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귀순 진정성 있나… 북송하는 방향으로 보고서 만들라" 지시보고서에서 '귀순' 삭제… 대공혐의점은 '희박'에서 없음'으로 변경"충격적이고 위법한 일 하게 돼 부끄러워… 미안하고 부끄럽다"
  • ▲ 귀순어민 강제북송 당시 판문점 현장 사진 ⓒ통일부 제공
    ▲ 귀순어민 강제북송 당시 판문점 현장 사진 ⓒ통일부 제공
    2019년 '귀순 어민 강제북송' 당시 정부 합동조사팀 소속이었던 국정원 직원이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보고서 수정 및 삭제 등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법정에서 했다.

    지난 2월 검찰의 기소 후 법정에 증인이 출석해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법조계와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재판장 허경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강제북송 사건 비공개 공판에 국정원 직원 A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11월2일 북한에서 남하한 선박에서 나포된 북한 어민 2명을 조사한 합동정보조사팀에서 근무했던 국정원 직원이다. 귀순 어민 우모(22)씨와 김모(23)씨를 조사해 이들의 귀순 의사가 담긴 자필보호신청서 등 내용의 보고서 작성에 동참했다.

    귀순 어민 조사를 진행한 A씨는 "승선원 2명은 '생활고로 인해 남하하였다'며 귀순 요청" "동료 16명을 살해한 후 도피할 목적으로 남하한 것으로, 귀순목적이나 대공혐의점은 희박한 것으로 평가" 등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11월3일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서훈 전 국정원장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문재인정부 안보라인은 "NSC에서 결정됐는데 대공혐의점 희박이 뭐냐"며 '귀순 요청' 부분을 삭제하고 '대공 혐의점 희박'은 '대공 혐의점 없음'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한 이들은 "합동조사 조서에 귀순이라는 용어가 있으면 곤란하다"고 지적하면서 '동해 NLL 월선 귀순' 부분을 '동해 NLL 월선 나포'로 수정했다.

    결국 최종보고서는 귀순 어민이 귀순 요청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바뀌었다. 11월7일 탈북민들은 추가 조사 없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돌려보내졌다.

    검찰은 서 전 원장이 북한 어민 나포 이틀 뒤인 11월4일 "16명이나 죽인 애들이 귀순하고 싶어서 온 거겠냐, 지들 살려고 온 것이지. 귀순의 진정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북송하는 방향으로 조치 의견 넣어가지고 보고서 만들어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A씨는 서 전 원장의 이같은 지시에 귀순 어민들의 자필 보호신청서를 언급하며 "귀순 의사를 밝혔으면 끝나는 것" "귀순 의사 진정성은 들어본 적 없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A씨는 귀순 어민들의 북송 지시를 이행한 뒤 동료들에게 "충격적이고 위법한 일을 하게 돼 부끄럽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크다"고 말한 사실도 법정에서 털어놨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는 지난 2월28일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19년 11월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북한으로 돌려보내도록 관계기관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혐의를 받는다. 탈북 어민이 국내 법령과 절차에 따라 체류 상태에서 재판 받을 권리 등을 행사하지 못하게 방해한 혐의도 있다.

    서 전 원장은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의 조사 결과 보고서상 탈북 어민들의 귀순 요청 사실을 삭제하고, 중앙합동정보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조사가 종결된 것처럼 기재하는 등 허위보고서를 작성해 배포하게 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행사)도 받는다.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은 공모해 강제북송 방침에 따라 중앙합동정보조사를 중단, 조기 종결하도록 해 조사팀의 조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

    지난달 2일 첫 공판이 진행됐지만 문재인정부 인사들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