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2000년 방북시 북러 친선·협력조약 체결 푸틴 방북 맞춰 조약 개정해 군사동맹 발판 마련 가능성통일부 "북러, 안보리 결의 위반…관계 발전방향 매우 우려"
  • ▲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을 맞이하고 있다. ⓒAP/뉴시스
    ▲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을 맞이하고 있다. ⓒAP/뉴시스
    북한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면서 "불패의 전우 관계", "백년대계의 전략적 관계"를 언급하며 "새로운 법률적 기초"를 강조했다. 24년 만인 푸틴의 방북이 이뤄지는 시점에 양자가 2000년에 체결한 '북·러 우호 친선 및 협력 조약'을 개정해 사실상 '군사 재동맹'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법률적 기초"의 의미에 대한 분석 요청에 "북한과 러시아 간에 향후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지에 대해서 매우 여러 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구 대변인은 이어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국제사회와 함께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특별히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북한 대외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21일 외무상 보좌실 공보를 통해 최선희 외무상의 지난 15~17일 러시아 방문 결과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 동지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편리한 시기에 평양을 방문하도록 초청하신 데 대해 다시금 깊은 사의를 표하고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하려는 용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러시아는 이미 푸틴의 방북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의 북한·튀르키예 방문 일정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정확한 날짜는 아직 없다. 외교 채널을 통한 조율이 진행 중이며 확정되는 대로 알리겠다"고 답했다.

    외무상 보좌실은 최 외무상의 이번 방러에서 양자가 "전략적 협조와 전술적 협동을 더욱 강화해 나가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고 "두 나라 관계를 전략적인 발전 방향에서 새로운 법률적 기초에 올려 세우고 전방위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실천적 문제 토의에서 일치 공감과 만족한 합의를 이룩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엔 헌장과 기타 국제법 정신에 철저히 입각해 두 나라 대외 정책 기관들의 긴밀한 협동과 공동 보조로 지역 정세를 조정해 나갈 데 대해 합의했다"며 한미일 군사 협력에 대응해 한반도 안보 상황에 적극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북러 관계의 발전 방향이 "불패의 전우 관계, 백년대계의 전략적 관계"임을 언급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공급하는 대가로 대미 억제를 위한 위성, 재진입 기술, 핵추진 잠수함 등의 첨단 기술을 이전 받아 전략 핵 및 전술 핵 수단의 완성을 앞당기고 군사 재동맹화로 나아갈 가능성까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북러 관계 강화는 1991년 8월 소련이 해체된 뒤 10년 가까이 냉각기를 가지다 관계를 복원했던 지난 2000년과 일견 유사하다. 1996년 러시아는 상대의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담긴 1961년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조·소 우호 조약)'을 폐기하고, 2000년 2월 북한과 '친선·협력 조약(친선, 선린 및 협력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푸틴은 러시아 대선에서 승리한 지 4개월 만인 2000년 7월 중국과 북한을 첫 순방지로 선택해 '조·러(북러) 공동 선언'을 채택하고 '조·소 우호 조약'을 구체화했다.

    당시 북한은 1961년 조약의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2000년 조약에 복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위기 시 협의' 원칙으로 대체하는 데 그쳤다. 1990년 한·소 수교와 구소련 해체 등의 상황을 고려해 기존 군사 동맹 관계를 협력의 동반자 관계로 재정의 하는 쪽이 러시아의 국익에 더욱 부합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 ▲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이 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정례 브리핑하고 있다. 커비 조정관은 최근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받은 탄도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살상하기 위해 또다시 북한 미사일을 사용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AP/뉴시스
    ▲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이 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정례 브리핑하고 있다. 커비 조정관은 최근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받은 탄도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살상하기 위해 또다시 북한 미사일을 사용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AP/뉴시스
    북한과 러시아가 관계를 복원했던 2000년은 '탈냉전'의 물꼬가 트였던 시기였지만,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현재 세계는 미중 갈등으로 신냉전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미중 관계가 디커플링(분리)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국면으로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한미일 대(對) 북중러 대립 구도는 해소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햇수로 3년 째 접어들면서 무기 부족난에 시달리는 러시아로서는 북한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한국 군 당국은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지원 받은 무기는 152㎜ 포탄과 122㎜ 방사포탄 등이 담긴 5600여 개 컨테이너,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단거리 탄도 미사일과 600㎜ 초대형 방사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크렘린궁을 비롯해 지난 4일 부임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 러시아 대사도 22일 보도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러시아를 향한 지적엔 근거가 없다. 부디 '증거물'을 '전문 기관'에 제출해 그 안에서 전문적으로 토론하길 바란다"며 북한과의 무기 거래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북한 외무성 측은 "(러시아 측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전)과 관련한 러시아 정부와 인민의 입장에 전적인 지지와 연대성을 보내주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사의를 표했다"고 밝혀 무기 거래 의혹에 힘을 실었다.

    조비연 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11월 30일 '국방논단'에 기고한 '동북아 핵지형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방향' 보고서에서 북러 간 미사일 협력은 이미 소련 시절 북한에 V-75 지대공 미사일 지원을 시작한 이래 지속돼왔으며 북한의 화성-12와 화성-14형 등은 소련의 엔진을 개조한 형태다.

    지난해 9월 6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크게 향상된 북한 대륙간탄되사일(ICBM) 기술력은 북한의 능력 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2023년 4월 13일과 7월 12일에 발사한 화성-18형 ICBM은 러시아의 토폴-M ICBM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러 군사 재동맹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뿐 아니라,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을 고착화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북한이 고려할 만한 카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2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북한이 대남 공격의 핵심 무기체인 KN23을 러시아에 지원한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며 "러시아는 기정사실이 된 푸틴의 방북 가능성 뿐 아니라, 군사 재동맹을 위한 제도화를 북한에 반대급부로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군사 재동맹화를 통해 김정은이 외교적인 고립에서 탈피하는 국면을 마련할 수 있다"며 "그러나 북한과 러시아가 반미 연대를 구성한다는 점 외에 어떤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지 않으므로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을 복원하는 수준의 제도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