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추행 징계양정기준 마련' 권고… 軍 후속조치로 '일부개정령안' 예고대법원 4월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합의하에 항문성교… 추행 아니다" 판결김명수 대법원장 등 8명 "군인 사생활과 비밀·자유를 과도하게 제한" 판시일선 부대에선 "24시간 함께 숙식하는데" "군인 특수성 고려 안 한 판결" 불만계급집단 군대에서 '동성 커플' 너무 성급하게 인정해… 판결 납득 어려워
  • ▲ 서울 용산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 전경. ⓒ뉴시스
    ▲ 서울 용산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 전경. ⓒ뉴시스
    국방부가 영외에서 남성군인들 간 성관계를 처벌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전까지 '군인 간 성관계'를 군형법상 추행죄로 엄벌해온 군 당국이 대법원 판례에 떠밀려 사실상 '남남 군인 커플'을 인정한 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27일 "사적 공간에서 합의된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대법원 판례가 있었고, 그것을 존중해왔다"며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14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추행' 징계양정기준 마련 권고 등에 따른 후속조치로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담당 부서인 국방부 법무담당관실은 개정안에서 군형법상 '추행'을 '군인·군무원 등의 동성 간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그 밖에 이와 유사한 행위'로 정의했다. 구문과 비교하면 '동성 간'이라는 문구가 추가돼 처벌 대상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개정안에 추가로 '사적 공간에서의 합의된 성관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달기로 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국방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한 '군인 징계령 개정안' 중 '추행'과 관련 "'사적 공간에서의 합의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서면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형법 92조, 군내 성적 도덕관념 반하는 행위 근절 위해 제정됐는데

    군형법 제92조는 군대 내에서 남성군인들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기준조항이다. 92조 2(유사강간)에서 3년 이상의 유기징역, 92조 6(추행)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등을 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남성이 절대다수인 군 조직에서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거나 기존 성적 도덕관념과도 반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제정됐다. 군기 확립 등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지난해 4월21일 대법원은 남남 군인 커플이 사적인 공간에서 관계를 맺는 것은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은 남성 군인들이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합의하에 항문성교 등을 한 사안과 관련 "군형법상 추행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판결문을 보면, 각각 다른 부대에 소속됐던 두 남성 군인은 동성애 채팅 어플리케이션으로 처음 만났고, 이후 휴일이나 퇴근 이후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합의하에 성행위를 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한 재판부는 군인 간 합의에 의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이뤄진 경우에는 이를 처벌하기 위해 사생활 행위에 대한 수사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면서 군인의 사생활과 비밀·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허용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13명의 대법관 중 8명의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이 같은 군 당국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무엇보다 군인과 군대라는 특수한 신분과 조직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24시간 내내 군 부대에서 숙식하면서 세신과 취침시간까지 통제받는 현역 장병들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위수지역으로 이동이 제한된 부사관과 장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군인들은 휴가나 단순 외출 상황에서도 신분상 군인에 해당해 입수보행 금지 등 각종 규칙이 뒤따른다. 사회에서 오전 9시까지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면 개인적인 사생활을 영위하는 일반인들처럼 공과 사를 구분지어 생각할 수 없다. 사적 공간에 있더라도 군인이라는 신분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공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이다.

    "낮에는 군인 하고 밤에는 안 해도 괜찮나"… '대법원의 설익은 판결' 비판도

    일선부대 한 간부는 "장병들이 휴가 가면 사실 이들을 관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그러나 현역 장병은 1년6개월 동안 군인 신분이고, 부사관·장교들도 하루 24시간 중 군인이 아닌 시간이 없는데 공·사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다. 낮에는 부대에 있어서 나라를 지키고, 밤이나 휴가 때는 집에 갔으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라고 비판했다.

    재판부의 '설익은 판결'을 향한 비판은 이 사건을 담당한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두 대법관은 여전히 동성 간 연애 및 결혼에 관한 사회적 논의나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군에서만 성급하게 동성 커플을 인정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두 대법관은 "사적 공간에서 행위자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하여 이뤄진 성행위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이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입법자가 형법과 별도로 군형법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추행죄'를 규정해 이에 해당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주되게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형법에서 보호되지 않는 사회적 법익인 '군기'의 유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은 몇 명의 법관이 아니라, 실제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 전반의 시민들이 전문가의 연구 등을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헌법과 법률이 마련한 정당한 입법 절차를 통해 사회적 합의의 형태로 결정돼야 한다"면서 "다수의견은 시민사회·학계·법률가 및 정치권 등의 소통을 통한 논의와 입법 절차를 통해 얻어야 할 결론을 법률 문언을 넘어서는 사법판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법조계에서 논란거리인 '비동의간음(추행)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안철상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내고 "군인 등의 위와 같은 성적 행위가 자발적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 사적 공간에서의 행위라 하더라도 현행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며 "그러나 이것은 군형법에서 비동의추행죄를 신설하는 의미가 되고, 이에 관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도입하는 것은 형사법체계에 큰 논란을 초래하는 것이어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국방부 법무담당관실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는 밖에 나가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처벌할지 여부에 대해 판단한 것"이라며 "부대 안이라면 영내는 개인 사적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추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군인이 영내에서 성행위를 했다면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처벌하는데, 남성 군인 간 관계 역시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처벌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