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광주 시민들 정율성에 관심 없어… 보존지역 되면 개발 막혀" 불만능주초 '정율성 기념교실' 방문객 80% 이상이 중국인… "교육 침해되고 있다"정율성 고향집 관리인 "관광객 수 굉장히 적어… 그나마 중국인이 종종 방문"
  • ▲ 뉴데일리 취재진이 25일 전라남도 광주시와 화순군에 '정율성 기념사업'과 관련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현장을 방문했다. 사진은 '정율성 기억교실' 모습ⓒ정상윤 기자
    ▲ 뉴데일리 취재진이 25일 전라남도 광주시와 화순군에 '정율성 기념사업'과 관련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현장을 방문했다. 사진은 '정율성 기억교실' 모습ⓒ정상윤 기자
    "정율성이 누구예요? 살기 바쁜데 주민들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몰라요."

    '공산당 나팔수' 정율성(1914~76)을 기념하는 일부 지자체의 사업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현지에서는 정율성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모르는 주민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율성이 유년시절을 보낸 전남 화순군 측은 "그의 업적 덕에 우리 지역에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로 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정율성 기념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지난 25일 뉴데일리는 광주시와 화순군에 위치한 △정율성 고향집 △정율성 거리전시관(정율성로) △정율성 생가 △능주초등학교 등을 둘러보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본지가 이날 처음 방문한 곳은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 위치한 능주초다. 정율성은 여덟 살에 능주공립보통학교(현 능주초)에 입학해 2년을 다녔다. 

    능주초는 '기억교실' '벽화·흉상' 등을 설치해 정율성을 기리고 있었다. 정율성 기억교실은 1922~23년 당시 교실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다. 정율성 관련 자료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정율성을 형상화한 모형이 교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모형은 마치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연상케 했다.
  • ▲ 25일 찾아간'정율성 기억교실 방문일지에 중국인 관광객들의 서명이 가득하다. ⓒ정상윤 기자
    ▲ 25일 찾아간'정율성 기억교실 방문일지에 중국인 관광객들의 서명이 가득하다. ⓒ정상윤 기자
    학교 관계자는 "정율성 기억교실은 우리 학교 자체의 교육활동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학교 건물에 남는 교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대여 형식으로 해서 외부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정율성 기억교실'은 화순군이 정율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5년 하반기 조성했다. 들인 예산은 무려 7600만원이다.

    학교 관계자는 "방문일지를 보면 가끔 중국 관광객들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학교기관이다 보니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고, 특별히 학교에서 관리하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학생들의 교육이 이뤄지는 곳인데 관광객들이 그렇게 오면 상당히 (교육이) 침해되는 부분이 있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실제 방문일지를 살펴보니, 기억교실 방문객의 80% 이상이 중국인이었다. 
  • ▲ 능주초등학교 외벽 정율성 초상화와 흉상의 모습. ⓒ정상윤 기자
    ▲ 능주초등학교 외벽 정율성 초상화와 흉상의 모습. ⓒ정상윤 기자
    또한 화순군은 능주초 외벽에 8100만원을 들여 가로 10m, 세로 11m 크기의 모자이크 형식 대형 '정율성 초상화'를 그려놨다. 학교에는 정율성 흉상도 설치됐는데, 화순군은 흉상 주변에 담쟁이를 심고 가로등을 설치하는 등 관광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정비사업을 진행했다. 흉상 설치 비용은 2400만원이다. 

    정율성 흉상 뒷면에는 당시 제작에 관여한 전완준 화순군수, 조유송 화순군의원, 전남대학교 예술연구소 등의 이름이 기재됐다. 

    전 전 군수는 5건의 전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4년 건축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 2005년에 상해로 벌금 200만원, 2010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2017년 1월과 11월에는 근로기준법 위반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으로 각각 벌금 300만원과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특히 전 전 군수는 2022년 5월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운동을 하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 ARS 음성메시지 8만6500여 건을 4차례에 걸쳐 선거구민에게 발송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정율성 흉상 옆에는 다음과 같은 건립 취지문이 쓰였다.

    "동아시아 현대음악의 최고 반열에 오른 능주초등학교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정율성 선생,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팔로군행진곡' '옌안송' 등 300여 곡의 주옥같은 선율을 남긴 작곡가요, 아시아에 희망을 선사한 혁명가인 선생의 뜨거운 조국애와 열정적인 예술을 기리며 그 호연지기의 기상을 후배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 ▲ 25일 방문한 정율성 고향집의 모습. 의문의 말 조형물도 눈에 띈다. ⓒ정상윤 기자
    ▲ 25일 방문한 정율성 고향집의 모습. 의문의 말 조형물도 눈에 띈다. ⓒ정상윤 기자
    '정율성 고향집' 12억 들였다더니… 뜬금없는 말 조형물, 축음기만 덩그러니

    능주초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정율성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20평 남짓의 '정율성 고향집'이 전시돼 있었다. 해당 공간에는 관련성이 떨어지는 말 조형물과 축음기 한 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본지가 확보한 '중국인 관광명소화(정율성 관련) 사업내역서'에 따르면, 전남 화순군은 2017~18년 12억원(국비 6억원, 군비 6억원)을 들여 이곳에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비는 주로 전시관 1동, 관리사 1동, 주차장 설치, 진입로 정비에 투입됐다. 

    또한 화순군 계약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확인된 세부 사업비 항목은 △포토존 설치(2101만원) △외부조성공사(1607만원) △전시콘텐츠 제작(4854만원) △신문형 홍보물(2016만원) △무인경비용역(96만원) △안내판 제작(2090만원) △방염방충사업(2087만원) △무인경비용역 유지보수(132만원) 등으로 총 1억4983만원이 정율성 고향집에 사용됐다.

