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6개 정치개혁안 제시… 국회의원 특권 축소 골자민주당도 지난 21대 총선 공약으로 정치개혁 내세워21대 국회 개원 2개월간 '반짝' 법안 발의 후 '조용'실패 답습 않으려면… 올바른 어젠다 설정, 실천 관건
  •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시즌이 돌아오면 정치권은 정치개혁을 외친다. 스스로 개혁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며 가진 것을 내려놓는 듯한 퍼포먼스 만큼 국민의 환심을 사기에 제격인 것이 없어서다. 

    '정치신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위원장은 4·10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총 여섯 개의 정치개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정치권을 향한 불신도 여전하다.

    ◆선거철에만 '반짝' 등장하는 키워드, 정치개혁

    2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 비대위 출범 35일 만에 여섯 개의 정치개혁안을 내놓았다. 약 5일에 한 번 꼴로 정치개혁과 관련한 화두를 던진 셈이다.

    한 위원장이 지금까지 제시한 정치개혁안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금고형 이상 확정 시 세비 반납 △국민의힘 귀책 시 재·보궐선거 무공천 △국회의원 50명 감축 △출판기념회 관행 근절 △국회의원 세비 감축 등이다.

    국민의 처지에서는 획기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제안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일찌감치 정치권에서 이미 논의됐거나 언급됐음에도 현실화하지 않은 해묵은 과제들이다.

    특히 국회의원 정원 감축은 정치개혁의 단골 소재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는 2009년 자유선진당을 창당한 뒤 국회의원 수를 30% 감원하고 비례대표 정원을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했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역시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국회의원 정수 10%를 줄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관련 법 이미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 못넘고 계류

    국회의원 월급에 해당하는 세비 삭감과 관련한 사안은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 공약으로 띄웠다. 국민 정서에 부합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이에 민주당은 21대 국회 출범 직후인 2020년 6~7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 절차에 착수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민주당은 해당 기간 총 10개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거나 현행법에 규정된 대로 국회 상임위원회 법률안을 심사하는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를 3회 이상 개회하지 않을 경우 수당·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 등을 삭감 및 환급하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한 위원장이 두 번째 정치개혁안으로 제시한 금고형 이상 확정 시 국회의원 세비를 반납하는 내용과 결이 비슷한 법안도 포함됐다. 이후 국회의원 세비 삭감 및 환급과 관련한 법안은 꾸준히 발의돼 현재까지 총 16건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21대 국회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현 시점에서 활발히 논의되거나 처리된 법안은 단 한 개도 없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법안 발의 이후 그해 9월 운영위에 상정됐지만 소위원회에 회부됐고, 4차례 소위에 상정됐지만 여야가 논의를 미루면서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결국 법안 발의가 국민과의 약속 실현 차원이 아닌 입법 퍼포먼스를 위한 것임을 방증한 셈이다.
  • ▲ 지난해 4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3차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 심사를 위한 전원위원회에서 곳곳에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뉴시스
    ▲ 지난해 4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5회국회(임시회) 제3차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 심사를 위한 전원위원회에서 곳곳에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뉴시스
    ◆10년째 도돌이표인 정치인 출판기념회

    음성 정치자금 모금 창구로 꼽히는 출판기념회 관행을 근절하자는 주장도 정치권에서 일찌감치 제기됐다. 본격적으로 이와 관련한 논의에 불이 붙은 것은 19대 국회 때인 2014년이었다. 

    당시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의원이 출판기념회에서 법안 발의 대가로 유관 단체로부터 수천만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김무성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150여 명의 의원과 함께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출판기념회의 투명성 강화를 목적으로 수입 및 지출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고 정가로 책을 판매하도록 하는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 모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20대 국회 때도 정종섭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출판기념회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한 위원장이 처음으로 거론하며 관련 논의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반복되는 실패, 원인과 해법은?

    한 위원장의 정치개혁안을 두고 일각에서는 '기시감이 든다' '진부하다' '재탕 개혁안이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정치권이 여전히 정치개혁에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몇 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 위원장이 또다시 이런 화두를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실천이 관건이다. 한 위원장이 역대 정치개혁과 차별화를 이루려면 '얼마나' 실천에 옮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치개혁안 자체가 참신한 것이 아니고 이미 과거에 다 나왔던 내용"이라며 "이번에는 '한동훈이면 확실히 하겠네'라는 부분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정치개혁 실패 원인으로 정치권의 잘못된 방향 설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제대로 된 어젠다 설정이 우선이다. 삼권분립 국가에서 의원 수를 줄이고 세비를 감축하면서 입법부인 국회의 권한을 무조건적으로 축소하게 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욱 공고히 만들 뿐"이라며 "선거 과정에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대중의 표를 부분적으로 모을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정치판을 완전히 바꾸고 개혁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도 통화에서 "여의도 문법을 바꾸겠다고 이야기했으면 제대로 된 공천제도를 확립하든가 선거제도를 손보는 등의 큰 일을 해야 한다"며 "지금 모습을 보면 탱크를 가지고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참새를 잡고 있는 것이다. 한동훈 위원장이 제시한 것들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 망가진 것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