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원, 9명 중 7명이 文정부 인사… 총선 앞두고 '빈 껍데기 쇄신' 우려작년에도 '조해주 사태'로 선관위 공분… "중립성 우려" 조해주 연임 막아노태악 "현재론 사퇴의사 없다" 선 그어… 국민의힘 "책임있는 자세" 촉구
  • ▲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종현 기자
    ▲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종현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간부들의 '자녀 특혜채용'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가장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선관위가 위기에 봉착했다.

    문재인정부 말기에 임명된 노태악 선관위원장 취임 이후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으로 승진한 인사들이 특혜채용 당사자로 지목된 만큼 여권은 기관장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노 선관위원장을 비롯해 선관위 상임위원과 위원들이 대부분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인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강도 높은 개혁을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與 "노태악 사퇴가 선관위 쇄신의 시작"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31일 논평에서 "노태악 선관위원장의 사퇴가 선관위 쇄신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통제 받지 않던 헌법기관 선관위는 특혜 속에서 부패했고 공정 가치의 상징 집단에서 가장 불공정한 그들만의 집단으로 추락했다"고 비난했다.

    유 대변인은 "어물쩍 사과 한마디로 사태를 넘기기에 사안은 이미 엄중하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어야 함에도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선관위의 셀프 전수조사를 과연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라며 "부디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을 먼저 보여라. 노 선관위원장의 사퇴와 감사원의 감사, 검찰의 수사가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찬진 전 선관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등 전·현직 간부 6명의 자녀가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전 사무총장과 송 전 사무차장은 의혹이 커지자 자진사퇴했지만, 선관위 4·5급 공무원 자녀 5명도 특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이 발칵 뒤집혔다.

    나아가 선관위 전·현직 간부의 자녀가 취업뿐만 아니라 승진에서도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6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22년 광주시 남구 9급 공무원에서 전남 강진군선관위 경력직으로 채용된 박 전 사무총장 자녀는 6개월여 만에 8급으로 승진했다.

    2018년 충남 보령시 8급 공무원에서 충북선관위로 옮긴 송 전 사무차장 자녀는 1년3개월여 만에 7급으로 승진했다. 신우용 제주 상임위원 자녀는 경기도 안성시 8급 공무원에서 2021년 서울선관위로 옮긴 후 7개월 만에 7급으로, 김정규 경남선관위 과장 자녀는 2021년 경남 의령군 8급 공무원에서 경남선관위로 옮긴 뒤 1년4개월 만에 7급으로 승진했다.

    "공정" 외친 노태악 "사퇴의사 없다" 선 그어

    선관위는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 전 사무총장과 송 전 사무차장 등 고위직 자녀 4명의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 등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아울러 외부기관과 합동으로 전·현직 직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돌입하고, 정무직 인사검증위원회 설치와 사무총장직 외부 개방을 통한 인사제도 개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노 선관위원장은 "민주주의의 시작과 끝인 선거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써 막중한 헌법적 책무를 뼈저리게 다짐한다"며 "국민이 더이상 염려하지 않도록 엄정중립의 자세로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한 선관위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노 선관위원장은 "현재로서는 사퇴할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후 노 선관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어진 일은 일단 할 것"이라며 "(개혁) 성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높은 독립성·청렴성을 위해 선관위가 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여권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선관위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노 선관위원장은 문재인정부 말기인 지난해 4월22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선관위원장의 임기는 6년으로 사실상 새로운 윤석열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임기 내내 전임 정부에서 임명한 선관위원장이 자리를 지키는 전형적인 '알박기' 인사다.

    이번 자녀 특혜채용 의혹의 당사자인 박 전 사무총장, 송 전 사무차장도 노 선관위원장이 취임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각각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으로 임명됐다.

    선관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총 9인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이다.

    선관위 요직 인사들, 대부분 文정부서 임명

    김필곤 상임선관위원은 조해주 전 상임위원의 후임으로 지난해 4월15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조 전 상임위원은 임명 당시에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선 후보의 캠프 특보로 일한 경력으로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조 전 상임위원은 지난해 1월 상임위원 임기 3년 만료를 앞두고 사표를 제출했다. 상임위원 임기를 마친 선관위원은 퇴임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해 비상임 선관위원으로 3년 더 활동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중앙선관위 간부와 광역자치단체 선관위 지도부 등 직원 2900명이 들고 일어나 조 전 상임위원 연임을 반대했고, 정치권에서 민주당에 유리한 선관위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자 결국 사퇴했다. 조 전 상임위원장은 이후 별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선관위원장과 상임위원을 제외한 선관위원도 문재인정부 인사들로 채워졌다고 여권은 지적했다. 이승택·정은숙 위원은 문 전 대통령이, 김창보·박순영 위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했고, 조성대 위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했다. 남래진·조병현 위원은 국민의힘 추천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근본적인 치유책이 필요하고, 근본적인 책임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며 "이런 상태에 이르도록 도대체 그 기관은 뭘 했고, 기관장은 뭘 했는지 기가 차기 짝이 없다. 대충 하고 넘어가고 땜질 할 일이 아니다"라고 노 선관위원장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