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정부를 ‘건달 정부’라고 비판했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2일 한국의 대북지원 정책에 대해 “자기 생존을 위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강화하는 길 이외에 다른 선택지란 없다는 김정일의 의도를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다”면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해 북한의 정책에 영합한 책임을 물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 교수는 이날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엔케이’에 기고한 ‘북한의 개혁개방은 한국정부의 미련일 뿐’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같이 말하면서 “북한에는 현재 개혁개방을 허용할 여지가 없다. 6․15남북공동선언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북한은 완전한 고립상태에서는 그 존립이 불가능하므로 변화된 자세로 대외접근을 시도할 것”이라면서 6․15남북공동선언의 폐기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안 교수는 “6.15남북공동선언이후의 6년간의 경험은, 한국정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한국 및 미국간의 화해협력을 결과하지 못했다”면서 “한국정부는 이 갈등을 냉전세력의 방해의 결과로 인식하는 듯하나, 실제로 그것은 북한정부가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야기된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북한주민의 기아와 노예화의 결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또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북한의 체제변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면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발생케하는 근본에까지 소급해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대북지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현 북한 정부의 존립이 북한정부와 북한주민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는 명분으로 돼서는 안 된다”면서 “그러나 북한주민의 기아를 완화하기 위한 지원은 그 분배의 투명성이 검증될 수 있어야 하며 북한 정부에 대한 지원에 있어서는 검증과 상호주의라는 원리원칙이 준수돼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

    북한의 개혁개방은 한국정부의 미련일 뿐이다

    안병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머리말

    북한의 개혁개방與否(여부)는 한국의 대북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북한의 개방개혁을 어떻게 前提(전제)하는냐에 따라, 남북관계가 냉전관계냐 화해협력관계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간의 남북관계의 전개도 이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20세기말까지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냉전체제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으나,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전망된다고 전제하고 화해협력정책이 試圖(시도)되어 왔다.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지금까지 추구되고 있는 햇볕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개혁개방이 어떻게 하여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가능케 하는가. 그것은 개혁이 북한에 있어 시장경제의 정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의 시장경제의 도입은,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체제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북한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적 세계시장권 밖에서는 존립할 수 없게 한다. 따라서 그것은 북한경제와 세계시장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것은 바로 북한과 한국 및 미국과의 협력으로 直結(직결)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북한의 개혁개방은 북한, 한국 및 미국간의 협력관계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6.15남북공동선언이후의 6년간의 경험은, 한국정부의 必死的(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한국 및 미국간의 화해협력을 결과하지 못했다. 그간의 한국정부는 자기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남북협력에 적잖은 비용을 지불하여 왔으나, 南南葛藤(남남갈등)과 북미갈등은 증폭되었으면 되었지 감소되어가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정부는 이 갈등을 냉전세력의 방해의 결과로 인식하는 듯하나, 실제로 그것은 북한정부가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야기된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북한주민의 기아와 노예화의 결과로 보인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것은 여러가지 面(면)으로 실증되고 있다. 우선 강성대국과 선군정치라는 國政(국정)의 기본방향이 개혁개방정책과는 조화될 수 없다. 둘째 自力更生(자력갱생)을 기본원리로 하는 자립경제와 계획경제체제의 고수가 개혁개방을 전혀 불가능케 한다. 셋째 개혁개방정책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2002년의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금강산특구•개성공단도, 북한경제의 고립적 체질과 붕괴 때문에 취할 수밖에 없었던 臨時方便(임시방편)일 뿐이며, 개혁개방은 아니다. 과거 수십년간에 걸친 각국의 대북거래에 있어서 협력기업의 事業成功事例(사업성공사례)가 전혀 없다는 점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1. 강성대국과 선군정치

