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러시아 미사일·핵 시설 참관 정황 포착전문가들 "북러 협력, 한미 확장 억제 변수로 부상"
  • ▲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악수하고 있다.ⓒAP/뉴시스
    ▲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악수하고 있다.ⓒAP/뉴시스
    외무상 승진 후 첫 단독 해외 방문으로 러시아를 택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 미사일·핵 시설을 참관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역내 위협으로서 북한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러 협력이 위성, 재진입 기술, 핵 추진 잠수함 등 첨단 기술을 이전하는 수준으로 격상된다면 기존 한미 확장 억제 체제를 지역 차원의 확장 억제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외무상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예방에 앞서 대기하는 동안 최 외무상 수행원의 손에 들린 '우주기술 분야 참관 대상 목록'이라는 제목의 서류가 AP통신을 비롯한 외신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번 방러에 북한 무기 개발 총책인 조춘룡 당 중앙위 군수공업부장이 동행한 점까지 고려하면 북러 간 미사일·위성 등 우주 기술 협력이 북러 간 주요 의제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해당 제목 아래에는 '1.우주로케트연구소 〈〈쁘로그레쓰〉〉', '워로네쥬 기계공장', '우주광학생산쎈터'로 추정되는 명칭 등이 적혀 있다. 러시아 연방우주국(로스코스모스) 산하 국영기업 '프로그레스 로켓 우주 센터'인 것으로 추정되는 '쁘로그레쓰'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겸 우주 로켓인 소유즈 시리즈와 무인 우주선 프로그레스 등의 개발에 관여한 우주 로켓 분야 기업·연구소다. 

    '워로네쥬'가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보로네슈 기계 공장'은 로켓 엔진과 정밀 부품을 생산하는 국영기업으로 액체 추진 로켓 제작에 특화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쁘로그레쓰와 워로네쥬는 군사정찰위성이나 ICBM에 활용되는 로켓 기술, 우주광학생산쎈터는 북한 정찰위성 카메라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기술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가 이번 방러에서 이들 기관을 참관한 것인지, 향후 참관 의사를 표명한 것인지는 현재로선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기관들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단거리 탄도 미사일 'KN23'을 지원 받은 데 대한 반대급부로 전략 및 첨단 무기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장소들이다.

    특히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과 최 외무성의 면담과 관련해 "우리는 '민감한 분야'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힌 대목은 그러한 추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앞으로 정치적 접촉 일정을 포함해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 발사 시설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나온 합의 사항 이행을 중심으로 양국 관계 발전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북러 협력의 상징으로서 푸틴의 북한 답방 가능성을 암시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러 군사 협력이 북핵 위협을 겨냥해 설계한 한미 확장 억제 체제의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프라나이 바디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 국장은 전날 미국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대담에서 "(북러) 협력의 결과로 이 지역 내 위협으로서 북한의 성격이 앞으로 10년 동안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면서 "지난해 한미 간의 확장 억제 논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러한 협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기초로 하지 않았고, 단지 북한 자체의 (핵 무력) 진전 만을 기초로 삼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전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북러 군사 협력의 지속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북러 협력은 예상보다 장기화할 수 있으므로 이를 '침소봉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비연 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은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북한이 러시아와의 전략 관계에서 무엇을 얻느냐에 따라 북핵 위협이라는 게 또 다른 국면으로 갈 수 있다"며 "제2차 NCG(핵 협의 그룹) 회의에서 한미 양국은 '위험 감소(risk reduction)' 조치가 심화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북러 관계 뿐만 아니라 지역 정세 안정을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위험 감소 측면에서 북러 관계가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그전까지 러시아의 핵 강압 사례를 답습했다면, 이제는 러시아로부터 기술을 이전 받고 러시아와 발 맞춰 공조할 수도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의 지적대로 2022년 9월 북한이 제정한 '핵무력정책법'이 2020년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러시아연방의 핵 억제 정책에 대한 기본 원칙'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은 북러 협력이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면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를 가장 원하는 건 북한 뿐이며 각자 다른 셈법을 갖고 있는 북러 밀월 관계의 지속성이 길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만 끝나면 러시아로서는 북한에 아쉬울 게 없다"며 "한러 교역 규모는 200억 달러가 넘는데 북러 교역은 1억 달러도 채 안 된다. 중장기적으로 러시아로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골자로 하는 '신동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석유와 같은 에너지, 지하 자원을 팔아서 이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건데, 주요 수출국은 제재를 받는 북한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