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다음은 기조연설문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하이브 의장 방시혁입니다. 관훈포럼은 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우리 사회의 중요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포럼은 2년여 만에 열리는 자리이자,
    관훈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이라 들었습니다. 이런 뜻깊은 자리에
    초대해주시고, K-POP을 첫 번째 대중문화 주제로 삼아주신 관훈클럽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참석해주신 분들께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음악 산업 종사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현장
    일선에서 느끼는 바에 대해 진솔하게 생각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다보니 K-POP을 대표하여 이런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는 순간까지 오게 되었지만 저는 그저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작곡가가 되었을 뿐, 제가 직접 사업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창업을
    하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어떤 경우에도 사업만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저의 상사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박진영 씨에게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하이브의 전신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 어느새 18년째 사업을 하고 있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의장을 맡고 있으니 인생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인생이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오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곡가는 본질적으로 프리랜서인지라 제가 오래 하고 싶다고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더라도 나를 영원히 고용해 줄 수 있는 자기 회사를 차리자!’라는 다소
    불순한 동기로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지속가능한 회사가 되려면 제가 이
    회사에 없더라도 빈자리가 보이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것이
    5년 후가 됐건 10년 후가 됐건 ‘방시혁 다음’을 준비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회사 안에 많은
    제작자들과 크리에이터들을 육성하며 멀티 레이블 체계를 구축해온 것은 그러한 고민의 결과들입니다.
    결국 음악을 오래 하고 싶어 시작한 회사에서, 제가 음악을 안 해도 되는 시스템을 고민한다는 게 저에게는
    두 번째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이런 아이러니들이 있기에 동시에 놀라움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젊은 프로듀서였던 시절의 저는 모나고 편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운영해오면서,
    리더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고, 때로는 내 뜻을 굽히고 양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단순하고 어떤 의미로는 불순한 동기로 시작했던 사업은 저라는 인간을 더 잘 웃고 배려하는
    법을 아는 인간으로 만들어주었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준 놀라움의 영역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영역은 ‘K’입니다. 과거에도 어느 인터뷰에선가 이야기한 기억이 있는데, 저는 원래
    ‘국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방탄소년단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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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게 되고 저 역시 이를 발판 삼아 글로벌 마켓에서 사업을 펼쳐가면서
    ‘K-POP’의 ‘K’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글자에 대해 책임과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면 좀처럼 바뀌기 힘든 한 사람의 가치 기준과
    철학이 이 정도로 바뀐 것도 놀랍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요즘에는 ‘현재의 K-POP, K-콘텐츠의 경계를 좀 더 확장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더 나아가 음악 산업 자체의 가능성과 영향력을 보다 더 키워나갈 순 없을지’까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누가 저에게 책임을 맡긴 적은 없지만 이는 업계의 리더로서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고민들을 나누면서 오늘 이 자리가 K-POP과 앞으로의 음악산업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될 수 있도록 해보려고 합니다.
    K-POP의 현주소는?
    먼저 제가 체감하고 있는 K-POP의 현주소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K-POP은 분명
    ‘신드롬’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보이그룹에서는 방탄소년단, 걸그룹에서는 블랙핑크가 ‘월드스타’,
    ‘슈퍼IP’로 일컬어지며, 이들의 성취가 ‘K-POP 신드롬’을 본격화하는 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K-POP은 문화로서도 산업으로서도 ‘K' 라는 글자가 가진 힘을 증폭시키는 한 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K-콘텐츠 산업은 국가 핵심 수출 산업으로 반도체, 이차전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1 수준으로
    성장했고, K-POP은 비단 음원, 음반의 성공을 넘어 패션, F&B, 뷰티, 소비재, 교육 등 산업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촉매제로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관광의 경우에도 코로나 이전 기준 관광객의
    10명 중 1명 이상이 한국 방문의 이유로 ‘K-POP을 경험하고 싶어서’를 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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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한국인 슈퍼스타의 등장은 글로벌 팬덤을 대상으로 주류 음악시장에서 소수로 여겨지던 인종과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고, 저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화적 영향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재능있는 크리에이터들의 발굴과 이들의 세계 무대 진출 기회가
    넓어지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지리적 경계 없이 반향을 일으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K-POP은 국내/외 시장을 함께 공략해야 보다 대세감이 생기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글로벌 산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지금의 이 자랑스러운 성취에 만족하기보다는 오히려 ‘위기감’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임이 분명하지만, 글로벌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2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외래관광객조사>
    1 제4차 수출전략회의 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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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거점을 두고 있는 주요 K-POP 회사들의 글로벌 음반원 시장 전체에서의 매출 점유율은 아직 2%
    미만
    3입니다. 반면 글로벌 음악기업 메이저 3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 소니뮤직그룹, 워너뮤직그룹은 한
    회사가 15~30%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고, 3사를 합치면 전체 음악시장의 67.4%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현재의 K-POP은 세계시장에서 ‘골리앗’과 같은 메이저
    3개 기업들 틈에 있는 ‘다윗’과 같습니다.
