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실천단계 들어가면 독재로 흘러… 혁명 위해서 여성의 성결정권 등한시
  • ▲ 좌측부터 이윤택 연출가, 김기덕 영화감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뉴데일리
    ▲ 좌측부터 이윤택 연출가, 김기덕 영화감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뉴데일리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 본상을 수상한 유일한 한국인 감독으로 국내외에 명성이 높은 김기덕(60) 감독이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보통 한 분야의 거장이 사망하면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라는 식의 애도가 쏟아지기 마련.

    그러나 김 감독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지 나흘이 지나도록 국내에선 그를 애도하거나 추모하는 글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생전 김 감독과 가까웠던 영화계 인사들도 '안타깝다'거나 '고인의 넋을 위로한다'는 등의 흔한 애도조차 꺼리는 모습이다.

    한때 '거장'으로 불리던 남자의 말로가 이렇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따가운 지적이 나온다. 영화 '빈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 '피에타' 등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였지만, 2017년 촬영장 안팎에서 여배우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남발하거나 성폭력을 행사한 전력으로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성관계 제안 거절하자 "믿지 못하겠다"며 해고 통보


    MBC 'PD수첩'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 중인 여배우들을 상대로 신체 치부를 희롱하는 수위 높은 막말을 내뱉고, 심지어 다른 남성 배우와 함께 성폭행까지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여배우에게는 다른 여성과 셋이서 함께 성관계를 맺자는 제안을 했다가 그 배우가 거절하자, "나를 믿지 못하는 배우와는 일을 하지 못하겠다"며 전화로 해고 통보를 하는 뻔뻔함도 보였다. 이 여배우는 촬영장에서 '감정이입에 필요하다'며 김 감독에게 뺨을 맞고, 대본에 없던 남자 배우의 성기를 만지는 연기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영화 촬영 중 숙소에서 배우 조재현과 김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한 여배우는 "지옥과도 같았다"는 말로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김 감독의 영화에 참여했던 한 스태프는 "촬영장에서 그는 왕이었다"고 말했다. 반기를 들면 바로 '퇴출'되는 상황이라, 그의 눈밖에 벗어나지 않으려면 다소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요구라도 감내해야 했다는 것.

    자기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무소불위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여성들을 하대한 김 감독의 행동들은 본인이 운영하는 극단 소속 여성 단원들을 장기간에 걸쳐 유사강간·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연극연출가 이윤택(68)을 떠올리게 한다.

    "조직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목… 집단최면 걸려"


    이윤택은 2010년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연희단거리패 소속 여배우 9명을 25차례에 걸쳐 상습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당초 이윤택은 총 17명을 상대로 성폭력(성추행·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았으나 검찰은 공소시효 등을 고려해 여배우 9명이 당한 강제추행 사실만 혐의로 적용했다.

    김 감독이 촬영장에서 왕이었던 것처럼 이윤택도 자신의 극단에서 왕이었다. 그는 지방 공연 중 단원들과 함께 머무는 숙소에서 여성 단원들을 수시로 불러, '성기 안마'를 강요했다.

    2018년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미투' 고백을 한 전직 연극인은 "저와 같은 미성년자가 반나체의 50대 성인 남성을 주무르고 있다는 게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최고의 연극 집단 중 하나라는,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목으로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각자에게 일어난 일과 목격한 일을 모른체 하며 지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윤택은 마사지가 마음에 들면 30여명이 모이는 대연습실에서 안마시술자를 극찬했고, 안마가 만족스럽지 않았거나 성기 마사지를 거부한 단원에게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입에 담기 힘든 정도의 폭언을 퍼부었다. 심지어 안마하던 한 여성 단원을 범해 임신을 시킨 일도 있었다. 이 여성은 나중에 혼자 낙태를 했고, 이 사실을 안 이윤택은 200만원을 주고 사건을 무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왕 노릇"


    김기덕 감독과 이윤택처럼 '그들만의 리그'에서 힘없는 여성을 성적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많다.

    여성 시인들이 보는 앞에서 태연히 본인 성기를 주물렀던 시인 고은(87)은 '문단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고, 성추행 의혹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겸 교수 조민기는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 사이에선 '왕'이었다.

    문화계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손꼽히다 수행비서의 '미투' 한 방으로 나가떨어진 안희정(55) 전 충남지사와, 성추행 사건으로 옷을 벗은 오거돈(72) 전 부산시장,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후 유명을 달리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 모두 자신들의 세계에선 '절대 갑'로 통하던 강자들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윤택에 대한 미투 폭로가 이어질 당시 "이윤택 연출이 저지른 것은 '명백한 권력형 성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여러 사람이 속한 공간에서 성폭력이 '관습'이 되고, 은폐되고, 조장될 수 있었던 것은 차별적인 사회문화, 권위적인 조직문화, 여성 혐오적인 남성문화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은 비단 이윤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론된 인사들 모두 위계에 의한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집단 내 우월적 지위를 십분 악용해 장기간 여성들을 희롱하고 그들의 인격을 짓밟았다. '쓰리썸' 성관계 제안을 거부한 여배우를 단칼에 해고했다는 김 감독의 일화는 그가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활용해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희단거리패 단원 "이곳은 완전히 공산주의 같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의 범죄 행위가 조직 내에서 매우 오랫동안 은폐되고 비호돼왔다는 점이다.

