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2010년 최초 제정 후 전국 확산… 전교조 지지, 민주당 뒷배교총 "과도한 학생 인권이 교실 황폐화… 교권 추락 현실 반드시 바로잡아야"이주호 "교사 권리 보호와 학생 지도 균형 노력 부족했던 것이 근본 원인"
  • ▲ 20일 오후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추모객들이 교문 외벽에 추모 메세지를 붙이고 있다. ⓒ서성진 기자
    ▲ 20일 오후 신규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추모객들이 교문 외벽에 추모 메세지를 붙이고 있다. ⓒ서성진 기자
    학생에게 숙제를 내준 선생님에게 "당신 가정파괴범이야. XXX아"라는 학부모가 있었다. 학생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추정돼 연락하자 '학교에 불을 질러버리겠다'며 흉기로 상해를 입히겠다고 협박한 학부모도 있었다. 교사에게 책을 던지고 욕한 학생에게 "우리 아이에게 어떠한 지도도 하지 말라"고 요구한 학부모도 있다. 다른 학부모는 "선생님이 아침마다 우리 아이를 깨워 달라"고 주문했다.

    "잠시만요, 우선 우리 애 혼내셨나요?" "니가 왜 책임이 없어. 내 세금 먹는 벌레야"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엄마잖아요" "우리 애가 집에 와서 짜증내잖아요" "교사가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현재까지 접수된 초등학교 학무모들의 교권 침해 민원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내 아이는 책임이 없다' '교사들의 책임은 크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커뮤니티에서 "학부모들은 교사들에게 '교육은 엄하면서도 친절하고 다정하게,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우리 아이는 특별한 존재로 대우하며, 학부모들을 왕처럼 섬기는 종처럼 일하라'고 강제한다"고 개탄했다.

    이렇게 하지 않은 교사들은 맘카페 등을 통해 조리돌림을 당한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지인의 지인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고, 교육청 등에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그들에게 '학생 인권'은 어떤 가치보다 지켜내야 할 만큼 소중한 반면 '교권'은 그저 발밑에 밟히는 낙엽과도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자조(自嘲) 섞인 목소리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학교 안팎에서는 "안타깝게도 교권의 추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 시작은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제정·공포한 학생인권조례부터라고 교육계는 지목한다. 

    '학교 내 체벌 금지' '두발·복장 등에서 개성을 실현할 권리' '양심·종교의 자유 보장' '학생 동의 없는 소지품 검사 금시' 등과 관련한 사회적 요구라는 명분으로 학생인권조례는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 ▲ 서울시학생인권조례폐지연대가 22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2023.02.22. ⓒ뉴시스
    ▲ 서울시학생인권조례폐지연대가 22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2023.02.22. ⓒ뉴시스
    당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학생인권조례를 강력하게 지지했고, 민주당은 뒷배를 자임했다. 이후 광주광역시(2011), 서울시(2012), 전북(2013), 충남(2020), 제주도(2020)가 경기도와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시행했다. 서울·경기·충남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동성애 조장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진보 성향이 짙은 교육계의 학생 인권 신장 노력이 결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사를 주눅 들게 하고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지적이 많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학생·학부모의 거친 욕설과 폭력에도 학생 인권이라는 '절대적 선(善)' 앞에서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어 이제는 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에서의 개인 사생활까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지적받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전교조와 민주당 등은 외면했다. 교육청과 교육부 역시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수년 동안이나 이를 무시하고 방관했으며 책임을 돌렸다고 일선 교사들은 비판하고 있다.

    현재도 학생인권조례를 두둔하는 진보 세력은 "교사의 폭력과 차별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박강산 서울시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모두를 위한 조례라는 착시: 학교구성원조례는 왜 학생인권조례의 대안이 될 수 없는가?' 토론회에서 "전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와 축소의 위기에 놓였는데 마치 반동의 시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며 "학생인권과 교권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닌데 잘못된 의제 설정으로 정치적 프레임이 짜여졌다"고 주장했다.