    개혁개방은 國政(국정)의 기본방향이다.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이 이러한 점을 제대로 검토하고 이루어졌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90년전후의 사회주의제국의 붕괴, 기아의 발생 및 김일성의 사망 등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필연화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推測(추측)하에서 남북공동성명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햇볕정책으로 남북의 대결구도만 청산되면, 북한은 자연히 개혁개방되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막연한 기대는 남북간의 화해-교류-연합의 3단계로 구성되는 金大中(김대중)의 空想的(공상적) 통일방안에 의하여 증폭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1998년에 이미 국정의 기본방향을 强盛大國(강성대국)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각주1]. 그런데, 1998년은 북한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김일성의 사망, 3백만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餓死者(아사자)의 발생, 중국으로의 탈북자 속출 및 국내경제의 總崩壞(총붕괴) 등이 당시의 북한이 당면한 상황이었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苦難의 行軍」(고난의 행군)이라 부른다. 그런데 강성대국이라는 국정방향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와 같은 어려움을 제대로 극복하기 위한 국정방향이 아니라, 오직 김정일정권만을 연명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면 강성대국이란 어떠한 국정방향인가. 주변의 舊社會主義諸國(구사회주의제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도, 북한만은 舊體制(구체제)를 固守(고수)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개혁개방이 구사회주의제국에서 붕괴된 국민경제를 재건하는 정책이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따라서 남북이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정치범수용소와 기아에 찌든 인민의 大海(대해)위에 군림하고 있는 김정일로서는 아무리 국내외정세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자기생존을 위해서는 기존의 노선을 강화하는 길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성대국이 기존체제를 강화하는 것이라는 것은 강성대국의 내용을 살펴보면 곧 알 수 있다. 강성대국은 우선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周邊國(주변국)이 모두 계획경제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장경제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사회주의노선을 강화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정일의 입장은 강성대국의 내용에서도 명백하게 보이고 있다. 강성대국은 정치사상대국, 군사대국 및 경제대국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그 구성내용의 어느 것 하나 구체제의 계승ㆍ강화ㆍ발전이 아닌 것이 없다.

    첫째 정치사상대국인데, 그것은 專制的 一人獨裁(전제적 일인독재)를 강화하기 위하여 그들이 오래토록 다져오던 主體思想(주체사상)과 唯一思想(유일사상)의 연장성상에 있다. 주체사상의 핵심은 유일사상인데, 유일사상은 「首領의 思想과 領導(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神格化(신격화), 絶對化(절대화), 信條化(신조화), 無條件化(무조건화)하는 것이다
    [각주2]. 이러한 君主像(군주상)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나 읽을 수 있는 유일한 自由人(자유인)으로서의 「중국의 天子(천자)」 바로 그것이다. 강성대국론에 따르면, 「나라는 자기의 수반을 닮는다. 국가수반은 국위이고 국권이며 국력이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수반의 지도 밑에 일치단결하면, 天下無敵(천하무적)의 정치강국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둘째 군사대국인데, 그것은 전인민의 무장화와 군사우선의 정치이다. 군사대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치적 및 경제적 총역량을 군사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軍事工業(군사공업)의 建設(건설)로 나타난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국민경제가 총체적으로 파탄된 조건하에서 군사공업의 건설이란 용이하지 않다. 그리고 설령 군사공업의 건설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現代戰(현대전)은 火力戰(화력전)이기 때문에 석유 없는 군사대국은 실현될 수 없다. 결국 군사대국을 건설하는 첩경은 핵과 미사일의 개발이다. 그들이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각주3].

    셋째 경제대국인데, 경제대국은 정치사상대국이나 군사대국과는 달리 아직 未完成(미완성)이라 한다. 그들은 경제대국의 건설에 있어서는 自力更生(자력갱생)을 기초로 하는 자립경제의 원칙을 철저히 관철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립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서는 계획경제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시장경제와 국제분업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대국을 건설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대국은 일찍이 지구상에서 있어본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러한 경제를 건설하려는 것은 김정일의 恣意的(자의적) 정책을 구속하는 시장원리와 국제분업의 룰을 排除(배제)하기 위함이다.

    강성대국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실상 軍事大國(군사대국)일 뿐이다. 구사회주의제국이 대개 그러하였지만, 남북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서 형성된 북한이라는 국가는 본래 군사국가적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그런데, 2002년에 들어오면서부터 이 강성대국의 개념은 先軍政治(선군정치)의 개념으로 이행하고 있다
    [각주4]. 선군정치란 「先(선)체제수호 後(후)경제회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例(예)에서 보듯이, 개혁개방정책이란 국정의 최우선과제임을 명백히 보았다. 따라서 선군정치를 최우선과제로 하는 북한이 개혁개방에 대하여 敵對的(적대적)일 수밖에 없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2. 자립경제와 계획경제

    우리는 북한이 전통적으로 「정치에 있어서의 自主(자주)」, 「경제에 있어서의 自立(자립)」 및 「군사에 있어서의 自衛(자위)」라는 排他的(배타적) 민족주의를 추구해온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제국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兄弟國(형제국)이라고 하는 사회주의제국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제국의 전통적인 인터내셔널리즘까지도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북한의 민족주의는 급기야 대외관계에 관한 사상으로 머물지 않고 「사상에 있어서의 주체」라고 하는 주체사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김일성에 의하면, 「주체성을 확립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의 의뢰심을 버리고,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의 힘을 믿어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하여 자기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가는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
    [각주6].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체사상을 구현하는 국민경제건설의 기본방향은 국제경제협력을 거의 완전히 배제하는 自力更生(자력갱생)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자력갱생사상은 국제분업에 구애받지 않는 국민경제를 건설하자는 것이나, 근대적 국민경제는 필연적으로 국제분업을 그 중요한 구성요소로 할 수밖에 없다.

