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예산 대통령실·檢 등 특활비 편성'檢 폐지' 주도하고선 특활비 72억 원 부활 민주 "특활비 필요" … 尹 정부 땐 "쌈짓돈"국민의힘 "국가의 이름을 사칭한 사익일 뿐"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입장을 하며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사진=국회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입장을 하며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사진=국회사진기자단)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윤석열 정부 때 전액 삭감된 기관들의 특수활동비(특활비)를 편성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내로남불 예산"이라고 규정한 가운데, 야당 시절 특활비 삭감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필요한 예산"이라며 특활비 지키기에 나섰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대통령실(82억 원)·검찰(72억 원)·경찰(32억 원)·감사원(15억 원) 등의 특활비를 편성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때 "불필요한 쌈짓돈" "권력자 개인 용돈"이라며 전액 삭감했던 예산을 되살린 것이다. 

    특활비는 일반 예산과 달리 구체적 사용 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일명 '검은 예산'으로 불렸다. 특히 사정기관의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수집, 수사 등에 쓰여 자세한 집행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당시 기관들이 사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오남용한다는 이유로 정부 예산안에서 특활비를 '0원'으로 만들었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어디다 썼는지도 모르는 특활비를 삭감한 것"이라며 "이것 때문에 살림을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조금 당황스러운 얘기"라고 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대규모 예산 삭감을 "이재명 방탄을 위한 분풀이식 삭감"으로 규정했다. 특활비가 사라진 감사원과 검찰은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이 대통령을 수사 및 감사했다는 이유로 민주당의 표적이 된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예산을 무기로 권력기관 무력화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랬던 민주당이 다시 특활비를 복원하면서 '내로남불'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당은 올해 7월에도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대통령실(41억 원)·검찰(40억 원)·경찰(16억 원)·감사원(8억 원)의 특활비를 증액했다. 윤석열 정부 때 특활비를 삭감해도 국정이 마비되지 않는다고 말하더니 집권 한 달 만에 특활비부터 되살린 것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은 해당 추경안에 대한 국회 표결 당시 '기권표'를 던졌다.

    검찰청 폐지를 주도한 민주당이 검찰의 특활비를 부활시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의 지휘하에 지난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검찰은 1년의 유예를 거쳐 수사를 담당하는 중수청과 기소를 맡는 공소청으로 나뉘게 됐다. 검찰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한 장본인이 예산을 늘려줘 뒤늦게 적선하는 꼴이 됐다.

    민주당과 함께 검찰청 폐지에 앞장섰던 조국혁신당도 정부의 특활비 편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박은정 의원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이 6개 범죄에 대해 직접 수사가 가능했던 2021년에 특활비가 84억 원이었다"며 "현재는 2개 범죄로 줄었기 때문에 일단 28억 원으로 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민주당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특활비를 없앴다가 살려내는 행태를 비판했다. 국민 세금을 원칙 없이 정략적 도구로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야당일 때는 불필요하고, 여당이 되자 긴요해진 내로남불 예산"이라며 특활비를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특활비는 안보, 외교, 정보 활동 등 국정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이라는 절규에도 민주당은 야당 시절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며 "안보 공백을 초래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되살려 놓고 국익을 말한다. 그 국익이 국민이 아닌 정권 자신을 위한 방패막이라면, 그것은 국가의 이름을 사칭한 사익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민 세금을 쌈짓돈으로 쓴다고 주장했던 민주당의 말이 그대로 화살이 돼 자기들에게 돌아온 것"이라며 "집행 내역을 소명하겠다고 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특활비 자체에 반대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정부 당시에는 특활비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을 삭감했다는 것이다. 또 현 정부에서는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했기에 괜찮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 당의 일반적인 입장은 특활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특활비를 없앴던 이유는 증빙이 안 됐기 때문이다. 업무추진비처럼 증빙이 되는 한에서만 지급하겠다고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에 특활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이제 와서 국정 운영을 위해 특활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야당 시절 자신들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게끔 역할을 못 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