    골리앗과 같은 기업들이 다윗의 존재를 이제 막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건 어찌보면 고무적이나, 세계
    음악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을 봤을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지표가 있습니다. 미국 등
    주류시장에서 K-POP의 성장률이 최근 둔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빌보드 핫100 차트 기준, 2021년 대비
    작년 K-POP 음반의 차트인 횟수는 약 53% 감소했으며, K-POP 음반 수출 성장률도 2020년부터
    감소세를 보입니다.
    4 음반원 차트와 음반 소비 동향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지표들은 현장 일선에 있는
    종사자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한류의 인기가 꾸준할 거라 생각하기 쉬운 동남아시아에서도 K-POP은 최근 역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동남아 주요 국가의 음반수출 성장률은 2022년 전년도 동기대비 -30%를 기록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스포티파이 차트에서도 연 평균 K-POP 점유율이 작년 대비 28%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K-POP 아티스트는 있되, 걸출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아직 없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산업적 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해외에서 K-POP 고유의 노하우를 확장해나가면서 글로벌 탑티어 회사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 위해서는 신규 플레이어로서의 신선함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삼성이 있고,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현대가 있듯, K-POP에서도 현 상황을 돌파해 나갈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등장과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하이브를 포함한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을
    대단하다고 평가해주시고 격려해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겸손이 아니라, 현업에 있는 이들은 지금의
    인기가 ‘반짝’ 지나가는 것이 되면 안 된다는 위기감, 사명감 속에서 매 순간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성취에 안주하면 그간의 노력과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도태될 것이라 체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 화제를 전환해보면,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 중엔 홍콩 영화가 영화계의 ‘뉴웨이브’로 불리던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 배우가 맘보춤을 추던 장면은
    90년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한 컷에 보여주는 아이코닉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최근 일본 만화
    4 관세청 음반 수출입 통계
    3 PwC, Entertainment & Media Outlook | Recorded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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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램덩크>가 극장판으로 개봉했는데, <슬램덩크> 또한 90년대 일본 만화의 문화적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왜 이러한 사례를 말씀드렸냐면,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화적 전성기를 우리가 지금 ‘추억’으로서 회고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K-POP 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현재 상황과 연계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이 업을 시작한 사람이자,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아티스트와
    실무자의 피땀눈물을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저는 이 산업이 지닌 가치, 에너지가 훗날의 ‘추억’으로만
    회상되는 일은 정말 없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보다 더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리며 K-POP의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지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장세가 ‘정체’가 아닌 본격적인 하락세를 걷기 시작할 때 대처
    전략을 고민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기 때문입니다.
