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호주에 '14개 불만 사항' 수정 요구… 굴복 않자 '합성사진' 올리고 무역보복 해밀턴 "中, 호주가 WTO 제소로 맞서자 3년 후 무역보복 자진 철회하며 한발 후퇴"해밀턴 "호주 정부, 국민 지지에 힘입어 '친중 엘리트' 굴종 요구 격퇴하고 승리"거샤넥 "中, 6.25 때 '美 트루먼·맥아더는 연쇄 강간범' 가짜뉴스 유포하며 정치전"
  • ▲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 교수(왼쪽)와 케리 거샤넥(Kerry Gershaneck) 나토 사령부 펠로(오른쪽)가 21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 교수(왼쪽)와 케리 거샤넥(Kerry Gershaneck) 나토 사령부 펠로(오른쪽)가 21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중국 정치전(political warfare)과 초한전(unrestricted warfare) 분야의 권위자인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 교수와 케리 거샤넥(Kerry Gershaneck)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령부 펠로(대만국립정치대 교수)는 '경제를 이용해 정치를 겁박한다'는 중국 공산당(CCP)의 통일전선 전술인 이상핍정(以商逼政)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한국 정부에 조언했다.

    호주가 겪었던 중국의 무역보복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유사한 흐름으로 전개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에 '3불(不)1한(限)'을 요구했던 중국은 호주 정부에 '14개 불만사항'(14 grievances)을 제시하며 두 국가의 주권적 결정을 침해하려 했다.

    결말은 완전히 달랐다. 호주의 모리슨 정부는 '친중(親中) 엘리트'들의 대중 굴종(屈從) 압박을 격퇴하고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외치며 비밀리에 문제의 3불1한을 약속했다. 그러나 중국이 무역보복을 철회한 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호주였다. 결국 한국은 안보도 경제도 얻지 못했다.

    본지는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세계지역학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해밀턴 교수와 거샤넥 나토 사령부 펠로를 지난 21일~22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 중공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정치전의 양상과 대처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해밀턴 교수거샤넥 펠로와의 일문일답

    - 중국이 최근 한국에 대한 자국민의 단체관광을 6년 5개월 만에 허용했다. 무슨 의도라고 봐야 하는가?

    (해밀턴) "중공은 향후 또다시 '자국민의 단체관광 불허' 카드를 쓸 수 있게 됐다. 이번에 단체관광을 허용한 것은 나중에 한중 간에 사안이 생겼을 때 한국이 중국의 뜻에 부합하는 전략을 고분고분하게 취하게끔 압박하기 위한 결정이다. 중국은 다른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라면 모든 경제적 강압수단을 동원해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관광은 핵심수단이었다.

    (거샤넥) "'경제를 이용해 정치를 겁박한다'는 이상핍정 차원이다. 이번 단체관광 재개로 수입이 늘면 한국 상인들이 중국 정부에 대한 입장을 바꿀 수 있다. 중공의 경제적 압박에 생계가 걸린 한국 국민들이 오히려 대중(對中) 굴종을 요구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 ▲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2020년 11월 30일 트위터에 올린 '합성사진'. 염소를 안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에 호주 군인이 흉기를 대고 웃고 있다. ⓒ자오리젠 트위터 캡처
    ▲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2020년 11월 30일 트위터에 올린 '합성사진'. 염소를 안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에 호주 군인이 흉기를 대고 웃고 있다. ⓒ자오리젠 트위터 캡처
    - 지난 4월 중국 외교부는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겠다" "반드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전랑외교'가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해밀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란 사람들은 중공이 마치 자신들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중공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범죄조직까지 동원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난 발언도) 마찬가지다. 타국의 정치, 경제, 언론계 엘리트들을 포획해 그들이 자신들의 국가에서 중국의 이익을 주장하도록 심리적으로 조종·조작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중공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타국의 여론악화를 기꺼이 감수한다. 

    호주를 예로 들어보겠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Lowy Institute)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7년에는 호주인 응답자의 54%가 '중국을 신뢰한다', 2018년에는 응답자가 82%가 '중국을 경제적 파트너라고 인식한다'는 답했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신뢰도가 15%로 급락했다. 그러나 중공은 급격한 여론 악화에도 경제적 강압과 적대적인 전랑외교를 고수하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외국 국민들의 여론쯤은 기꺼이 희생한다는 방증이다."

