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인의 탄생]개정판 표지, 전성자 번역 ⓒ기파랑
    ▲ [개인의 탄생]개정판 표지, 전성자 번역 ⓒ기파랑
    회화·음악·문학으로 본 개인의 탄생

    ■ 책 소개

    <한 줄 소개>  “신(神)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근대 초 예술에 나타난 ‘근대적 개인’의 탄생

    <200자 소개>  사람들이 서로를 평등한 존재, 자율적 존재로 간주하며 서로를 대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근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개인은 단순히 개체적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이다. 위계질서, 계급의식, 집단주의에 매몰된 사회에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이 없다. 개인이 없고 집단만 있는 사회는 아무리 현대사회라 해도 전근대적 사회다. 개인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는 이유이다. 이 책은 미술, 문학, 음악 등 예술에서의 개인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책 리뷰

    근대적 개인의 탄생, 근대 예술가의 탄생

    유럽의 박물관을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서양 명화집을 한 번이라도 들춰본 사람이라면, ‘왜 예수, 성모, 성인들이 이렇게도 많이 등장하는 것일까? 왜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들이 이렇게도 많이 그려진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그 많던 성모상 대신에 실내에서 우유를 따르는 여자 같은 현실 속의 평범한 인간이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
    바흐의 음악에서는 깊은 종교성이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바흐의 음악은 종교음악일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이념인 민주주의가 서양에서부터 대두한 이래 개인주의가 확산하면서 이기주의와 동일시되어 가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어쩔 수 없는 이면일까? (옮긴이의 말, 7쪽)

    『개인의 탄생: 서양예술의 이해』는 일견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러한 물음들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한다. 바로 ‘근대적 개인의 탄생’이다.
    유럽의 예술이 ‘성스러운’ 임무에서 벗어나 가장 개별적인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근대 초다. 츠베탕 토도로프(회화), 베르나르 포크룰(음악), 로베르 르그로(사상) 3인의 저자는 ‘개인’을 화두로 각자의 담당 영역에서 근대의 여명기 유럽 예술 속에 ‘개인’의 등장한 궤적을 살핀다.
    회화의 경우 그것은 로베르 캉팽, 랭부르 형제, 얀 반 아이크 등 플랑드르 화가들에서였다. 그전까지 화화의 역할은 영웅이나 사자(死者)를 기리거나 신이 만든 세계질서에 순응하며 신을 찬양하는 역할에 복무했으나, 신 대신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대두하면서 이제 ‘개인’이 당당하게 회화의 제재로 떠오른다. 반 아이크부터 그림에 서명(사인)이 등장하는 것은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 더불어 ‘개인으로서 근대 예술가’도 탄생했음을 증언한다.
    음악에서 ‘감정 해방’을 주창한 선구적 인물이 과학자 갈릴레오의 아버지 빈첸초 갈릴레이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아들이 우주의 질서를 새로 기술하기 한 세대 전에 아버지는 ‘천체의 조화’를 체화하는 대신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음악의 임무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으니 말이다. 작곡가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오르페우스)>를 비롯한 오페라와 새로운 양식의 마드리갈은 빈첸초의 선구적 외침의 음악적 실현이었다.
    신 대신 인간이 중심이 됨으로써, 신이 부여한 것으로 간주되던 봉건적 신분질서도 의심의 대상이 된다. 개인을 타고난 계급이나 정치집단의 일원으로만 보던 시대에서 독립한 개인으로 보고, 나아가 다른 개인을 다른 집단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개인’으로 인식하는 사유의 전환은 다름 아닌 근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다. 예술의 변화를 통해 근대성을 근원을 더듬는 이 책이 특별히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자주 소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개인주의는 예술의 종말을 불러올 것인가
    마지막은 토론이다. 전반부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페트라르카로부터 크리스틴 드 피잔, 몽테뉴 등을 통해 글쓰기에 ‘개인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과정을 둘러보고, 픽션에서는 2세기쯤의 시차를 두고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비로소 개인이 문학의 진정한 주제가 됐다고 선언한다. 문학 내 장르 간의 시차뿐 아니라 미술(15세기), 음악(16~17세기), 문학(16~18세기)에서 개인이 전면으로 등장한 시기에 편차가 있었다는 것도 주목할 점.
    근대적 개인의 탄생이 근대예술을 낳았다면, 개인화가 더욱 진전돼 개인이 ‘원자화’되면 현대예술은 위기, 나아가 종말을 맞이하지는 않을까? 저자들은 현대예술에 전체주의와 극단적인 주관화(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같은)의 상반하는 두 경향이 공존한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개인들의 공동의 세계’라는 지평을 포기하지 않는 한 ‘상상의 박물관’으로서 예술은 아직 사회 속에서 담당할 역할이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의 작품을 왜 읽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과거의 사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토론, 197쪽)

    ■ 저자 소개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 1939~2017)는 불가리아 태생의 프랑스 문학이론가, 역사학자, 철학자다. 구조주의 언어학에 기초하여 문학 텍스트의 형태에 관한 이론 수립을 시도했고, 한국을 방문해 강연한 적도 있다. 현대사 및 정치에 관한 『악의 기억』, 『의무와 환희: 뱃사공의 삶』, 플랑드르 미술을 연구한 『일상 예찬』, 『개인 예찬』 등의 저서가 있다.

    베르나르 포크룰(Bernard Foccroulle, 1953~ )은 벨기에 출신의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음악학자다. 바흐의 오르간곡 시리즈(전 12장)를 비롯해 바로크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오르간곡 레코딩이 있다.

    로베르 르그로(Robert Legros, 1945~ )는 벨기에 출신의 철학자이며 프랑스 캉 대학교 명예교수다. 저서로 『청년 헤겔과 낭만적 사고의 탄생』, 『인간성의 관념』, 『우리는 왜 니체주의자가 아닌가』 등이 있다.

    옮긴이 전성자는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다. 옮긴 책으로 로맹 롤랑 『베토벤의 생애』, 시몬 드 보부아르 『나의 처녀시절』 『초대받은 여자』 『작별의 예식』, 나탈리 사로트 『낯모르는 사람의 초상』, 에밀 시오랑 『태어났음의 불편함』,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