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대법 의견 개진해 양형 반영할 것"… 꼼수감형 원천 차단 강조10개월간 형사공탁 1만8000여건… 공탁금액만 1151억원 상당 피해자 외면한 '형사공탁'… 검사들 "용서를 돈으로 사냐" 반발
  • ▲ 대검찰청. ⓒ뉴데일리DB
    ▲ 대검찰청. ⓒ뉴데일리DB
    선고 직전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한 기습적인 형사공탁을 검찰이 '꼼수 감형'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이에 검찰은 이같은 악용 사례를 막고자 제도를 새롭게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대검찰청은 7일 "기습공탁 등 꼼수 감형 시도에 엄정 대응하고 피해자가 형사공탁에 대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받는 절차가 제도화 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형사공탁이 접수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형을 감경하는 것은 '돈으로 형량을 거래'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공탁 관련 양형인자 적용 시 피해자 의사를 고려하도록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2월 제도가 시행된 뒤 지난해 9월까지 약 10개월 간 전국 공탁소에 접수된 형사공탁 사건은 총 1만8964건, 법원에 납입된 공탁금액은 1151억원 상당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형사 변제공탁은 2112건, 공탁액은 422억 원 상당에 그쳤다. 형사 재판에서 형사공탁 특례제를 이용하는 피고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게 검찰 측 해석이다.

    형사공탁 특례제도는 피해자 신원을 특정해야 하는 기존 형사 변제공탁제와 달리, 피해자의 신원을 모르더라도 피고인이 공탁금을 맡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로 인해 피의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합의를 종용하고 협박하는 등의 2차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형사공탁 특례제도의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기존의 긍정적 취지와 다르게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판결 선고 직전 기습적으로 공탁을 해 유리한 형을 선고받는 악용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검은 형사공탁 특례제도를 악용한 감형 시도에 △선고연기 내지는 변론재개 신청 △재판부에 피해자 의사 제출 △신중한 양형 판단 요청 등의 방안으로 적극 대처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검은 지난해 8월 기습 공탁을 막기 위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재판부에 추가 양형 자료 제출을 위한 선고 연기나 변론 재개를 신청하고, 공탁 사실에 대한 피해자 의사를 확인해 재판부에 제출, 재판부에는 공탁 경위·금액·피해법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양형을 판단해 달라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도록 했다. 

    검사들 "형사공탁금, 합의 강제하는 부작용 우려" 비판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김해경 부장검사) 소속 손정아(40·변호사시험 1회), 박가희(36·사법연수원 45기), 임동민(31·변시 8회) 검사는 최근 대검찰청 논문집 형사법의 신동향 겨울호에 '형사공탁의 운용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논문을 실어 공탁금을 이용한 꼼수 감형 문제를 지적했다.

    손 검사 등은 공탁과 관련한 구체적인 양형기준이 없어 법원이 혼란을 겪고 있으며, 판사들의 경우 피해자의 처벌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공탁금을 '반성의 증거'로 판단하고 감형하고 있음을 꼬집었다. 

    이들 논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월 지하철에서 여성을 추행한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을 선고했다. 선고기일 6일 전 피고인이 1천만원을 '기습공탁'한 것을 유리한 양형 조건으로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공탁 사실을 알게 된 검찰은 '피해자 의사 확인 없이 공탁만을 이유로 1심 판결을 파기하는 것은 형사공탁 제도 취지에 맞지 않고 판례에도 반한다'며 상고했다. 이어 피고인의 배상 여부를 감형 요소로 인정하지 않는 미국·영국 사례를 언급하며 "강력범죄와 성범죄에서만큼은 형사공탁을 감형 사유로 인정해선 안된다"고 짚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검찰 측 상고를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로 보고 '양형부당은 상고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상고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같은 결정에 검사들은 기습공탁을 방치하는 현행 형사공탁 제도를 두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용서를 돈으로 살 수 있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강력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의 형사공탁은 피해자의 '처벌불원' 표시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제"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검사들의 주장이다.

    검사들은 "성범죄에서의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몸값은 딱 이 정도'라는 메시지와 함께 2차 가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행 공탁제도는 법원이 피고인의 공탁 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하는 방식을 채택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면서 "형사공탁이 있을 경우 그 사실을 원칙적으로 피해자에게 고지함으로써 의견 제시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