    박 시의원은 또 "더 넓은 민주주의, 더 깊은 시민주권을 위해서는 학생인권조례를 매개로 학교 안으로 민주주의의 영토가 확장돼야 한다"고 강변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인권은 지방의회의 결정에 맡겨질 수 없는 헌법적 규범이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토론회가 열린 다음날인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20대 여교사가 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을 두고 그동안 학부모들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지난 6월30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는 한 학생이 교사를 20~30회 폭행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기까지 했다. 해당 교사의 남편은 한 커뮤니티에 "더 황당한 건 부모에게 전화했지만, 미안하다 괜찮으시냐는 말 한마디 없었다"며 "우리 애가 소리에 민감하다. 혹시 싸움을 말리려다 그런 건 아니냐는 둥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고 폭로해 충격을 안겼다.

    더욱이 가해 학생 측은 "학교에 (아이에게) 신경을 써 달라고 요청했는데 교사가 아이를 차별하고 혼내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져 공분을 샀다. 논란이 되자 가해 학생 측은 "반성하고 있다"며 사과의 뜻을 보였다고 한다.

    20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과도한 학생 인권이 교실을 황폐화시켰다"고 직격했다. 

    정성국 한국교총 회장은 이날 "왜곡된 인권 의식과 과도한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교실 붕괴와 교권 추락 현실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학생인권조례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 ▲ 20일 오후 대전시 서구 대전시교육청 정문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를 기리는 내용이 적힌 동료 교사들의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2023.07.20 ⓒ뉴시스
    ▲ 20일 오후 대전시 서구 대전시교육청 정문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를 기리는 내용이 적힌 동료 교사들의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2023.07.20 ⓒ뉴시스
    한국교총뿐만이 아니다. 부작용이 가득한 학생인권조례 폐지 여론은 전국적으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8월 학부모단체 등은 서울시의회에 주민조례청구를 제기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3월13일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시의회 교육위원회 심사 결과 지난 4월25일 '보류' 처리됐다.

    충남에서도 주민조례청구를 통해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를 지난 3월6일 충남도의회에 제출했다. 해당 안건은 현재 도의회 심사 중이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충남도의회에 학생인권조례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한 상태다.

    10여 년 동안 학생 인권 신장 여파로 교권의 추락과 교육의 질 저하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과거 학생 인권을 주창했던 이들조차 현재는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발을 빼는 모습이다.

    친(親)전교조 성향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옹호해온 대표적 인사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6월 교권 황폐화 논란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학생을 때리는 권위적인 학교문화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교권 문제와 관련해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조 교육감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간 학생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으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교권에 대한 신장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전교조도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이 맞서는 시각에서 벗어나서 교사들이 실제로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과 지원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 교사들을 위한 일이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썩을 대로 썩어버린 진보식 교육관을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시·도교육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서이초 사태를 언급하며 "학생 인권과 학습권 보장에 비해 교사의 권리 보호와 학생 지도 권한을 균형 있게 확립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총리는 이어 "교권은 교원의 인권을 넘어서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는 기본 권리"라고 강조했다.

    전국교육회복교사연합은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교사들의 피해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서울시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학생들의 신고로 억울함을 당해도, 학교에서 각종 폭력에 시달려도 그것은 모르는 일처럼 행동해온 것이 서울시교육청"이라고 비난했다.

    교사연합은 "격려하려고 학생의 어깨만 토닥여도 성폭력·성희롱이라는 굴레를 쓰게 되고, 교사를 폭행하는 학생의 손목을 잡아 방어만 해도 아동학대로 몰리게 된다"며 "학생인권조례를 반영한 학교생활규칙을 만들라고 협박성 공문을 수 차례 내려보내고 점검하는 교육청은 정말 교육적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교사연합은 그러면서 "학생인권조례는 시급히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교원조합 조윤희 상임위원장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아동학대가 되는 상황을 직시해 보호법을 강화하고, 교권 추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받는 학생인권조례의 전면 개정이나 폐지를 추진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