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강제이주 北 전쟁고아들 추적한 '김일성의 아이들'… 로마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쾌거'
  • ▲ 김덕영 감독. ⓒ뉴데일리
    ▲ 김덕영 감독. ⓒ뉴데일리
    6.25전쟁 이후 북한에서 은밀하게 진행한 '전쟁고아 위탁교육 프로젝트'를 폭로한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Kim il Sung’s Children)'이 '로마국제무비어워즈(Rome International Movie Awards)'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 작품상(Best Documentary Feature)을 수상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매달 온라인으로 수상작을 선정하는 '로마국제무비어워즈'는 지난 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영국 영화 '포이닉스 - 디아스포라의 이야기(Phoenix - A Story from the Diaspora)'와 함께 김덕영(56) 감독이 연출한 '김일성의 아이들'을 7월의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완성시키자'는 아내 격려에 큰 힘 얻어"


    김 감독은 지난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저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되는 '로마국제무비어워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고 영예인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 장편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 함께 땀과 눈물로 같이 해줬던 아내이자 제작자였던 임수영 프로듀서에게 제일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한다"며 "저희 영화를 응원해주셨던 서포터스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 감독은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제작 초기 제작비를 충당하기 힘들어 작품을 포기하려 할 때 아내가 '이건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되는 다큐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완성시키자'고 격려해 힘을 냈다"는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 프로듀서와 촬영 감독으로 활약한 임수영 씨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현재 출판사 다큐스토리 대표를 맡고 있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1950년대 위탁교육 명목으로 동유럽에 보내진 5000여명의 북한 전쟁고아들의 드라마틱한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번 '로마국제무비어워즈를 포함해 '뉴욕국제영화제(International New York Film Festival)', '니스국제영화제(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등 12개 국제 영화제 본선에 진출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 전쟁고아들이 동유럽에서 집단 위탁교육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사연은 2년 전 추상미 감독이 '폴란드로 간 아이들(The Children Gone to Poland)'이라는 영화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동유럽 5개국(루마니아·폴란드·체코·헝가리·불가리아)에 보내진 아이들이 김일성의 '우상화 도구'로 키워졌다는 사실을 생존자들의 증언 등으로 폭로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체제 우월성' 선전 위해 동유럽에 위탁교육시설 세워"


    사료에 따르면 6.25전쟁으로 인해 남·북한에서 약 10만명에 달하는 전쟁고아가 생겨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남한에선 '해외 입양'이라는 방식으로 고아들의 양육을 타국에 위탁했는데, 북한은 공식적으로 5000명 이상의 고아들을 동유럽 5개국에 분산 수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김 감독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미국과 냉전 중이었던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은 체제와 휴머니즘, 이데올로기 등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위성국가인 동유럽 여러 나라에 전쟁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이에 북한에도 6.25전쟁으로 생겨난 고아들을 동유럽 국가에 맡길 것을 요구해 5000명에서 최대 1만명에 달하는 북한 전쟁고아들이 10년 가까이 현지에서 위탁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때 북한은 기술과 문화 측면에서 앞선 동구권에서 아이들을 교육시켜 나중에 활용할 계획으로 이러한 집단 이주 계획에 동의했다는 게 김 감독의 주장이다.

    그런데 1956년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민주화 봉기가 일어나고 이 같은 봉기에 북한 전쟁고아들이 가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이들 대부분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동유럽의 선진 문화를 체득한 전쟁고아들을 체제 강화 및 선전 도구로 사용할 계획이었던 김일성은 오히려 이들이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송환을 강행했고, 사상 검열을 이유로 이들 중 다수를 탄광이나 공장, 교화소(교도소) 등에 보내는 인권 유린을 자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가리아 할아버지, 지금도 '김일성 장군의 노래' 흥얼"


    김 감독은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을 직접 가르쳤던 현지 교사와 친구들을 인터뷰해 이들이 철저히 김일성 우상화와 체제 선전 도구로 양육됐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김 감독이 루마니아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낸 4분 30초짜리 필름에는 전쟁고아들이 매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김일성의 얼굴이 새겨진 인공기에 경례를 하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동창생들이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당시 전쟁고아들에 대한 북한의 사상 교육과 규율이 엄격했다는 게 김 감독의 주장이다.

    김덕영 다큐 전문 감독이 동유럽 현지 취재를 통해 북한 전쟁고아들의 비극적인 삶과 북한 정권의 폐쇄적인 속성을 파헤친 '김일성의 아이들'은 이달 말까지 명보아트홀에서 매일 오후 6시 30분에 상영된다.

    취재 = 조광형 기자
    영상 = 장세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