    권정은 씨는 '개인을 넘어서는 그 자리 : 연희단거리패의 의례로서의 연극과 자아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의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 논문에서 "연희단거리패는 개인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집단과 공동체를 매우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며 이윤택의 '상습 성폭력'과 '제왕적 지배'의 배경을 분석했다.

    논문을 위해 6개월간 해당 극단에 들어가 단원들을 관찰한 권씨는 "연희단거리패의 고참 단원들은 개인주의화된 현 시대를 비판하며 단원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훈계한다"며 이러한 '집단주의'가 단원들 간 강한 결속력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이윤택의 범죄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배경이 됐다고 지적했다.

    권씨는 연희단거리패가 단원들의 사생활이나 개인 휴식을 금기시한 점도 주목했다. 개인의 자유를 누리려는 언행은 연희단거리패라는 집단 전체의 조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로 간주됐다는 게 권씨의 주장이다.

    심지어 병원을 다녀와도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을 누리고 온 것으로 여겨졌다.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괴로워한 어느 단원은 "이곳이 완전히 공산주의 같다"며 "고참 단원들의 독재"라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상과 예술의 자유를 추구하는 문화인들이 조직 내에선 사생활과 자유에 대한 억압을 일상으로 여기고, 고참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해왔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회주의가 실천단계에 들어서면 전체주의로 변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1899~1992)는 '노예가 되는 길'이란 책에서 "사회주의는 실천단계로 들어가면 독재나 전체주의로 흐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즉 좌파가 전체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은 로렌스 펙 박사 등 수많은 사상이론가들이 언급한 바 있다.

    근래 '미투'로 관직에서 내려오거나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을 살펴보면 공교롭게도 좌파 인사로 분류된 이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고등학교 동창인 이윤택은 평소 문 대통령과 교류는 거의 없었으나, 2012년 대선 당시 방송에 나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좌파 성향으로 유명한 시인 고은도 당시 "문재인 후보는 '똥갈보' 같은 정치인과는 달리 '숫처녀' 그대로"라고 칭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민기는 생전 "광화문에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꺼지지 않는 촛불을 켠다"며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말을 SNS에 남겼다.

    김기덕 감독은 유명한 '문빠'였다. 2012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탄 뒤 "개인적으로 문재인 님이 고름이 가득 찬 이 시대를 가장 덜 아프게 치료하실 분이 아닐까 생각하며 '문재인의 국민'이 돼 대한민국에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자신의 별명이 '영화계 노무현'이라며 "고학력자가 아닌 점, 비난 받더라도 자기 생각과 신념을 지키는 모습 등이 닮았다"고 스스로를 노 전 대통령에게 비견하기도 했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결여됐던 80년대 운동권"


    이밖에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거나 성범죄자로 낙인찍힌 좌파 인사들이 부지기수.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좌파 진영에서 벌어진 성폭력과 성범죄들이 너무나 많다. 대체 '진보' 혹은 '좌파'라는 간판을 내건 세력들 사이에 이러한 기현상이 두드러진 이유는 뭘까?

    과거 대공분야에서 근무했던 전직 수사관 우헌근 박사는 2008년 2월 국제외교안보포럼에서 "의식화 된 운동권 세력은, 소위 의식화 교육(공산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교육)을 하면서 성에 대한 부끄러운 인식을 없애려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은 2018년 6일 자유한국당 전국여성대회에서 "미투 운동은 우리 당을 겨냥한 운동이었지만 전개과정을 보니 죄다 좌파 진영의 사람만 걸려 들어갔다"며 "1980년대 성(性)공유 의식을 진행한 운동권 인식의 연장선상으로 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지난 7월 24일 펜앤드마이크에 기고한 칼럼에서 "1980년대 주사파 운동권이 투쟁 동력을 얻는 방법으로 '성 동아리'로 여성을 끌어들인 흔적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며 "순진한 신입 여학생까지 집단적 관계로 동여매어 투쟁 동지를 만들던 과정이 한국 사회 성문화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치 지리산 빨치산 시절 여성 대원들이 남성 전사들의 성적 위안을 제공했던 것과도 유사하다"며 "혁명을 위해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봤던 것 같다"는 게 김 전 차관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