    독자들이 위와 같은 자립경제개념에 대한 필자의 소개를 믿지 못할 것 같아서 북한이 자립경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자립적 민족경제는 자기 나라의 자원과 기술,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제발로 걸어가는 경제이다. 이것은 자립적 민족경제가 자체의 잠재력과 온갖 가능성을 남김없이 동원하여 생산과 건설을 최대한도로 다그쳐갈 수 있는 우월한 경제라는 것을 말하여준다. 경제를 활성화하는 참다운 길은 자립의 길 이외에 있을 수 없다.
    [각주6]」 초보적인 경제이론이라도 이해하는 독자라면 위의 記述(기술)이 레토릭이지 경제논리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자립적 민족경제가 「자기 나라의 자원과 기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경제는 항상 원료와 에너지의 공급이 거의 杜絶(두절)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혁개방밖에 없으나, 그들은 이에 대해서는 결사반대한다. 같은 논문에서 그들은 「제국주의의 세계경제일체화책동을 철저히 배격하자」라던가 「제국주의자들이 念佛(염불)처럼 외우는 개혁, 개방타령은 사탕발린 독약과 같은 것이다」라고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경제를 「식민지거품경제」로 규정하였다
    [각주7].

    북한이 개혁개방을 결사코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국민경제의 대외의존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개혁개방이 자본주의적 풍조가 국내로 침투하는 것이다
    [각주8]. 국민들에 대한 사상통제로 겨우 유지되고 있는 김정일 정권으로서는 思想的(사상적) 解弛(해이)야말로 자기 정권의 붕괴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상적 통제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사상의 통제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내부적 사상통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계획경제를 선택했다.

    북한은 사회주의경제의 본질이야말로 계획경제라고 한다. 그러므로 2002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실시된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계획경제와 背馳(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계획경제를 보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선과 대결관계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2002년의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조선에서 계획경제와 대치되는 국가통제를 벗어난 경제활동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견해와 분석들이 유포되고 있다. 윤광욱 국장은 그것이 악의에 찬 반공화국선전의 일환이 아니면 사회주의경제의 본질과 조선의 현실에 대한 리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각주9]

    그러면 정말 현재 북한에서 실시되고 있는 계획경제가 사회주의에 있어서의 계획경제라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아래에서 7.1경제관리 개선조치에서 배급제도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賃金制度(임금제도)로 이행했음을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의 불가피한 일환으로 「종합시장」이 부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계획경제가 건재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윤국장의 말대로 비록 배급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시장이 부분적으로 부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국가통제를 벗어난 경제활동이 아니라는 뜻에서이다.

    개혁개방은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를 대체한다. 개혁개방은 시장경제의 기본플레이어인 소농경영, 소규모의 자영업 및 기업의 출현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계획경제의 붕괴로 임금제도와 「종합시장」이 부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기본플레이어의 출현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인민들에게 배급을 보장하지 못하는 속에서도 소농경영, 자영업 및 기업 등으로 구성되는 인민의 獨自的(독자적)인 經濟活動(경제활동)의 空間(공간)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계획경제는 배급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인민을 無所有(무소유)의 奴隸的 狀態(노예적 상태)로 묶어두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3.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금강산특구 • 개성공단

    2002년 7월 1일자로 단행된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그 정책자료에서[각주10] 이 조치가 「그 어떠한 개혁, 개방이나 자본주의적 방법」이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혹시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계기로 되지 않을까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본인은 관계자료를 읽고 그 조치가 붕괴된 북한경제에 대한 임기응변적 대응임을 곧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였다. 첫째 그 조치에서는 기존의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體制原理(체제원리)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요, 둘째는 정책내용이 다급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구차한 것들뿐이라는 점에서였다.

    그러면, 그 조치가 어떠한 점에서 臨時方便的(임시방편적)이라는 것인가. 94년 이후 북한을 줄곧 관찰해온 본인에게는 그 조치가 붕괴된 배급제도에 대한 대처임을 곧 알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이미 94년 이후의 기아때문에 인민들이 직장으로부터 이탈하고 농산물의 수매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이미 배급물자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 배급물자를 확보할 수 없는 조건하에서 노동자들을 직장으로 복귀시키는 방법은 이제 배급대신에 임금을 지불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임금지불이 노동력 동원이라는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정 범위에서의 가격과 시장의 부활이 필수적이다.

