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탄두 넘기고 안전보장 약속받고도 러시아에 침략당한 우크라'한미동맹'으로 전쟁억지력 확보한 이승만의 '외교적 혜안' 탄복
  • ▲ 지난 1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외곽에서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지나고 있다. ⓒ뉴시스
    ▲ 지난 1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외곽에서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지나고 있다. ⓒ뉴시스
    우크라이나 전쟁은 워낙 복잡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힘들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는 러시아계가 많이 살고, 반면 서부는 폴란드계가 많다.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도 원래 러시아계가 많이 살던 곳이고, 재밌게도 몽골계인 크림 타타르(Crimean Tatars)도 많이 산다. 러시아 지역을 지배한 킵차크한국(Kipchak 汗國)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같은 몽골로이드인 한국인과 외모가 비슷하다. 이들은 나를 만나니 강한 동질감을 표현했다. 같은 조상을 둔 한국인이라고.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 붙어있지만 원래 러시아 영토였다가, 소련 흐루쇼프(흐루시초프) 시대에 우크라이나에 할양됐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겐 뿌리 깊은 반러ㅡ반소 감정이 존재한다. 홀로모도르(Holomodor)라는 소련 스탈린 정권의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조직적 대량학살이 자행된 결과이다. 엄청난 수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이에 대부분 우크라이나 인들은 2차 대전 때 오히려 나치독일의 편을 들며 갈등이 더 심해졌고, 악감정의 골은 더 깊게 파였다. 물론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의 반목도 약하나마 일부 존재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에프(키이우)지역은 “키에프 루스”라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공동 발상지다. 우크라이나는 한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톨릭과 동방정교가 겹치는 문명권의 교차로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주류종교도 가톨릭과 동방정교의 융합체인 우니아트 교회(Uniate Church)다. 번역도 그리스동방가톨릭교회 라는 혼합적 표기를 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유대인들도 많이 거주했다. 현 대통령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도 유대계다. 미국의 저명한 지휘자-작곡가였던 레너드 번스타인도 부모가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계였다.  

    ​구(舊)소련의 이름 중에는 코(ko)로 끝나는 이름이 꽤 있는데, 대개 이들은 우크라이나가 오리진이다. 유셴코, 티모셴코, 포로셴코. 모두 근래 우크라이나 대통령들 이름이다. 현재 러시아에도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이었던 드미트리 키타엔코(Kitaenko)도 그런 경우였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자연스럽게 러시아와 결별하고 독립국가가 됐지만, 이후 친(親)서방 정권과 친러시아 정권이 교체되는 혼란기를 겪었다. 이 와중에 러시아는 친서방 측에 대한 방해 공작을 집요하게 전개했다. 그 절정은 친서방 대통령이었던 유셴코에 대한 테러였다. 유셴코는 수려한 미남이었다. 그런데 독극물 테러를 당해 목숨은 건졌지만, 얼굴과 건강이 망가졌다. 러시아의 테러전은 때때로 무자비하다. 러시아는 영국으로 망명한 자국(自國) 정보국원인 리트비넨코를 암살했다. 폴로늄을 리트비넨코가 먹는 홍차에 몰래 집어넣어 결국은 죽였을 정도로 집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복잡한 우크라이나 국내 사정을 이용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도네츠크 주와 루한스크 주 지역을 통칭하는 말)은 러시아계 인구가 다수이고 당연히 친(親)러시아적인 지역이라, 이곳을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시키고 결국은 러시아에 통합시키려는 것이 러시아의 의도다.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기 위한 목적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각서’라는 안전보장 서약을 1994년 12월에 받아냈지만, 요번 전쟁에서 보듯이 각서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고 핵확산 금지조약에 가입하면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의 현 국경에 대한 주권을 확인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이 있을 시 UN 안보리가 대처한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구(舊)소련이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3국에 남긴 핵탄두를 러시아로 넘기는 대신, 미국과 영국, 러시아 3국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존과 정치적 독립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각서다. 우크라이나는 이 각서에 따라 모든 핵, 즉 약 1800개의 핵탄두를 실제로 러시아에 이양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있자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각서에 따라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청했지만 헛수고였다.  

    국제정치는 냉혹하다. 일부 한국인들은 그 냉혹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문재인 정권과 지지자들은 필사적으로 종전선언에 집착했는데, 그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제 말뿐인 약속 대신에 쌍무(雙務)적 의무를 강제하는 한미동맹으로 전쟁억지력을 확보한 이승만의 외교적 혜안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집단심리상태는 한번 크게 당해봐야 정신 차릴 듯 말 듯 할 정도로 교란된 상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경각심을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