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요구하는 핵심 사안은 상호존중,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이중기준 철회 상호존중, 평화공존, 평등호혜 같은 내용 넣으면… '북한 비핵화' 명분 잃게 돼文 "北 비핵화 이후 종전선언" 주장하더니 "종전선언이 비핵화 발판" 말 바꿔 논란
  • ▲ 지난 18일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문재인 정부 측에 종전선언 추진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8일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문재인 정부 측에 종전선언 추진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이 지난 26일 “종전선언의 시기·조건 등에서 한국과는 관점이 다르다”고 밝혔다.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종전선언 추진 속도 조절”을 문재인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전 종전선언을 추진하려는 문재인정부에는 부담이 생겼다.

    지난 27일에는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문재인정부의 종전선언과 관련한 견해를 내놨다. “종전선언과 관련해 북한과 중국이 제안하는 장소나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절대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28일 태 의원에게 의견을 물었다. 태 의원은 “북한의 비핵화 약속이 포함되지 않은 종전선언은 절대 안 된다.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선 전까지 남북한과 미국, 중국 모일 수 있는 곳 베이징 동계올림픽”

    -27일 내놓은 발표자료를 봤다. 북한과 중국이 종전선언 장소로 왜 베이징을 제시할 것이라고 예상했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4자 종전선언을 하자고 제안한 뒤 ‘베이징에서의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지금 상황이 이어지면 베이징에서 4자 종전선언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많은 전문가와 정부 인사들이 내년 대선 전까지 남북한과 미국·중국이 모일 수 있는 계기로 베이징 올림픽을 꼽는다. 최근에는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같은 친여 인사들 사이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종전선언을 하자”는 말이 나온다."

    - 종전선언 장소로 베이징을 선택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베이징을 종전선언 장소로 삼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북한과 중국이 서방의 호의를 어떻게 악용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2019년 6월30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났다. 당시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땅을 먼저 밟으면 나도 남측 땅을 밟겠다”고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수락해 북측 땅을 잠깐 밟았다. 그런데 북한 관영 매체가 이걸 어떻게 보도했느냐.
  • ▲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대통령이 북측 땅에 넘어 갔다가 다시 남측 땅으로 넘어오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대통령이 북측 땅에 넘어 갔다가 다시 남측 땅으로 넘어오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튿날 북한 관영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 땅을 밟는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여러 차례 보여주면서 “북한은 이제 전략국가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선전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을 봉쇄하고 억압하던 미국이 자신들의 대북전략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북측 땅을 밟았다는 선전이었다.

    북한은 또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미북정상회담 등 비핵화 대화를 미국의 항복이라고 선전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과는 종전선언을 다른 시각에서 본다. 북한은 미중관계 개선 과정을 참고한다.

    2019년 6월 판문점 접촉 때 트럼프의 호의를 선전에 악용한 북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공산당이 본토를 차지한 뒤 미국은 대중 봉쇄전략을 채택했다. 미국은 1965년 원자폭탄 실험, 1967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중국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1969년 “아시아의 일은 아시아의 손에 맡긴다”는 닉슨 독트린이 나오면서 중국과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역학구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닉슨은 1972년 2월 중국을 찾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Nixon goes to china”라는 말을 만들어 썼다. 닉슨이 냉전 구도에서도 이념적 적대세력과 경계를 허물고 화해 분위기를 만들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중국은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북한처럼 선전선동에 활용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닉슨이 2월21일 베이징공항에 내려 중국 땅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당시 공항에는 저우언라이가 마중나왔고, 간단한 의장행사를 치렀다. 닉슨이 공항에서 마오쩌둥을 만나러 가는 거리는 모두 텅 비어 있었다. 환영하는 군중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중국은 속내를 드러냈다. 모든 신문의 1면에 닉슨이 베이징공항에서 내리는 순간이 실렸고, 방송은 그 순간을 슬로모션으로 계속 보여주며 “미국이 백기투항했다”고 선전했다. 닉슨이 영빈관으로 가는 길목에 아무도 없었던 이유도 밝혀졌다. “닉슨은 항복하러 중국에 온 것인데 환영할 군중을 왜 동원하느냐”는 논리였다. 북한은 이런 중국의 선전선동술을 벤치마킹해서 미북대화나 남북관계에 사용한다. 종전선언 또한 이런 선전선동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 닉슨의 방중을 중국이 선전에 악용한 것을,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 그대로 따라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인가?

