 수고에 걸맞은 칭찬과 격려가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시민을 보호해 주는 지름길이 되지 않겠는가! 김진홍 두레마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