    - 호주의 대중(對中)정서가 불과 몇 년 사이에 급변했다.

    (해밀턴) "2020년 중국의 무역보복을 기점으로 크게 변했다. 스콧 모리슨 당시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발원지 국제조사'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자, 중공은 (목재·석탄·랍스터·보리·레드와인·구리·설탕 등) 호주산 상품에 대해 초고도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사실상 수입을 금지했다. 무역보복의 규모는 호주 한 해 수출액의 5.5%에 해당하는 약 160억 달러(약 21조 원)에 달했다.

    호주 정부에 대한 비난과 모욕을 일삼은 중국 정부 대변인들과 관영매체들도 한몫했다. 같은 해 11월 30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호주 군인이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목에 흉기를 대고 웃고 있는 합성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때 호주 국민들의 대중여론이 크게 기울었다."

    - 외교적으로 풀어나가면 될 일 아니었나?

    (해밀턴) "(트위터 사건보다 며칠 앞선) 11월 21일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은 '일부'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14개 불만사항'을 발표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코로나19 발원지 국제조사' 주장 ▲2018년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들에 대한 호주 5G사업 입찰배제 결정▲외국간섭금지법(espionage and foreign interference act) ▲호주 내 주요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투자 금지 ▲신장, 홍콩, 대만 문제에 대한 호주의 개입(다자 포럼 운영) ▲호주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 의혹 제기 ▲중국에 대한 호주 언론의 적대적인 보도 등 호주에 14가지를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 한국이 주권적 결정에 따라 '사드'를 배치하자 중공이 한국에 '3불1한'을 요구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호주 모리슨 정부의 반응은 어땠나? ('3불'은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것이고 '1한'은 이미 주한미군에 배치된 사드의 운용 제한을 뜻한다.)

    (해밀턴) "호주는 그해 12월 중국을 WTO에 제소했다. 그런데 2023년 3월 중국 상무부가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spurious excuses)를 대며 호주산 보리에 대한 보복관세를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상무부는 '중국 내 보리 시장의 상황 변화를 고려할 때 호주산 보리에 계속해서 반덤핑 관세와 반보조금 관세를 물릴 필요가 없다고 판정했다'며 '2023년 8월 5일부터 관세 취소가 집행된다'고 밝혔다.) 중국이 물러서자 호주는 제소 절차를 중단했다. 중국의 무역보복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며(kow-tow) 굽실거리면 경제적 고통이, 꿋꿋이 맞서면 승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호주가 중국의 경제적 협박(economic blackmail)과 외교적 강압(diplomatic bullying)에 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 ▲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 교수가 21일 오후 본지와 서울 모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 교수가 21일 오후 본지와 서울 모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생업의 위기에 처한 생산자들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로비나 압박도 있었을 텐데...

    (해밀턴) "중공의 무역보복으로 타격을 입은 생산자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수출시장을 하루아침에 잃었지만, 호주 정부는 꿋꿋이 버티며 중공의 경제적 강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호주 국민들은 '중공의 협박에 굴복해 우리의 원칙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중공 통전전술인 이상핍정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경제적 강압의 성공 여부는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이 중국의 막강한 힘 앞에 굴복하는가, 정부의 대중 굴종을 압박할 재계 지도자들을 동원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무역보복으로 타격을 입은 생산자들은 시장 다변화를 시도했고 대부분이 성공했다. 다른 강력한 수출시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호주 재계는 매출을 위해 중국에 너무 의존하면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이용당할 위험에 처하게 되며, 중공의 경제적 강압에 대비해 놓지 않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국민의 혈세로 피해를 구제받는 일도, 호주 정부의 대중 굴종으로 구제받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이제 안다."

    - 호주 내 친중 엘리트들의 반응은 어땠나?