    "중요한 것은 이때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뒤 1972년 2월28일 미국과 중국이 ‘상하이 공동선언’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당시 양국은 ▲영토와 주권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평등호혜 관계 ▲평화공존 등 5개 원칙에 합의했다.

    눈에 보이는 5가지 원칙 말고 더 중요한 점은 양국이 공동선언을 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대중 봉쇄전략을 폐기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미중 간 평화협정인 셈이다. 김일성은 이 모습을 보고 닉슨의 방중을 ‘백기투항’이라고 해석했다.
  • ▲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과 관련해 '제2의 상하이 미중 공동선언'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종현 기자.
    ▲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과 관련해 '제2의 상하이 미중 공동선언'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종현 기자.
    지금 북한은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2의 상하이 공동선언’과 유사하게 만들려고 한다. 만약 남·북·미·중 4자 공동선언에 ‘상호존중’ ‘평화공존’ ‘평등호혜’ 같은 내용을 넣고 합의하면 결국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을 잃게 된다. 그래서 미국이 종전선언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이다.

    종전선언, 제2의 상하이 미·중 공동선언 될 경우 북한 핵 보유국 인정하는 꼴

    냉전 시절 공산권 국가를 이끌던 소련이 사라진 뒤 지금은 중국이 세계 공산독재정권들의 종주국 역할을 한다. 북한은 예부터 중국 공산당의 정책을 많이 참고했다. 종전선언을 할 경우 ‘상하이 공동선언’을 참고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 한반도 종전선언이 ‘제2의 상하이 미·중 공동선언’처럼 될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지금 북한이 요구하는 핵심 사안은 상호존중,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 이중기준 철회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 북한은 “한미동맹과 대북 억지력을 위한 주한미군 체제는 인정할 테니 핵무력에 기초한 우리 안보체제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판 상하이 공동선언’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김정은이 지난 11일 무기전람회에서 “미국과 한국이 주적이 아니라 전쟁이 주적”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문재인정부가 종전선언을 적극 추진하려 해도 휴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미국의 의사가 중요하다. 최근 미국에 다녀오셨는데, 미국 학계와 정계에서는 종전선언을 어떻게 보나?

    "미국 학계에서는 '모든 일에는 시기와 명분이 필요하다'며 종전선언 추진에 부정적이다. '북한이 아무런 비핵화 조치도 않으면서 오히려 단거리미사일 실험을 하며 핵무력을 증강하고 있는데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냐. 이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미국 학계의 의견이었다.

    미국 학계 “종전선언, 북한 비핵화 이뤄지는 가운데 해야”

    미국 학계에서는 '종전선언을 하려면 북한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는 가운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분명 '북한의 비핵화 이후 종전선언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와서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을 바꾸는 것이 '북한 핵 개발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 ▲ 종전선언을 북한·중국이 요구하는 문구대로 할 경우 북한에게 핵보유국 지위를 주게 될 것이라고 태 의원은 지적했다. ⓒ이종현 기자.
    ▲ 종전선언을 북한·중국이 요구하는 문구대로 할 경우 북한에게 핵보유국 지위를 주게 될 것이라고 태 의원은 지적했다. ⓒ이종현 기자.
    미국 정·관계는 공식적으로는 종전선언 관련 언급을 삼간다. '미국은 한국이 제안한 종전선언과 관련해 논의 중”이라는 답변만 내놓는다.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동맹국으로서 종전선언을 고려는 할 수 있지만, 북한이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있는데 종전선언에 동의해 주면 북한에 끌려가는 인상을 줄 것으로 우려한다. 또한 내년 3월 한국 대선을 앞두고 야당이 강력히 반대하는 종전선언을 하면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다."

