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선암 투병 중 8일 오후 강원 원주 자택서 '별세'유족 "말과 글은 못 남겼지만… 웃음 보이고 가셨다"
  • ▲ '불세출의 저항시인'으로 불린 故 김지하. ⓒ뉴데일리
    ▲ '불세출의 저항시인'으로 불린 故 김지하. ⓒ뉴데일리
    "숨죽여 흐느끼며 /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과 자유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저항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4시경,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투옥과 고문 후유증으로 잔병치레가 잦았던 고인은 최근 1년여 동안 전립선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오다 이날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고인의 둘째 아들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제 아내와 장인·장모 등 함께 사는 가족 모두 임종을 지켰다"며 "일일이 손을 잡아보고 웃음을 보이신 뒤 평온하게 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임종 하루 전인 지난 7일부터는 죽조차 드시지 못했는데, 어제 임종 전 입에 넣어 드린 미음이 마지막 식사셨다"며 "말도, 글도 남기지 못하셨지만,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셨다"고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가 이날 오전 특실로 옮겨졌다.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9시에 진행될 예정. 장지는 고인의 부인 김영주(소설가 박경리 딸) 씨가 묻힌 원주 흥업면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작가 김원보와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칼럼으로 큰 반향

    1963년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저녁 이야기'라는 시를 발표한 고인은 1969년 '황톳길'을 '시인' 지에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1970년 '사상계'에 부패한 권력층을 비판하는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운동권과 정계가 주목하는 시인으로 떠올랐다.

    이 시를 발표하면서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인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아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고인에게 '저항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타는 목마름으로'는 1975년에 발표됐다. 이 시로 고인은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총 네 차례 구속되는 옥고를 치른 고인은 1980년대부터 '생명사상'에 눈을 떠 '사상가'로서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였다.

    1991년 명지대 강경대 군이 사망한 후 청년들의 '분신' 행렬이 이어지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기고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혀 운동권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던 고인은 같은 해 12월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고(故) 리영희 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조선일보와 뉴데일리에 기고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고인은 훗날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는 우파도 좌파도 아니오. 중간파도 아니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걸 내 사명으로 하는 사람이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2018년 시집 '흰 그늘',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발표 한 후 절필을 선언했다.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로부터 '로터스 특별상', 국제시인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에선 이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