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군 인권센터 집단감염"→20분 뒤 '군 관련 사무실'로 변경… 5층 빌딩인데 "다수 이용시설 아냐" 궁색한 변명
  • ▲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한 '군인권센터' 명칭을 서울시가 '군 관련 사무실'로 변경하면서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모습이다. ⓒ뉴데일리
    ▲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한 '군인권센터' 명칭을 서울시가 '군 관련 사무실'로 변경하면서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모습이다. ⓒ뉴데일리
    서울시가 우한코로나(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군 인권센터'의 명칭을 숨겨 논란이 일었다. 

    방역당국은 확진자가 대거 나온 곳이 '군 인권센터'라고 정확하게 명시했지만, 서울시는 '군 인권센터'라고 밝힌 뒤 20여 분 뒤 별다른 설명 없이 '군 관련 사무실'로 변경했다. 서울시는 "감염자가 특정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의료계 등에서는 서울시의 해명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무더기 확진자가 나온 단체의 명칭을 숨기는 것은 감염 확산의 원인을 제공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소규모 교회나 식당 등도 명칭을 공개하는데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인 '군 인권센터'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서울시가 알아서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31일 집단감염 '군 인권센터' 발표… 20분 뒤 '군 관련 사무실'로 변경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브리핑을 통해 서울지역 확진자가 전날(30일) 하루 94명이 늘었다고 밝혔다. 시는 주요 환자 발생 장소를 소개하며 종교시설·요양시설·의료기관·직장·학교·장례식장 등의 명칭을 공개했다. 새로 확인된 집단감염 사례로는 서울 마포구 소재 ‘군 인권센터’를 비롯해 ‘동대문 SK탁구장’ ‘동작구 요양시설’ 등이 추가됐다.

    서울시는 그러나 20여 분 뒤 수정자료를 내고 별다른 설명 없이 ‘군 인권센터’를 ‘마포구 소재 군 관련 사무실’로 수정했다. 군 인권센터에서는 지난달 27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같은 달 30일 하루 만에 8명이 추가 확진판정받아 9명이 무더기로 감염됐다.

    군 인권센터는 2009년 12월 창립된 시민단체로, 대한민국 국방부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독립적 비정부기구다. 군 인권센터 사무실은 마포구의 한 빌딩 4층에 위치하며, 단체에 등록된 회원은 1300여 명에 달한다. 군 인권센터가 입주한 빌딩은 5층 규모로 미술입시학원·애완동물용품점 등이 입점해 추가 감염 환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우려에도 서울시는 '군 인권센터는 다수가 이용하는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명칭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방역당국이 31일 오전 11시 브리핑에서 '군 인권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고 발표한 이후 명칭을 바꾸지 않고 집단감염 사례에 '군 인권센터'라고 적은 것과 대조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게다가 국방부도 서울시에 '군 인권센터'로 명시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감염자 특정 우려… 다수이용시설 아니라 명칭 수정"

    서울시 관계자는 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초 수정이 필요하다고 할 때 군 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감염자가 특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오해를 산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특정 단체 명칭을 밝힐 때는 그 공간이 불특정다수가 많이 이용하는 시설인 경우에 해당한다"며 "어느 단체나 장소를 통해 추가 감염이 이뤄지거나 집단감염의 원인으로 밝혀지면 공개하기도 하고 문자 안내를 한다. 무조건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 ▲ 서울시는 '군 관련 사무실'(위)라고 표기한 반면, 질병관리본부는 '군 인권센터'(아래)라는 정확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 및 질본 홈페이지 캡쳐
    ▲ 서울시는 '군 관련 사무실'(위)라고 표기한 반면, 질병관리본부는 '군 인권센터'(아래)라는 정확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 및 질본 홈페이지 캡쳐
    이 관계자는 다만 "질본은 확진자가 발생한 장소의 명칭을 다 밝히지만, 서울시는 상황에 따라 명칭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개인을 특정하면 안 된다는 기준이 있어 회사명 등을 공개하면 안 되지만, 명칭을 밝히는 경우는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시설이어서 안내 문자를 보내면서 공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료계 등에서는 정확한 감염지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방역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며 서울시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식당 명칭도 공개했는데 시민단체 명칭 밝히는게 문제?"

    김우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까지 교회나 병원 등을 비롯해 식당 등의 명칭도 공개해오지 않았느냐"며 "군 인권센터는 시민단체인데 밝히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확진 환자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더라도 환자가 발생한 장소나 시간 등은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해당 건물을 방문한 시민이 신속하게 검사받을 기회를 놓치게 되고 결국 방역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 역시 "수도권 곳곳에서 산발적 집단감염이 끊이지 않고 깜깜이에 무증상 환자까지 늘어나는 상황에서 (서울시의 행태가) 다소 이해하기 힘든 건 사실"이라며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 자신이 확진자와 접촉했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이렇게 정보를 숨기는 것이 감염 확산을 막는 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군 인권센터 눈치 보다 방역 구멍 우려"

    서울시가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인 군 인권센터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실제로 군 인권센터는 무죄로 판결난 박찬주 전 육군대장의 갑질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광화문 촛불시위 당시 게엄령 논의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친정부 활동을 해왔다. 

    군 인권센터를 이끌며 각종 의혹을 제기한 임태훈 소장은 2019년 1월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는 등 문재인 정권의 홍위병이라는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군 인권센터는 단순한 시민단체일 뿐 군과 전혀 관계가 없는데 정보를 숨겨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이전 정부에서 군을 무력화하는 데 가장 앞장선 곳이 군 인권센터인데 문재인 정부들어 이들과 사이가 좋아지면서 눈치를 보다보니 서울시에서도 보호 차원에서 감싸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이어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정보를 숨기면서 감염 확산을 막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힐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