    (해밀턴) "중공은 호주의 재계 지도자들이 중공의 이익을 위해 자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벌이거나 중공을 대변하도록 수년간 공을 들여왔다. 중공은 호주에 무역보복을 가하면 호주 재계 지도자들이 호주 정부를 압박해 굴복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 대만, 일본에서는 통했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중공이 무역보복을 가하자 호주 언론과 소셜미디어(SNS)에서 중공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재계 지도자들의 친중 로비도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이들은 SNS상에서 '중공 앞잡이'나 '매국노'로 지목당하지 않도록 몸을 사리게 됐다."

    - 중국의 경제적 압박은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해밀턴) "최근 들어 중국의 경제적 기적이 끝나간다는 조짐이 보인다. 이는 중공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 될 것이다. 중공의 경제적 강압은 '우리의 뜻을 따르면 경제적 이득을 주겠다'는 일종의 비공식 계약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경제상황이 악화한다면 이러한 약속을 더 이상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중국의 경제적 기적이 끝나간다면 중공은 자국민에 대한 조기 세뇌교육을 강화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유치원에 갈 나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중공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매국노', '당이 인민이고 당이 곧 중국'이라고 끊임없이 세뇌하고 있다."
  • ▲ 케리 거샤넥(Kerry Gershaneck) 나토 사령부 펠로가 21일 오후 본지와 서울 모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케리 거샤넥(Kerry Gershaneck) 나토 사령부 펠로가 21일 오후 본지와 서울 모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중공의 외교방식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다. 중국 외교부가 베이징에서 호주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열기 직전에 '일부' 현지 언론을 상대로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이 기자 간담회를 열고 '14대 요구사항'을 발표한 것도 의아하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외교채널 아닌가?

    (거샤넥) "중국에 유리한 담론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중공은 어떤 사안에 대한 중공 버전의 담론을 상대방보다 먼저 배포함으로써 여론전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정치전의 계획과 실행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일종의 선제공격(first strike)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공 버전의 담론을 선제적으로 방송해 방송전파를 지배하고 담론의 방향과 범위를 선점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중공은 문제해결을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을 협상 개시 시점에 먼저 발표함으로써 논의의 범위를 중공이 원하는 대로 한정하고, 정보를 통제하고 언론을 장악해 후속 논의를 주도한다.

    미국 고위 관료, 언론인, 학자들은 중국이 어떤 사안이 터지면 소통창구를 닫고 의사소통을 거부한다고 불평하곤 한다. 지난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다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공 인민해방군(PLA)은 카운터파트인 미군 측의 연락에 응하지 않은 채 전역사령관 회담(theater commanders' talks), 군사해양안보협력(MMCA) 협의, 국방정책조정협의(DPCT) 등 미중 간 3대 군사·방위대화를 모두 취소했다. 그러면서 대만해협에서 고강도 무력시위를 벌였다."

    - 다시 호주와 중국 간 '보리 갈등'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었던 지오 리지안은 합성사진을 유포했는데 이것도 정치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가?

    (거샤넥) "가짜뉴스를 동원한 중국의 정치전 역사는 상당히 깊다. 1950년 한국전 당시 중국은 국내외 지지를 얻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정치전을 개시했다. 만화와 포스터에서 해리 트루먼 당시 미 대통령과 더글스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을 '연쇄 강간범'(serial rapists), '피에 굶주린 살인마'(bloodthirsty murderes), '야만적인 짐승'(savage animal)로 묘사했다. 확성기를 통해 '제국주의자들'을 증오하고 저주하고 경멸하는 슬로건과 연설을 끊임없이 전파했다.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부추기기 위해서였다.

    한국전 당시 중국, 소련, 북한은 '미국이 흑사병, 탄저병, 콜레라, 역병 등에 감염된 곤충을 한반도 상공에 뿌리며 세균전을 펼치고 있다'며 전 세계를 상대로 허위정보 캠페인을 벌였다. 중국은 소련과 함께 가짜 감염지역 두 곳을 만들어 냄으로써 증거를 조작했다. 미군 전쟁포로(POW)들의 허위자백도 활용했다. 저명한 학자들과 성직자들, 언론인들도 이러한 정치전에 말려들었다. 사실확인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실제 조사는 허용되지 않았다. 세균전 의혹을 반박하는 증거들과 학자들의 견해가 차고 넘쳤지만, 중공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공에는 미군과 유엔군에 대한 의심과 의혹을 심고 중공의 국내외 입지를 개선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