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열병식서 김정은 손잡고 모습 드러낸 김주애…김정은에게 귓속말, 손으로 볼 만지기까지지난해 11월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부터 꾸준히 관영매체에 등장…김여정 존재는 '흐릿'
  •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건군절(2월 8일) 75주년 기념연회에 참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함께 건군절(2월 8일) 75주년 기념연회에 참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그의 딸인 김주애를 공식행사에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의도에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백두혈통'인 김주애를 띄움으로써 북한의 4대 세습체계를 굳건히하고, 동시에 최측근인 김여정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월8일 '화성-17형'과 신형 ICBM 등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낸 김일성광장에 주인공은 김정은이 아닌, 그와 리설주를 똑닮은 11살 여아(女兒)가 차지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에 비친 김주애는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김정은 옆에 붙어 있었다.

    8일 열병식 열리던 김일성광장… 김정은-김주애 애정 과시

    때론 김정은에게 귓속말을 하기도 했으며, 김정은의 볼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기도 했다. 짧은 순간 멈칫한 듯한 김정은은 그러나 김주애의 행동을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부녀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김정은은 열병식 행사에서도 김주애와 나란히 걸었고, 열병식 전날 연회장에서도 김주애의 손을 잡고서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김정은의 둘째 딸인 김주애의 모습을 북한이 의도적으로 공개한 시점은 지난해 11월부터다. 김정은은 11월18일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하면서 김주애를 대동했고, 이 모습을 관영매체에서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1월19일자로 김정은과 김주애가 손을 잡고서 걷는 모습을 보도하며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와 함께 몸소 나오셨다"고 소개했다.
  •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 부인 리설주와 함께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 부인 리설주와 함께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北 고위급, 김주애 향해 90도 인사

    같은날 26일에도 김주애는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공로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축하하는 자리에 등장하는 등 공개행보를 이어갔다. 역시나 '사랑하는 자제분'이나 '존귀하신 자제분' 등의 수식어가 뒤따랐다. 김주애를 향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허리를 굽혀 90도 인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최근 들어 김주애의 모습이 공개되는 상황과 반대로, 존재감이 흐릿해진 인물이 있다. 김정은의 최측근이자 같은 2인자, '백두혈통'인 김여정이다. 김여정은 북한의 신형 무기들이 대거 나열된 8일 열병식에서 모습이 포착되지 않았다.

    열병식에 앞선 연회장에서, 김정은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서 박수를 치는 장면이 잠시나마 잡혔을 뿐이다. 최근 김여정은 '담화' 형식으로만 활동하고 있을 뿐, 과거 대대적으로 주목하던 김여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여정의 자·타의적 은둔과 맞물린 김주애의 등장은 현재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역시나 가장 먼저 언급되는 건 '후계 구도의 문제'다. 지난달 5일(현지시간)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북한의 리더십 주제 웨비나에서 수미 테리 윌슨센터 아시아국장은 "김정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혼란과 체제 붕괴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 경우, 김여정으로 권력 이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의 첫째 자녀가 성인이 되려면 2030년은 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만약 김정은이 몇 년 뒤에 죽는다면 김정은의 세 자녀 중 한 명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10년간 입지 다져온 김여정… 김주애 우위설은 시기상조"란 분석도

    이는 곧 현재로선 김정은 슬하의 '어린 백두혈통들'보다, 같은 백두혈통이면서 10여년간 정치적 입지를 다져놓은 김여정의 순위가 높다는 의미가 된다. 김정은과 리설주는 지난 2009년 결혼해 장남(2010년생)과 김주애(2013년생), 성별이 알려지지 않은 셋째(2017년생)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김정은 부재 상황시에는 실권자이자 백두혈통인 김여정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셈이다.

    마키노 요시히로 아사히신문 기자가 쓴 <김정은과 김여정>도 이를 뒷받침한다. 요시히로 기자는 저서에서 김여정에 대해 "김정은은 여동생 김여정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다"며 "현재 김정은이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근거는 '백두혈통'밖에 없다. 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중앙위원 가운데 '백두혈통'은 김정은과 김여정 두 사람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을 기념해 지난 7일 딸 김주애와 함께 인민군 장병들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숙소 방문 이후 건군절 기념연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사진은 기념연회에 참석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붉은 원). ⓒ연합뉴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을 기념해 지난 7일 딸 김주애와 함께 인민군 장병들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숙소 방문 이후 건군절 기념연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사진은 기념연회에 참석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붉은 원). ⓒ연합뉴스
    결국, 김여정의 입지가 커질수록 김일성부터 김정일, 김정은까지 3대째 이어져온 부모자식간 세습체계가 깨질 수도 있는 만큼, 북한으로서는 북한의 최고존엄 다음가는 권력자인 김여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일종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과거 김정남 암살 때처럼 행동했을 경우, 자칫 체제붕괴 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 '조용한 행동'에 들어갔다는 해석이다.

    어린 김주애를 지속적으로 공식선상에 내보이면서 '미래 여성상'으로 선전해 김여정이 갖고 있는 '신여성' 이미지를 퇴색시켜 정치적 입지를 흔들고, 이를 토대로 향후 성장한 장남 또는 김주애 등 자식에게 온전히 자신의 권력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예측이 나온다.

    앞서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김정은 위원장이 김주애를 대외에 공개한 것이 동생과 부인 등 김 위원장 인생에 '가장 중요한 두 여성' 사이의 경쟁 구도를 진정시키려는 복잡미묘한 제스처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진욱 한국전략문화연구센터 원장은 "김여정 부부장은 영향력이 강하고 야심만만하며 공격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아내는 이를 기꺼워하지 않으며 바로 이 점이 김 위원장이 딸을 공개한 이유"라고 더타임스에 밝혔다.

    이어 최 원장은 "김 위원장은 아내를 안심시키고 동생에게는 '이게 내 딸이고 미래 세대'라는 교묘하지만 명확한 메시지를 주고자 딸을 공개한 것이다.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면 (후계자라는 사실이) 지나치게 명백해 김여정으로서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김주애의 등장과 관련해서는 리설주가 승자고 김여정은 패자이며 이것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