    사업 취지는 "정율성의 성장지를 복원해 한중 우호교류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주자묘(朱子廟)와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로 중국 관광객을 유치한다"고 적시됐다. 

    이와 관련, 화순군청 관계자는 "2016년부터 군은 정율성과 주자묘를 연계해 '관광명소화'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며 "현재 군은 문화유적지 등을 유지·관리 위주로 맡고 있다"고 했다. 

    '정율성 고향집'과 관련해서는 "정율성이란 인물을 기억하고 보존해서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한 것"이라며 "말 동상은 '과거 정율성이 중국에서 말을 탔다'는 이야기가 있어 갖다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공간을 관리하고 있는 관리인은 "이곳은 2018년도에 만들어졌고, 원래 민간 개인주택이었다"고 소개했다. 관리인은 그러면서 "사실 근무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접촉했는데, 주민들은 정율성 선생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관광객은 대부분 중국인이고, 간혹 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리어카를 끌고 주변을 지나던 한 70대 여성은 정율성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누구길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냐"고 되물으며 "왜 이 집을 지어 놨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정율성 고향집' 앞에 위치한 전남화순경찰서 능주파출소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연세가 많지만 정율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파출소가 관광지 앞에 있다 보니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관광객들이 종종 들어온다. 솔직히 여기에 볼거리는 없다"고 말했다. 

    능주초 주변에 위치한 능주교회 관계자는 "여기에 정율성 관광지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다"며 "근처에 조광조 유배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정율성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 ▲ '정율성로' 거리 모습. ⓒ정상윤 기자
    ▲ '정율성로' 거리 모습. ⓒ정상윤 기자
    광주에 울려 퍼지는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주민들 "여기가 중국이냐"

    광주시 남구 양림동 양림2단지 휴먼시아 옆에 조성된 정율성 기념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광주시 남구 역사문화마을 코스로 지정된 '정율성 기념거리' 홍보물은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관심 없다는 듯 지나가기에 바빴다. 한참을 지켜보자 노래가 나오는 버튼을 눌러보는 노인 한두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버튼 위에는 '옌안송' '팔로군행진곡' '우리는 행복해요'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버튼을 눌러보니 노래가 흘러 나왔다. 광주시 길거리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와 팔로군행진곡을 들으니 어색함이 느껴졌다.
  • ▲ 정율성이 바위에 걸터앉아 만리장성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정율성 부조'의 모습. ⓒ정상윤 기자
    ▲ 정율성이 바위에 걸터앉아 만리장성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정율성 부조'의 모습. ⓒ정상윤 기자
    버튼을 누르던 70대 주민에게 노래를 들어보니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조형물을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모르겠다"며 "정율성 부조를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는 소감을 전했다. '정율성 부조(浮彫)'는 정율성이 바위에 걸터앉아 만리장성 너머를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정율성로(路) 근방에 거주하는 60대 주민은 "정율성에 대해 주민들 대부분 잘 모른다"며 "중국에서 유명한 노래를 만들었다는 정도만 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주민은 "중국사람들이 동네에 오면 시끄러울 때가 종종 있다"며 "문화재 보존지역이라고 해서 이 동네는 재개발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정율성 거리'가 손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한 택시기사 역시 "시민들은 정율성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다"면서 "플래카드를 보고 알게 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전 대통령)이 정율성에 대해 얼마나 알았겠느냐. 당연히 모르지"라며 "광주시에서 하도 검토해보라고 문서를 올리니까 마지못해 (기념사업을) 진행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택시기사는 "특히 젊은 세대는 정율성이든 정치든 관심이 아예 없다, 야구에나 관심이 있지"라며 혀를 찼다.
  • ▲ 공사 중인 '정율성 생가'의 모습. ⓒ정상윤 기자
    ▲ 공사 중인 '정율성 생가'의 모습. ⓒ정상윤 기자
    공산당 나팔수를 세금으로 기념… '정율성역사공원' 48억원 투입

    광주시 동구 불로동 C호텔에 인접해 있는 '정율성 생가'는 논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불로동 정율성 생가 부지에 광주시는 48억원을 들여 역사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광주시청으로부터 입수한 '정율성역사공원 조성 추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역사공원의 설립 취지는 '관광자원 콘텐츠 개발 및 시민의 문화·관광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비사업 추진'이다. 

    사업은 2018년 10월부터 올해 12월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장소는 동구 불로동 164-1 외 5필지로 부지 면적은 988.8㎡다. 소요 예산은 토지보상비 35억원, 시설비 13억4700만원을 합한 48억4700만원이다.
  • ▲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대상지와 사업구상도 모습. ⓒ광주시
    ▲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대상지와 사업구상도 모습. ⓒ광주시
    2019년 당초 계획된 예산은 38억원이었으나, 토지 보상 갈등 등으로 일정이 늦어지면서 사업비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정율성 유적지 정비사업을 위한 역사공원 조성사업 기본계획' 자료에 따르면 정율성역사공원에 사용될 사업비의 세부 내역은 다음과 같다.

    △생가 복원(1억2800만원) △리모델링(1500만원) △관리동 신축(7800만원) △철거비(5100만원) △정자(2000만원) △보상비(23억6600만원) △토목 및 조경비(9억9200만원) △설계·감리비(1억5000만원)로 각각 사업비가 책정됐다.

    광주시 관계자는 "호텔 로비 정면에 있는 '정율성 생가' 주변에서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라며 "정율성 생가는 리모델링하고 주변은 시민들을 위해 공원으로 정비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생가에 있는 주택 개보수 비용, 부지 매입비, 공원 조성 등 총 비용은 48억원이 맞다"면서도 10억원이 증액된 새롭게 편성된 예산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됐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