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이면 국가가 땅 다 뺏어… 원래대로 민간개발 하라" 건물·토지주 강력반발
  • ▲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창회 기자
    ▲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창회 기자
    토지·건물 소유주의 동의 없이 진행된 '서울역 쪽방촌' 공공주도 정비사업에 따른 주민 반발이 거세졌다. 변창흠 국토교통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사업지 사전 고지는 형사처벌"이라며 향후 충분한 의견수렴을 약속했지만, 건물·토지주들은 강제지정 전면 취소를 요구했다.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건물·토지주들 모임인 '후암특계1구역(동자)준비추진위원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공공주택 추진사업에 강력반발했다. 

    추진위는 "정부의 추진 방식은 폭압적이고 사유재산 침해"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충분한 보상을 넘어 강제지정 전면취소"라고 밝혔다.

    변창흠 "사업지 사전 고지는 중범죄… 논의 못한 것 불가피했다"

    변 장관은 지난 13일 YTN과 인터뷰에서 "지구 지정 여부는 공시 전 공개될 경우 형법상 처벌받게 되는 중범죄로, 부득이 집주인과 토지주와 사전 논의가 불가능했다"며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2018년 제정된 '공공주택지구 보안관리지침'에 따라 사업 후보지 발굴부터 지구 지정 주민공람(의견청취) 전까지 해당 내용의 보안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변 장관은 "'서울역 쪽방촌'의 경우 공공주택지구 방식이 아니면 이주대책과 사업성은 물론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실제 주거취약층인 쪽방촌 주민들은 3배 이상 넓은 공간을 3분의 1의 임대료로 살 수 있게 돼 호응이 매우 높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토지주와 집주인에 대해서도 충분한 보상과 설득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추진위에 따르면, 변 장관 해명 이후 분노하는 주민은 더 늘었다. 현재 추진위에는 이 지역 전체 400여 명의 토지·건물주 중 78% 수준인 310명가량이 참여했다.

    추진위는 "정부 발표와 무관하게 일찍부터 이 지역의 소유권을 획득하고 동자동 주변지역을 복합상업시설과 주거·공공주택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만들 용역사업을 진행 중이었다"며 "서울시와 용산구는 복합도시계획안을 올해 말 발표할 계획이었고 쪽방촌 주민들에 대한 상생방안도 포함돼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추진위 "정부 기습적 계획 발표… 원래대로 민간 주도 개발하라"

    추진위는 그러면서 "정부는 이 같은 배경을 무시한 채 기습적으로 개발계획을 발표했다"면서 "건물·토지주들의 사유재산을 현금청산이라는 방법으로 강탈하려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추진위는 정부의 현금청산 보상방식에도 불신을 드러냈다. 이들은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보상 원칙과 방침을 세부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공시지가 정산방식은 정당한 보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그러면서 "정부의 사업계획 철회를 원한다"며 "원래 추진해왔던 대로 민간 주도 개발을 원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런 식이면 국가가 어느 땅을 뺏을지 아무도 몰라"

    부동산전문가들 역시 정부의 공공주택 개발계획에 문제점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5일 통화에서 "정부가 지금 공공주택특별법을 근거로 서울역 쪽방촌 관련사업을 진행하는데, 이 공공주택특별법은 사유재산 침해 소지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 ▲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창회 기자
    ▲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창회 기자
    심 교수는 "현 정부는 서울역 쪽방촌이 소위 더럽고 노후했다는 이유로 사업을 진행하려 하는데,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없다"며 "이런 방식이 계속되면 앞으로 국가가 어느 땅을 빼앗을지 누구도 모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 "거주민 보상받더라도 갈 곳 없어… 재입주 가능성도 희박"

    심 교수는 토지주와 집주인의 향후 거주문제에도 우려를 표했다. 심 교수는 "도시재생은 거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싼 가격으로 개선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며 "현재 정부의 방식은 거주민들이 보상받더라도 나중에 다시 입주할 가능성이 전혀 없을 뿐더러 당장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셋값 등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만 강조한다는 것이다.

    경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 공동대표를 맡은 홍세욱 변호사는 정부 공공개발이 ‘합법’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사업 추진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가 말로는 주택 공급이 시급하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굳이 공공주도 사업방식을 택한 이유에 따른 의문 제기다.

    홍 변호사는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는데도 정부가 굳이 공공주도 사업으로 SH 같은 건설사에 많은 혜택을 주면서 이렇게 강행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 “민간개발의 경우 조합과 충분한 논의가 가능하지만, 공공주도 방식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람 우선이라던 文정부, 책상놀음만 하다 참화 빚어"

    "현재 사업은 집을 지어야 하니 돈을 줄 테니 나가라는 식인데, 과연 쪽방촌에 살던 분들이 갈 곳이 있겠느냐"고 반문한 홍 변호사는 "주민들과 보상 및 이주에 관한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변호사는 이어 "현재 쪽방촌에 사는 분들이 개발 후 분양권을 얻더라도 추가 분담금을 내고 재입주할 능력이 될 것인지, 또 능력이 된다 하더라도 개발기간 동안 어느 곳에 어떤 방식으로 거주를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등의 구체적 지원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사람이 우선이라며 국민과 소통하겠다던 문재인정부가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황 평론가는 "실상을 모르는데 책상놀음으로만 상상의 나래를 펴기 때문에 이런 참화를 빚는 것"이라며 "현 정부가 과거 독재시절에나 가능하던 만행을 저지른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