    그러면, 이 조치가 어느 범위에서 임금, 가격 및 시장을 부활하였는가. 임금의 부활은 군인으로부터 공무원 및 일반근로자의 봉급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가격의 부활은 소비재에서 생산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교통비와 전기료 등의 서비스요금도 전면적으로 현실화하였다. 그러나 시장은 농산물의 거래가 위주로 되어있는 농민시장밖에 허용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가격은 전면적으로 부활하였으나, 시장은 賃金財(임금재)를 거래하는 일부의 소비품시장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산재와 일부의 소비재의 분배에 있어서는 배급제도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가격의 부활과 더불어 허용된 시장의 상황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에서 자유로운 거래가 허용되는 시장은 소비재시장뿐이다. 처음에는 농산물을 거래하는 재래의 「농민시장」만을 허용하였으나, 이 농민시장은 2003년부터 공산물소비재도 거래되는 「종합시장」으로 발전하였다.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餘基(여기)의 시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농산물과 수입품을 거래하는 場市(장시)에 불과하며, 제대로 시설을 갖춘 것으로서는 평양 낙랑구 통일거리에 설치된 종합시장(100m×60m) 한 곳이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시장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그들 중에는 상인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그 지역의 주민들이다. 시장의 대표격인 평양 낙랑구 통일거리의 종합시장도 처음에는 지역주민들이 거래하는 장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설이 갖추어지고 공장과 기업이 거래에 참가하게 되자 그 시장은 곧「국영기업소」로 되었다
    [각주11]. 시장이 국영기업소로 전환하자 賣臺(매대)에는 판매원이 배치되고, 시장은 판매원들이 생산자로부터 소비재를 구입하여 고객에게 판매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어 갔다. 그러니까 종합시장도 어느 정도 발전하게 되면 국영상점으로 흡수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종합시장이라는 것은 물자거래가 지극히 빈약하고 시설이 전혀없는 虛市(허시)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종합시장은 생산물이 유통되는 주된 配給機構(배급기구)가 될 수 없다. 북한에는 물자의 배급기구로서는, 아직도 배급기구가 기본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시장으로서는 「국내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된 원료, 자재들을 교류하는 사회주의물자시장, 수입된 자재, 원료를 교류하는 수입물자교류시장, 그리고 인민생활에 필요한 소비품이 유통되는 종합시장」
    [각주12].이 있는데, 어느 정도 가격기능이 살아있는 종합시장이 북한의 총물자교류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란 지엽적인 것이다.
    7.1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다른 면에서도 보인다. 제대로 된 시장경제가 성립하려면 소농경영, 자영업 및 기업 등의 시장플레이어가 출현해야 한다. 그런데, 7.1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이 점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집단농장의 해체는 물론 自留地(자경지)의 확대도 없다. 자영업이라고 볼만한 것은 가정의 잉여노동과 폐품을 이용하는 家內作業班(가내작업반)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의 기업이라는 것은, 개혁개방초기의 중국의 例(예)에서 볼 수 있듯이, 대개가 官廳(관청)일 뿐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시장경제란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북한 경제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의 실상이 더욱 명백하게 보일 것이다. 만약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이 개혁개방의 線上(선상)에 있는 것이라면, 거기에 북한의 기업이 출현되어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바와 같이 거기에는 한국의 기업밖에 없다. 백보를 양보하여 그 사업들이 개혁개방의 일환이라고 이야기되려면, 그 사업의 배후에서라도 북한의 기업이 관여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러한 것을 본 일이 없다. 다시 말하면, 국내에서 시장경제가 발전하지 않는 개혁개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은 무엇인가. 북한은 극단적인 자립경제를 추구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외화부족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다. 구사회주의제국이 건재했을 때에는 외화부족을 원조로써 해결하였으나,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 때는 재일동포에 대한 수탈, 무기수출, 달러위조 및 마약밀수로 그 어려움을 타개하려하였으나,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하는 수 없이 선택된 것이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의 출현이다.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은, 현대로부터의 5억불의 賂物(뇌물)과 더불어, 노골적인 북한의 외화벌이 장소이지 개혁개방의 일환이 아니다. 거기에서는 거래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의 룰이 전혀 출현하고 있지 않다.

