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제45조 집단항명 혐의로 입건돼 軍 검찰단 수사이종섭 국방장관 국외출장 복귀 후 이첩 지시했으나 불이행해병대 수사단 독단 vs 국방부 수사 축소… 뒷말 무성
  • ▲ 지난 7월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이 분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 지난 7월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이 분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해병대사령관이 지난 7월 경북 예천에서 발생한 고 채수근 상병 사고를 조사하던 해병대 수사단장을 보직해임했다. 사유는 지시 불이행인 것으로 파악됐다.

    4일 군 당국에 따르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지난 2일 해병대 수사단장 A대령을 보직해임했다. A대령은 군형법 제45조에 따라 집단을 이뤄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집단 항명' 혐의로 입건돼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받게 된다.

    국방부 검찰단은 A대령과 함께 해병대 광역수사대장 B중령과 경북경찰청에 자료를 인계한 해병대 부사관을 대상으로도 압수수색을 하고 공동정범으로 입건했다.

    채 상병 사망사고 조사를 맡은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 2일 사건자료 등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다.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 내 사망사고와 성범죄 등의 수사와 재판은 민간 사법기관이 담당하게 돼 있다.

    사고의 사실관계 조사를 마친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과 박상현 여단장을 포함한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을 자료에 담았다.

    하지만 국방부가 나서서 제동을 걸었다.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넘기려는 자료 중 일부가 향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국외출장 중이던 이 장관의 의견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해병대 측에 전했다. 이 장관은 지난 7월31일~8월3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했다.

    이에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이 장관 귀국 시점에 맞춰 내용을 보고한 후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도록 해병대 수사단에 지시했다. 그러나 A대령 등은 상부의 명을 어기고 2일 경찰에 사건 관계자료를 전달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군 안팎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지휘체계를 무시한 해병대 수사단장의 독단적 진행이었다는 비판과 함께 국방부의 수사 축소 시도에 따른 일선의 반발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당초 해병대는 지난 7월28일 채 상병 사망사고와 관련한 사실관계 확인 및 위법사항 관련 조사를 끝마친 상태였고, 다음주 월요일인 7월31일 국회와 언론에 브리핑까지 예고했다.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변동은 없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돌연 "언론 설명이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해병대에 전달했다. 당일 브리핑을 위해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에서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넘어왔던 해병대 공보관계자들은 상급기관인 국방부의 의견에 따라 브리핑을 취소했다.

    해병대 공보관계자들은 설명을 듣기 위해 모인 기자들에게 "브리핑이 취소됐다"는 말을 전달한 뒤 부대로 복귀했으며, 역시 브리핑을 위해 국방부 청사로 이동 중이던 A대령도 국방부 청사에 도착도 하기 전에 차량을 돌렸다.

    당시 해병대 수사단이 조사한 내용 중에는 채 상병 사망사고와 관련한 혐의 적용 등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내용들은 군 차원이 아닌 민간 수사기관의 영역인 만큼, 국방부 감찰단이 나서서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 군 내부의 이야기다.

    사실상 해병대 차원의 설익은 조사 결과 발표가 언론을 통해 공표되기 전 국방부 법무라인이 동원돼 일종의 정리를 한 셈이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일 정례 브리핑에서 해병대 브리핑이 취소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해병대에서 사실관계 확인만 하는 것인데, 해병대의 의견 속에는 사실관계 말고 다른 것들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해병대의 자율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비판도 적잖다. 해병대 수사단에서 조사한 내용 중에는 해병대 1사단장의 혐의 등도 명시돼 있었는데, 국방부 차원에서 '사실관계만 적으라'는 이유를 대며 사실상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최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만큼, 국방부 차원에서 사건을 더 확대시키지 말라는 일종의 지침을 내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군에서) 어떤 혐의를 특정하면 향후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법무 판단이었고, 단순 자료들만 넘겨야 한다는 것이 국방부 장관의 판단이었다"며 "출장에서 돌아와 사건을 이첩하자고 한 것인데, 그 사이에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시에 불응하고 제출한 것"이라고해명했다.

    국방부는 "국방부 검찰단에서 수사를 종결하려거나 은폐하려고 한다고 하지만, 그런 구조가 아니다"라며 "장관이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알려드린다"고 강조했다.

    채 상병은 지난 7월19일 오전 9시3분쯤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 보문교 남단 100m 지점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이후 채 상병은 같은 날 저녁 11시10분쯤 실종 지점에서 5.8km 떨어진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소방당국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