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은 세계금융자본과 제국주의가 합작한 사건경제적 이득 노린 英 금융자본, 일본을 내란으로 몰고 가
  • 한반도를 정벌해 일본의 국력을 배양하자는 '정한론(征韓論)'은 에도 막부 말기에 등장해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꽃을 피웠다.

    이 이론의 실천 여부를 두고 내부 갈등을 벌이던 일본은 끝내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을 강제로 개항한 다음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 국가의 초석을 닦고, 그들이 원하던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서양식 군제와 무기를 갖추고, 내부의 불만을 아우른 다음, 대륙 진출을 도모하고 가장 먼저 조선의 병탄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 유신은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하고 나아가 제국주의 패권 국가로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설 '료마가 간다' 등으로 메이지 시대 '미화'

    이렇듯 메이지 유신은 일본만의 역사가 아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질긴 끈을 갖고 있는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스럽게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 대중에 전파되고 있는 메이지 유신의 이미지는 뜻밖이다. 만화 '바람의 검심(るろうに剣心)'을 보고 이 시대에 암약한 '신선조(新選組)'를 마치 사민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피를 흘린 '우국지사'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의 소설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를 읽고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무결점 영웅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이해하고 있는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뜻있는 지사들이 국가 개조를 위해 들고 일어나 구세력인 막부를 타도하고, '사민평등', '직업 선택의 자유', '부국강병', '문명개화' 등을 이룩한 애국적인 혁명이자 용단(勇斷)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일까? '격동 - 메이지 유신 이야기(도서출판 조윤커뮤니케이션 刊)'의 저자는 "우리는 오늘날의 일본을 있게 한 빅뱅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지 유신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다"며 "메이지 유신은 세계금융자본과 제국주의가 합작한 사건"이라고 단언한다.

    세계금융자본-제국주의, '막부 중심' 日 질서 무너뜨려

    '격동- 메이지 유신 이야기'는 막부 말기 유신 무렵의 묻혀진 사실을 발견해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선입관이나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메이지 유신은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탈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는 저자. 그에 따르면 에도 시대 말기 막부는 친 외세이고 개방적이었다. 따라서 외세가 막부를 쓰러뜨릴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에 있던 금융 자본가들은 경제적 이득의 최대화를 노렸다. 그것은 전쟁이었다. 일본을 내란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표면상 외세가 개입된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자기들 뜻대로 움직여 줄 내부 사람이 필요하다.

    영국은 이를 위해 조슈와 사쓰마에서 유학생을 받아 친영파 인물로 만든다. 그다음 이들을 이용해 당시까지 안정적이었던 막부 중심의 일본의 기존의 국가 질서를 전복하고 친영 정부를 수립했던 것이다.

    영국은 조슈와 사쓰마가 배상해야 할 전쟁 배상금을 막부로부터 받아 내, 영국에 적대적인 조슈와 사쓰마에 돈을 대주거나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줬다. 그 돈으로 국제 시장에 남아도는 미국 남북전쟁의 재고 무기를 구입하도록 해줬다.

    이렇게 조슈와 사쓰마는 막부를 능가할 정도의 전력을 갖추게 된다. 이제는 막부를 쓰러뜨리고 권력을 탈취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250년 전의 쓰라린 패배를 되갚아 준다고 하는 것도, 권력 탈취를 위한, 그럴듯한 명분에 불과했다. 뒷배는 영국이 봐준다. 외세의 개입은 그렇게 진행됐다.

    메이지 유신 후 조선 '병탄'‥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

    저자는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스스로 천황과 같은 존재인 프랑스식 대통령이 됨으로써 자신의 사상적 기반인 '존황론(尊皇論)'을  실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런데 최종적인 선택은 영국형 공화제였다. 물론 이것도 실현하지 못하고 권좌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가 물러났다고 해서 피의 전쟁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의회제를 받아들여 입헌국주국이 됐으나, 자본가의 탐욕과 군부의 지배욕이 얽혀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메이지 정부는 겉으로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와는 달리, 모든 국력을 군사대국으로 가는 길에 쏟아부었다.

    결국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패망의 길'로 나아감으로써 자국민을 황폐하게 만들고, 이웃 나라들에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줬다.

    이후 일본은 세상을 읽는 눈을 키워나가며 세계의 중심국가로 다시 섰다. 일본은 메이지 중심 세력의 후손들이 아직도 정계를 좌우하고 있다. 아베가 그렇고, 기시다가 그렇고, 아소도, 고이즈미도 역시 그렇다. 현재도 메이지 유신은 진행 중이다.

    저자는 일본 역사에 정통한 오욱환 변호사. 그는 "메이지 유신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우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을 받았으나, 그들의 근대화를 모델로 삼아 번영의 기초로 삼기도 했다"고 강조한다.

    ◆ 저자 소개

    오욱환 = 경기도 수원 출신.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법조계(사시 24회, 연수원 14기)에 입문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대한변협 총무이사 겸 사무총장, 서울변호사회 회장, 국민권익위원회 자문위원,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성균관대·한국외대·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과 법과대학에서 겸임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한양대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