    K-POP의 지속 성장은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K-POP의 ‘Next’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방탄소년단과 같은 슈퍼스타의 탄생이 K-POP의
    영향력, 성장세에 막대한 기여를 한 것을 모두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K-POP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글로벌 슈퍼스타의 반복적인 탄생을 뒷받침해줄 인프라가 산업 전반에서
    보다 탄탄하게 마련돼야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는 주류 시장에서 K-POP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무엇보다
    크리에이티브가 핵심경쟁력인 산업이기에 다양한 크리에이티브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과
    크리에이티브의 영혼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수준의 건강한 경영방식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플랫폼이 품는 음악, 아티스트, 콘텐츠의 경계를 넓혀서 더 많은 전 세계의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이제 이에 대해서 한 항목씩 순차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글로벌 시장 내 존재감/영향력 강화
    앞서 말씀드린 쟁쟁한 글로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K-POP이 ‘반짝 신드롬’이 아닌 지속가능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려면 IP 자체를 넘어 기업 단위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K-POP 음반 및 음원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서는 현지에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영향력이 큰 파트너사들이 필요합니다. 소위 메이저 3사라고 불리는 회사들이 이런 유통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K-POP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매우 인기가 높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 특히
    세계 1위 음악시장인 미국에서도 K-POP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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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는 이런 유통사들과의 유통 요율 협상에 있어서 K-POP은 현지의 레이블들에 비해 협상력이 매우
    낮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글로벌 유통사들을 상대로 협상력을 키워나가려면 당연히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확보된 협상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조건의 유통 요율을 받음으로써 회사와
    아티스트의 성장에 도움이 될 재무적 성과를 내야 함은 물론, 규모를 지렛대 삼아 더 좋은 프로모션 기회를
    확보해 우리가 선보이고자 하는 음악, 아티스트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게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주류 음악시장에서 간과할 수 없는 수준으로 존재감과 영향력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제조업, IT업 등 다른 많은 산업들의 세계화 과정이 그러했듯, 글로벌 시장에서는 새롭게 부상하는
    경쟁자에 대한 견제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시장 진입 제한과 같은 형태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자리 잡은
    특정 시장의 관행과 운영방식도 K-POP의 해외 시장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업계 내 네트워크가
    중시되는 주류 시장에서 ‘기업 자체’로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입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이브의 경우, 이러한 고민들을 하면서 이타카 홀딩스, QC 미디어홀딩스와 같은 미국 현지 음악 회사들을
    인수하고,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산하에 있는 게펜 레코드(Geffen Records)와 합작회사도 설립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1위 음악시장인 미국에 깊이 진입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함으로써 강력한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쉽사리 바꾸기 힘든
    구조적 상황들 때문이거나, 현지 사정에 능통하지 못해 생겨나는 시행착오들을 최소화하고 현지 기업들과
    대등한 수준의 존재감, 영향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슈퍼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운영방식
    지속적으로 세계를 흔들 슈퍼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역량은
    건강하고 효과적인 경영방식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슈퍼스타가 탄생하려면, 그리고 아티스트의 성장
    속도와 발맞춰 오래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운영 시스템 전반의 고도화가 필수적입니다.
    누군가는 문화콘텐츠의 성공이 운이나 감에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콘텐츠 산업을 예측
    불가능하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제식으로 내려오는 콘텐츠 제작 과정을 구조화, 매뉴얼화하고,
    제작과 활동 노하우를 소중한 자산으로 축적해 선순환시키며, 업무를 체계화한다면 시장의 변수에 보다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동시에 좋은 IP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하이브가 2018년부터 도입한 멀티 레이블 체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멀티
    레이블 체계’가 어떤 것인지 좀 더 이해를 도와드리기 위해 부연설명을 드리자면, 단순히 하나의 우산이
    되는 브랜드 안에 여러 레이블이 공존하는 형태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전체적으로 성공을
    재생산할 수 있는 구조가 되도록 경험과 시행착오, 고민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구축된 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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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레이블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의 영혼이 그 레이블의 콘텐츠에 오롯이 담길 수 있도록
    제작의 자율성을 확보해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크리에이터의 에너지가 사업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작 과정을 포함한 운영 시스템 전반을 고도화해 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레이블은 끊임없이 새로운 크리에이터를 육성하기 위한 노하우들을 발굴하고 조직 운영에
    다시 반영시켜나가며 이 과정이 선순환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레이블들의 우산이 되어주는 본사는 회사의 인프라와 네트워크, 그리고 팬덤에 대한 인사이트를 모든
    레이블에 제공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며, 동시에 한 레이블의 성과가 그곳에만 머물지 않도록 멀티
    레이블을 구성하는 다른 레이블들로 공유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각각의 레이블들을 멀티 레이블 체계 안에서 운영하다 보면 건강한 경쟁이 서로의 수준을
    높여가는 데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선순환의 집적과 반복들이 결국 거대한 시스템 안에
    문화로 자리 잡고 구성원들을 고무하면서 지속적으로 슈퍼IP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게
    됩니다.
