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기획, 전직 대통령 7명 평가… 이택선 외교학 박사, 이승만 공과 조명"외교협상·권력투쟁 위해 카리스마로 무장… 공산주의 맞서 대한민국 지킨 국부""독립하려면 중국 영향권 벗어나 미국 같은 민주공화국 이뤄야"… 확신으로 현실 바꿔
  • ▲ 이택선 서울대학교 외교학 박사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평가 강연회에서 '이승만, 국부와 독재를 넘어'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 이택선 서울대학교 외교학 박사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평가 강연회에서 '이승만, 국부와 독재를 넘어'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큰 줄기를 설정하였다."

    이택선 서울대 외교학 박사의 이승만 전 대통령을 향한 총평이다.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하우스 카페에서 정치인과 학자, 시민 등 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강연에서 이 박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날 강연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등이 '2022 대선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자리로, 매주 전직 대통령 7명의 공과를 평가할 계획이다.

    이 박사는 이날 강연에서 "현재까지도 한국 지도자의 필수 요건은 '강력한 카리스마'"라며 "윤석열·이재명도 카리스마를 가졌기에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주목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 덕목을 실제로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짚었다.

    "이승만은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권력 의지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이 박사는 "북한과 공산주의의 침략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냄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군사·경제원조를 얻어냄으로써 취약국가였던 대한민국을 지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점에서 그는 준비된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승만의 카리스마는 그의 성격에 기인한 부분도 크지만, 상당부분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며 "그의 시대가 이승만에게 카리스마를 요구했고, 이는 당대 많은 이들의 증언과 인물유형에서도 확인된다"고 진단했다.

    "외교협상·권력투쟁 위해 카리스마로 무장"

    "무엇보다 안보도, 경제도 보장되지 않은 미숙한 나라,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은 외국을 상대로 한 외교협상을 위해서나 국내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권력투쟁을 위해서도 카리스마로 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제한 이 박사는 "그의 사투의 흔적은 고스란히 역사가 되었고, 후대는 그 흔적을 감정하여 그를 영웅, 독재자, 분단의 원흉, 외교의 천재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을 '혁명가'라고 규정했다. 구한말 독립협회의 청년지도자로서 만민공동회를 조직해 조정에 맞섰을 때와, 민영환의 호의로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조국의 독립을 청원했을 때 그는 독립투사였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3·1운동의 정신을 살려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근대 정치제도인 공화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지식인"이었으며 "누구보다 넓은 인맥과 국제정치에 관한 안목을 바탕으로 외교 독립 노선을 끝까지 지켜낸 지도자"라는 평가다.

    나아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동포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운 지도자이기도 했다"며 "무엇보다 그 이후로 이 대통령은 공도 과도 누구에게 떠넘길 수 없는 한국 현대사의 중심 인물, 자타 공인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고난을 겪은 시기도 거론했다. 이 대통령이 1920년대 임시정부에서 탄핵되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던 시기는 "그때의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중풍으로 쓰러져 그의 후처가 권한대행을 했는데, (변고를) 비밀리에 부치고 이 대통령을 안 만나는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 ▲ 이택선 서울대학교 외교학 박사. ⓒ강민석 기자
    ▲ 이택선 서울대학교 외교학 박사. ⓒ강민석 기자

    "신념에 대한 확신... 현실을 바꾼 지도자"

    "하지만 이승만은 언제나 신념에 대한 확신과 함께 현실을 바꾸었고, 한국 현대사를 정초한 수많은 일이 그의 발걸음 뒤에서 만들어졌다"고 평가한 이 박사는 "여운형이 조선총독부에 탄압받을 때 이승만은 라디오에 나와 방송 연설을 통해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10년 만에 극적으로 부활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박사는 이 대통령의 과오로 공화주의에서 강조하는 법치를 무시한 점, 강한 반공주의에 입각한 장기집권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한 점, 지나친 반일주의로 경제개발 시기를 늦춘 점 등을 거론했다. 또 "현대사를 보면 정권 말기에는 고위공직자의 입시비리가 있었다"며 이 대통령의 양자였던 이강석의 서울대 법대 부정편입 사건을 '조국 사태'와 연결짓기도 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한 시민은 이 박사의 강연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강연 참석을 위해 경남 고성에서 상경했다는 허용화 씨는 "개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데, 좌익적 시각에서 강연하면 수강료 내고 강의 들으러 온 것이 시간낭비"라고 불만을 표했다. '이승만정권은 정치깡패들과 서북청년회를 이용해 정권에 반대하는 시민과 정치인들을 탄압했다'는 이 박사의 지적에 따른 불만이었다. 

    이 같은 시각은 좌파 역사학계에서도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제주 4·3 사건'이다. 문재인정부는 대규모 보상금을 책정한 4·3특별법을 강행통과시켰다. 하지만 제주 4·3 사건은 헌법재판소가 2001년 9월 재판관 만장일치로 '공산 무장세력의 반란(폭동)'으로 판결한 바 있어 해당 특별법은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정권 반대자 탄압?… 반공활동 중 충돌

    이 대통령의 '반일주의'가 경제개발을 저해하는 요소였다는 주장이 편협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해방 이후 미국은 일본을 전략적으로 우선하는 국가로 삼고 한일관계 회복을 주문했지만, 이 대통령이 끈질기게 반대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중국·러시아와 대립하는 냉전기에 한국을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별도로 중요한 우방국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대규모 경제적 원조를 당당하게 받을 수 있었다.

    1957년 이강석 서울대 부정편입 사건은, 이강석이 총장 직권으로 입학했는데 이를 정식 절차로 보지 않은 학생들이 동맹휴학에 돌입한 것이었다. 입학 과정에 권력의 뒷배가 작용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시대를 앞선 독립운동 노선의 수호자"

    이날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토론회에서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 의장은 "이승만은 '친미 민주공화국'을 세우자는 시대를 앞선 독립운동 노선의 수호자"라며 "미국 선교사들이 (청년) 이승만을 조선의 리더로 낙점했다가 (조지워싱턴대로) 유학시키고, 미국 교회지도자와 저명인사에게 추천서를 써주면서 키운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주 전 의장은 "이승만은 아펜젤러·언더우드·게일 형들하고 나눈 대화에서 '우리나라는 이 길밖에 없다. 독립하려면 지정학적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미국과 같은 민주공화국을 해야 된다'고 말한 것을 고집스럽게 지켰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최성호 씨는 "오늘 강연 주제가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7인의 대통령'인데, 이 대통령의 정책 중 어떤 것이 밑거름으로서 기적으로 이어졌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이 박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큰 흐름이 정책적 함의를 갖고 있다"며 "잘못된 것도 얘기했지만 교육혁명, 토지개혁, 빛나는 외교도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탱시킨 건국의 아버지"라고 답했다.

  • ▲ 이현재 하우스 조합원, 김진성 초정요양병원장, 주대환 제3의길 발행인이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 이현재 하우스 조합원, 김진성 초정요양병원장, 주대환 제3의길 발행인이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