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키에 여사에서 美 쿠슈너까지'손타쿠'와 '게이트키퍼'가 흔든 두 정권金 퇴진에도 게이트키퍼 권력화 우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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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10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배석해 있다. ⓒ뉴시스
"현시점에서 삭제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해당 부분을 마킹해 두었으므로 확인 후 수정을 부탁드립니다."2017년 2월 26일, 일본 재무성 본청이 긴키 재무국(재무성 산하 기관)에 보낸 이메일 속 지시는 겉보기에는 건조하고 사무적이었다. 그러나 이 이메일을 받은 담당 공무원들은 무려 14개에 달하는 공문서에서 '본건의 특수성'을 언급한 부분과 '비선 실세'의 이름을 지워야 했다. 그 실세의 이름은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 여사였기 때문이다.2017년 2월 9일 아사히 신문의 보도로 세간에 알려진 일명 '모리토모 스캔들'은 2016년 6월 긴키 재무국이 사학법인 모리토모학원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하면서 시작됐다. 매각가는 1억3400만 엔으로, 감정액보다 약 8억 엔(약 83억 원)이나 낮았다.아베 총리는 2017년 2월 17일 국회에서 "나와 아내가 관련됐다면 총리도 의원도 그만두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모리토모학원이 매입 부지에 '아베 신조 기념 소학교'라는 이름의 초등학교를 설립할 예정이었으며, 아키에 여사는 설립될 학교의 명예교장을 맡았다는 정황이 추가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총리의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관료들은 알아서 움직였다. 재무성은 2017년 작성된 14개의 내부 결재 문서에서 '본건(本件)의 특수성', '특례적인 내용' 등 특혜를 시사하는 문구, 아키에 여사의 이름·발언과 일본회의 관여 정황, 정치인 실명 등 총 300여 개 항목을 삭제했다. 이메일 행간에 숨겨진 '윗분의 심기'를 읽고, 법과 원칙 대신 '심기경호'를 택한 것이다.'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긴다'는 이른바 '손타쿠'(忖度)의 끝은 일본 관료 시스템의 윤리적 파산이었다. 담당 공무원 아카기 도시오 씨는 문서 조작 보도 닷새 만인 3월 7일 518쪽에 달하는 비망록('아카기 파일')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그러나 입헌민주당 등 일본 6개 야당이 강력히 요구한 아키에 여사의 국회 '환문'(喚問)은 여당의 거부에 힘입어 실현되지 않았다. 아키에 여사가 '총리 부인 특혜' 논란의 상징으로 떠오른 순간이었다.2025년 12월 2일 서울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텔레그램 메시지가 그 '손타쿠'의 악몽을 소환했다.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 좀 해줘 봐"라는 여당 의원의 인사 청탁 메시지에 김남국 대통령실 국민디지털소통비서관은 주저 없이 답했다. "넵 형님, 제가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에게 추천할게요." 일본 관료들은 두려움에 떨며 이름을 지우려 했지만, 한국 대통령실 참모는 자랑스럽게 그 이름을 앞세웠다.
김 비서관이 언급한 '현지 누나'는 이재명 대통령과 1998년 성남시민모임에서 처음 만나 27년간 인연을 이어온 김현지 제1부속실장을 뜻한다. 인사 업무는 비서실장·총무비서관 소관이며, 대통령 일정·동선·의전 등을 담당하는 제1부속실장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공직자가 '누나 라인'을 중심으로 알아서 움직이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대통령실은 이튿날인 3일 "부정확한 정보를 부적절하게 전달한 내부 직원에 대해 공직 기강 차원에서 엄중 경고 조치했다"고 밝혔다. 논란의 중심에 선 김 비서관은 4일 사의를 표명했다. 김 비서관은 이날 오후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도 불참했고, 대통령실은 김 비서관의 사직서를 수리하며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대통령실은 이날 브리핑에서 제1부속실장은 인사와 무관한 자리라며 관련 의혹을 일축했지만, 정치권에서는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적 네트워크가 공적 의사 결정을 잠식할 위험은 '개인의 퇴진'만으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김 실장을 둘러싼 이번 해프닝은 최고 권력자의 측근이 공식 계통을 우회해 국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이트키퍼(Gatekeeper) 권력화' 현상으로 발전할 우려도 있다. 이런 구조가 고착되면 보고·결재·책임 체계가 사실상 우회되면서 국정의 축은 '공식 라인'이 아니라 사적 창구로 이동한다.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재러드 쿠슈너는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으로서 외교, 방역, 이민 정책 등 국정 전반에 걸쳐 권한을 행사했다. 대통령과의 '특수 관계'에 기반한 그의 권력은 백악관의 공식 참모 조직을 무력화하며 인사·정책 조율 기능을 약화했으며, 국정 운영 전반에 상당한 혼선을 야기했다.우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시스템을 압도할 때 정권이 어떤 난맥상을 겪는지 직접 겪었고 목격해 왔다. '형·누나·언니·동생'이라는 사적 위계질서가 공적 의사 결정을 대체하는 순간, 그 정부의 신뢰 자본은 바닥을 드러낸다. 여의도에서 돌고 있는 '만사현통'(모든 일은 김현지를 통해야 한다)이라는 신종 유행어는 김 실장이 단순한 부속실장이 아닌 '한국판 쿠슈너'로 기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상징이다.
제1부속실장이 국정감사 출석을 거부한 가운데, 공직자들이 그를 향해 사적 호칭을 남발하며 청탁하는 정부에서 공정과 상식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워싱턴과 도쿄의 사례는 측근이 비대해지고 시스템이 무너지면 정권의 동력은 급속히 상실된다는 명확한 교훈을 준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개인의 일탈로 꼬리 자르기 해서는 안 된다"며 "'현지 누나'라는 호칭 속에 숨겨진 비공식 권력의 비대화를 경계하고, 공직 기강과 시스템을 다시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은 '형·누나들'이 운영하는 사적 동호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