    K-POP은 비단 음악적 특성만을 가리키는 장르 용어가 아닌 음악과 콘텐츠의 제작, 유통, 마케팅, 팬
    커뮤니케이션 등 음악을 중심에 둔 시스템까지를 포괄하는 문화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멀티 레이블 체계는 하나의 스타일에 정체되는 것을 지양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시도의 출현 그 자체가
    주는 활기와 즐거움을 촉발하기에 문화가 발전되어나가는 방식에 부합한 최선의 해법입니다.
    플랫폼이 가진 힘을 믿고 진화시켜 나가는 것
    위에서 말씀드린 시도들은 다양한 슈퍼IP의 탄생 가능성을 보다 높여줄 것이며, 궁극적으로 K-POP의
    지속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에 더해 잠재적인 팬덤을 찾고 넓혀가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Fast Company>나 <TIME>과 같은 글로벌 매체에서 하이브를 혁신 기업으로 언급해주시는 것도
    아티스트들의 활약과 함께 글로벌 팬덤 플랫폼 위버스가 음악 산업을 바꾸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음반이 아닌 음원 소비가 늘고, 소셜미디어에서 숏폼 콘텐츠를 시청하듯, 기술은 주
    고객층이 여가를 즐기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꿔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예상합니다.
    기존에는 아티스트가 팬들을 찾아가던 방식이 주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팬들이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아티스트를 만나고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팬덤 플랫폼이 자리잡음으로써 아티스트와 소통하는
    방식,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2019년 론칭하여 글로벌 팬덤 플랫폼으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위버스가 그 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위버스는 조만간 MAU 10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유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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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국내 개발 앱으로서 몹시 의미 있는 성과입니다. 기존에 없었던 ‘팬덤 플랫폼’이라는
    영역을 세계 시장에서 새롭게 만들어 리드하고 있는 동시에, 핵심 기능 하나가 아니라 ‘팬’이라는 유저의
    필요와 편의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 커머스 - 스트리밍 등의 기능을 통합한 슈퍼플랫폼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위버스는 일본, 미국 등 다양한 해외 아티스트의 입점을 계속 늘려나가면서 더 많은 아티스트와
    팬들이 소통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해나갈 예정입니다. 전 세계의 다양한 팬들이 사용하고 있고 K-POP의
    잠재 팬덤 역시 규모가 확장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팬들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개개인의 필요에 맞춰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도 고도화해나갈 예정입니다. 단순 호감으로 유입된 팬이더라도 앱을
    탐방하면서 점차 슈퍼팬이 되도록 위버스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양적, 그리고 질적으로 다변화해나가고
    있습니다.
    앞서 공급자로서 응당 노력해야 할 기업 운영체계의 진화를 이야기했다면, 플랫폼은 팬 경험의 진화를
    위해 반드시 연구하고 확대시켜나가야 하는 영역입니다. 세계 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팬들이
    단순히 콘텐츠를 듣고 보는 행위에서, 경험하고, 생산하고, 그들끼리 교류 가능한 형태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우리나라 음악 기업이 리드하기를 바랍니다.
    K-POP의 가장 큰 경쟁력은 ‘사람’
    지금까지 K-POP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떻게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나눠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부분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부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사람’에서 온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제 생각을
    말씀드려왔는데, 여전히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해외 시장의 현황과 함께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지고
    있는 점, 멀티 레이블 체제가 필요한 이유, 플랫폼의 중요성 등 오늘 여러가지 아젠다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존속될 K-POP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사람’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 만큼, IP와 아티스트를
    중심에 두는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결코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소속 아티스트를 회사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단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 업에 평생을 종사한 사람이자, 저 또한 현재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생각들이 꼭 바뀌었으면 합니다. 회사는 인간이자 아티스트로서 아티스트의
    의지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엔터테인먼트업에서 말하는 ‘매니지먼트’의 본질은 회사와
    아티스트가 파트너십 위에서 시너지를 내는 것이고, 회사는 아티스트를 대행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지
    일방적인 결정이나 통보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회사 차원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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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루어져야 하지만, 저희의 업은 ‘대중문화’의 영역에 있기에 문화가 확산되는 공간이자 영향을 미치는
    주체로서 사회 전반에서도 공감대가 생겼으면 합니다.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중과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아티스트 육성 시스템을
    K-POP의 경쟁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이브의 경우, 아티스트 육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Training &
    Development 조직이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티스트로 데뷔하기 전인 연습생들의 트레이닝을 맡는
    조직이고, 좀 더 회사의 철학을 담아 이야기해보면, 단순히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업으로서 이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사랑할 이유를 스스로 찾아나가도록 도와주는 조직입니다.