    맺음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에는 현재 주체사상과 유일사상, 선군정치와 핵 및 미사일의 개발, 자립경제와 계획경제가 지배하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개혁개방을 허용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국민경제의 總破綻(총파탄)과 외화부족으로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단행하고 금강산특구 및 개성공단을 설치하고 있으나, 이러한 조치들은 그들의 姑息的(고식적)인 閉鎖經濟(폐쇄경제)와 계획경제를 보완하거나 재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외부로부터의 사상적 영향을 배제하는 한편, 인민들을 사상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개혁개방의 요구야말로 정권의 붕괴를 노리는 외부의 음흉한 음모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은 이미 자발적인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상실한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로는 선군정치라는 국정의 기본방향이 개혁개방과는 정면으로 모순한다는 사실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사정이 있다. 첫째, 개방개혁을 단행하는 순간 남북간의 경제격차가 너무나 두드러진 사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짐으로써 현북한정권은 그 존립의 정당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둘째, 현재 북한경제는 인프라마저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 재건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외부로부터의 원조가 필요한데, 현정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그러한 규모의 원조는 획득될 수가 없다.

    김정일은 위와 같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생존을 위한 選擇枝(선택지)는 지극히 협소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다. 즉,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김정일에게는 선군정치를 더욱 강화하면서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강화하는 길 이외의 다른 선택지란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북한주민의 정신적 물질적 노예화요, 둘째는 북한주민에 대한 人質劇(인질극)과 외부에 대한 核威脅(핵위협)에 의한 원조(貢納?)의 확보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대북지원은 위와 같은 김정일의 의도를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다. 국민정부와 참여정부에게는 앞으로 위와 같은 북한의 정책에 迎合(영합)한 책임을 물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만약 북한의 개혁개방의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면, 지금까지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제로 전개되었던 대북정책은 어떻게 轉換(전환)되어야 하는가.

    (1) 북한의 개혁개방의 전망은 전혀 없으므로 6.15南北共同宣言(남북공동선언)은 폐기되어야 한다. 6.15남북공동선언의 廢棄(폐기)가 남북대화의 단절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는 자들도 있으나, 그것은 杞憂(기우)에 불과하다. 북한은, 완전한 고립상태에서는 그 存立(존립)이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변화된 姿勢(자세)로 대외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2) 북한의 人權問題(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발생케하는 根本(근본)에까지 溯及(소급)하여 대처해야 한다.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는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 탈북자, 매춘 및 영아살해등의 제문제는 실제로 북한주민의 一般的(일반적) 飢餓(기아)와 奴隸化(노예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북한인권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북한의 體制變化(체제변화)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3) 현 북한정부의 존립이 북한정부와 북한주민에 대한 支援(지원)을 拒否(거부)하는 名分(명분)으로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북한주민의 기아를 완화하기 위한 지원은 그 分配(분배)의 透明性(투명성)이 검증될 수 있어야 하며, 북한정부에 대한 지원은 相互主義(상호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요컨대, 대북지원에 있어서는 검증과 상호주의라는 原理原則(원리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1].정론/강성대국(로동신문1998 8 22).

    [2]. 김정일 이 1974년 4월 14일 발표한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참조.

    [3]. 필자가 읽은 범위내에서는 어디에서도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강조하는 정책문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의 가장 중요한 대외문제가 핵과 미사일의 개발에서 연유되었다는 점이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4]. 김총비서, '선군정치'배경설명(NKchosun.com정치/사상 1224/22435)참조.

    [5] 洋介北朝鮮辭典』「主體思想, 2001, 249페이지.

    [6]. 자립적 민족경제건설로선을 끝까지 견지하자(로동신문근로자,2003년 1월 17일).

    [7]. 북한이 개혁개방을 敵對視하는 정책문건은 매우 많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제국주의자들의 '개혁', '개방'책동은 용납할 수 없는 침략와해책동이다(월간조국2004 12월호)를 들 수 있다.

    [8].이 점에 관해서는 북한의 비공개내부문건인 학습제강(學習提綱):자본주의사상문화침투를 짓부시기 위한 투쟁을 강도높이 벌릴데 대하여』2002 10(NKchosun.com』사회1841/23301)이 참고된다.

    [9] .조선 국가계획위원회 국장, 인민경제사업에서 나서는 과제에 언급(조선신보2005 10 19).

    [10].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본인은 이 문건을 朝鮮日報의 통한문제연구소로부터 팩스로 입수하였다. 북한에서 발표한 그대로라고 믿어지지만, 字句에 다름이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11] .변혁의 현장에서 검증되는 생활력(조선신보 2003년 12월 22일).

    [12] .9참조. 여기서 말하는 사화주의물자시장수입품교류시장은 문맥으로 보아, 가격기능이 제대로 보장되는 시장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배급기구로 보아도 무방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