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노트북을 열며'란에 이 신문 김종혁 정책사회 데스크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나갔던 것이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 직전이었다. 정확히 3년 만에 돌아온 셈인데 서울은 참 많이 변했다. 우선 거리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다.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건넜던 시청앞 횡단보도는 생소했다. 수십 년간 시청앞을 항상 지하도로만 다녔던 기억 때문이리라.

    한참을 걷다 시청앞 광장 불빛 아래 적잖은 인파가 빠른 속도로 밀려다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무슨 시위를 하나"하고 의아했다. 다가가 보니 인공 스케이트장을 메운 사람들이었다. 뉴욕의 명물인 록펠러 센터 앞 스케이트장을 본뜬 게 분명했지만 보기 좋았다.

    청계천이 상전벽해가 된 것도 적어도 나에겐 새로웠다. 전태일이 분신했고, 청계피복노조 여공들과 영세 상인들의 애환이 서렸던 청계천은 과거의 아픔을 넘어서, 이젠 확실하게 서울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듯했다. 여기저기 세워진 미국의 대중 음식점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와 스타벅스 커피숍에 손님들이 북적대는 것도 낯설었다. 한순간 "내가 정말 한국에 돌아온 게 맞나"하는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외양보다도 더 서먹하게, 그리고 더 많이 변한 건 사회 분위기다.

    승용차를 아직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버스·지하철·택시를 많이 타고다녔다. 그래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기자 정신을 되살려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모두의 대답은 놀랄 만큼 유사했다.

    "30~40분쯤 빈차를 몰고 다니면서 한 30km쯤 헤매야 간신히 손님 한 분을 태웁니다. 세상이 얼마나 각박해졌는지 아세요? '세상 살기가 무섭다'고 하소연하는 손님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P운수 택시기사 서모씨)

    "국민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그 사람들, 허구한 날 자기들끼리 모여 과거사만 파헤친다고 안혀? 다음 정권에선 그 사람들이 했던 일도 반드시 파헤쳐야 혀."(지하철에서 만난 70대쯤으로 보이는 노인)

    "우리 사회에선 신바람이 사라졌어요.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은 모든 게 제대로 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 (방송국 직원 L씨)

    워싱턴에 있을 때에도 여론조사를 통해 노무현 정부가 인기가 없다는 기사는 많이 읽었다. 어찌 된 일인지 참여정부에서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진다는 보도도 많이 봤다. 하지만 3년 만에 돌아온 서울의 거리에서 확인한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였다.

    1979년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 후보는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과 맞붙었다. 그를 승리로 이끌고 간 결정적인 구호가 있었다.

    "국민 여러분, 당신들은 4년 전보다 지금 더 행복합니까?"

    만일 지금 누군가 국민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어쩌면 노무현 정부와 사이가 안 좋다는 우리 사회의 상위 20% 계층만이 "나는 더 부자가 됐고 더 행복해졌다"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김대중 정부 말기에 청와대를 출입했었다. 대통령의 승용차가 집무실을 떠날 때면 멀리 떨어진 비서동에 있는 직원들까지도 복도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일단 대통령이 되고나면 현실과 금방 차단되는 게 우리네 정치문화다.

    노 대통령은 과거에 386의 젊은 동지들과 맞담배를 피우면서 세상을 논했다. 젊은 세대는 그를 '노짱'이라고 부르며 환호했었다. 집권 3년이 넘어선 '노짱'은 아마 청년 실업자들이 넘치고, 양극화가 심각하고, 노숙자들이 득시글댄다는 보고서는 많이 받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노짱'이 지금도 서민들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노짱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님은 3년 전보다 행복해지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