    - 최근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속도조절론’도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그렇다. 그동안 바이든정부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지난주 서울에 온 성김 특별대표가 한미 간 종전선언 관련 논의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일부 인사는 “미국이 종전선언문 문구 조정까지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현재 종전선언이 문재인정부 말처럼 단순한 정치적 성명이냐, 아니면 정치적 리스크가 생기느냐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속도조절론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 문재인정부는 계속 “종전선언을 해도 정치적 성명에 불과할 뿐 한미동맹이나 한반도 안보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종전선언을 해도 괜찮지 않으냐”고 말한다.

    "사실 종전선언 자체로는 선언적 의미밖에 없지만, 평화협정을 염두에 두고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전쟁 종식은 평화협정으로 이뤄지는데, 핵심은 적대시정책의 철회다. 또한 전쟁의 책임과 배상문제, 전승국과 패전국 간의 외교관계 수립 등을 거쳐 평화체제를 구축을 한다.

    즉, 북한은 종전선언 이후 당연히 평화협정을 요구할 것이고, 그 핵심인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요구할 것이다. 또한 북한이 종전선언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는 상호존중, 이중기준 철회 등을 함께 받아들이면 결국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 인정, 유엔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라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의 한반도 전략과도 정확히 부합한다."

    “종전선언이 북한 핵 개발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 명시해야”

    - 오늘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보고에서 북한이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으로 한미연합훈련 중단, 대북제재 해제, 광물 수출 및 석유 수입을 허용해 달라고 했다. 즉, 북한은 종전선언을 앞세워 북한 비핵화 압박수단을 제거하려 한다. 의원께서 보시기에 종전선언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문구와 절대 포함되면 안 될 문구라면, 어떤 것이 있는가?
  • ▲ 태 의원은
    ▲ 태 의원은 "종전선언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지만 문재인 정부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종현 기자.
    "종전선언에는 ①한반도 비핵화로 이어지도록 강제하는 조항이나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②종전선언이 북한 핵개발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③북한의 핵물질 신고 리스트를 선언 참여국들에게 제출·공유하고, 이에 따라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응조치를 하도록 하는 문구를 넣는 것이다. 이는 북한 스스로 핵 개발을 포기한다는 선언으로 국제사회에서 간주될 것이다. 또한 ④종전선언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문구도 반드시 넣어야 한다.

    반면 ⑤‘단계적 핵군축’이라든지 ⑥‘한미는 동북아시아에 조성된 세력균형과 변화를 인정한다’ ⑦‘북한과 중국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평화 보장 및 전쟁 억제 기능을 인정하고 ⑧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달라진 안보구조를 존중한다’와 같은 문구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런 문구가 들어가면 북한은 분명 미국에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핵군축을 시도할 것이다."

    “종전선언, 사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다만 문재인정부처럼 하면 안 돼”


    - 문재인정부의 주장대로 종전선언을 서둘러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종전선언은 전쟁 당사자 간에 평화를 공고히 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남북은 이미 1991년 불가침선언을 했다. 시점 또한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문재인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더라도 이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흥정 대상도, 비핵화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 북한이나 중국이 종전선언 장소를 베이징 외에 다른 장소로 제안할 수도 있을까?

    "지난 기간 북한·중국과 미국 간의 관계를 돌아보면, 베이징 다음은 평양에서 하자고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이면 안 된다.

    6·25전쟁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최근 북한과 중국은 혈맹관계를 자랑했다. 북한은 중국이 참전한 10월25일 중국군 묘지에 헌화했고, 중국은 6월25일에 맞춰 참전을 기리는 영화를 개봉했다. 시진핑은 6·25전쟁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이정표”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만약 베이징이나 평양에 가서 종전선언을 한다면, 전쟁 피해자인 우리가 가해자인 북한·중국 쪽에 가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하는 꼴이 된다. 그건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