    누구나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오기 전에 스스로 고민하고 경험해본 시간들이 사회인이 된 후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때 힘이 되어주는 것처럼 아티스트가 되는 과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연습실과 집만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되어버리는 건 가장 지양해야 하고, 연습생 기간 동안 아티스트로 성장해나가는 데
    필요한 전인적 인간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티스트와 연습생들이 심리적으로도 충분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도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이 K-POP 기업들이 갖춰야 할 인프라로 자리잡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필요합니다.
    과거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이 ‘3D 직종’으로 치부되던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때에
    비하면 사회의 시선이 많이 개선된 것을 체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봉이나 근무조건 등 종사자들의
    처우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과거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기준으로 한계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능성 높은 미래 유망산업으로 평가받는 분야들과 어깨를 견주는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도전적인
    목표들을 세워놓고 K-POP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종사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도 업계가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64만 명의 엔터테인먼트 종사자가 있고, 음악 산업만 약
    6만6000명의 종사자가 있습니다.
    5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K-POP을 근간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입지와 영향력이 보다 확대되어 나갈수록 고용 규모와 다양성에 있어서도 기여하는 바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음악제작, 사운드 엔지니어링, 안무, 스타일링, 아트, 디자인 등 크리에이티브 직군을
    비롯해, 제대로 된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 외 영역에서도 많은 인재들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산업의 파이 자체가 커지며 이종업계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다음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인재들의 유입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세계 무대를 상대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국경을 넘은 인재들의 유입에도 열려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유입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성과나 방법론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도전적인 프로젝트들을 시도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5 한국콘텐츠진흥원 <2021년 하반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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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연봉과 근무조건을 포함한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 노력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재들의 유입, 건강한 시너지, 의미 있는 도전과 노력에 응당한
    보상이 있는 산업으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K-POP 그 이상을 위한 도전
    음악을 계속하고 싶어서 하이브를 창업한 사람으로서, 저는 진심으로 우리나라 음악 산업이 꾸준히
    번창해나가길 희망합니다. K-POP은 많은 이들이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경제적, 문화적 함의를 가지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자 성장동력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K-POP은 융합의 시대에 계속해서 기존 틀을 깨고 글로벌 대중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아가야
    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우물의 안이 아닌 밖을 보며 ‘국가대표 기업’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것,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슈퍼IP를 배출해 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기업 자체로의 지속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이브도 지금까지의 K-POP 그 이상을 바라보며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선두 플레이어로 도약하기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해나갈 예정입니다. 이타카 홀딩스, QC 미디어홀딩스 인수 등으로
    물리적, 장르적 확장을 보여드렸으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색깔의
    레이블들을 맞이하는데 언제나 열려있는 시스템으로서 멀티 레이블 체제를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편에서는 K-POP에서 시작한 회사만이 가능한 콘텐츠와 플랫폼 경쟁력을 계속
    강화해나가면서, 글로벌 제작 시스템 측면에서 다양한 이종 장르, IP들과의 융합을 추구해나갈
    예정입니다. 위버스와 같은 플랫폼들을 중심으로 음악-기술의 접목이 탄생시킬 수 있는 팬 경험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발굴하는 시도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더 많은 인생의 아이러니와 만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아이러니가 더 ‘좋은 놀라움’으로 연결될 것이라 믿고 기대하며 소망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아티스트와
    업계 종사자, 팬덤이 함께 키운 글로벌 역량을 기반으로 골리앗과 어깨를 견주려는 다윗의 도전을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부터, 전세계가 우리가 만든 음악과 콘텐츠를 오래 즐길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힘쓰겠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