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망명 신청한 왕리창, 현지 언론 인터뷰… "친중파 총통 후보에 33억 기부" 폭로도
  • ▲ 호주 더 에이지가 공개한 중국 간첩 왕리촹의 위조 한국여권. ⓒ더 에이지 그래픽 화면캡쳐.
    ▲ 호주 더 에이지가 공개한 중국 간첩 왕리촹의 위조 한국여권. ⓒ더 에이지 그래픽 화면캡쳐.
    중국 정부가 대만, 홍콩에 간첩을 보내 정치공작을 펼쳤으며, 특히 대만에서는 불법 선거개입을 시도하면서 위조한 한국여권을 사용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호주 양대 언론사 더 에이지와 시드니 모닝 헤럴드(SMH)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호주에 망명을 요청한 중국 간첩 ‘왕리촹(한국명 왕강)’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왕리촹(이하 왕)은 중국 정부가 홍콩과 대만, 호주에 간첩을 침투시켜 다양하고 광범위한 정치공작을 펼치고 있으며, 이에 관한 기밀을 호주에 제공하는 대가로 망명을 원하고 있다고 더 에이지는 설명했다.

    중국, 홍콩과 대만서 각종 정치공작

    왕 씨는 자신이 속했던 중국 인민해방군 첩보기관(이하 중국군 첩보기관)이 어떻게 홍콩 내 반중 독립파 지도자들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는지 폭로했다. 그는 “(중국에 포섭된) 일부 학생들이 반중 독립파 학생들을 감시하고 개인정보를 얻기 위해 이들의 지지자인 척 행동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장 반중 독립파’ 학생들은 보통 장학금, 여행 보조금, 교육재단 후원 등을 내세워 포섭한다. 이렇게 홍콩 학생들을 본토로 유인해 친중파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며 “홍콩에서 지난 2주 사이 벌어진 치열한 충돌의 중심에 있는 대학에는 모두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간첩들이 침투해 있다”면서 “학생회와 다른 학생들의 모임도 침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왕 씨는 중국의 대만 선거개입 공작도 폭로했다. 중국은 지난해 8월 실시된 대만 지방선거에 불법 개입했고, 오는 2020년 1월 치를 예정인 대만 총통 선거에도 친중파 후보를 집권하게 만들려고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왕 씨는 “상부에서는 제게 위조한 한국여권을 주면서 대만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군대를 관리하고, 대만 친중파들의 정계 진출, 총통 선거에서 친중파 후보를 도우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폭로했다. 그는 이런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중국 당국이 국민당의 유력 총통후보이자 친중파인 한궈위 가오슝 시장에게 2000만 위안(한화 33억4000만 원)을 기부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대만 언론도 포섭했다고 왕 씨는 주장했다. 그는 “중국은 차이잉원 총통을 비롯해 반중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영향 공작을 펼치기 위해 대만 언론과 연결고리를 만들거나 직접 언론사를 설립하기도 했다”면서 중국 정부가 대만 언론계에 뿌린 돈이 15억 위안(한화 2508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중국, 대만 선거개입하려 언론사 투자 또는 설립
  • ▲ 지난 18일 광주 전남대에 붙은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대자보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쓴 낙서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8일 광주 전남대에 붙은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대자보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쓴 낙서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에 따르면, 대만과 홍콩을 대상으로 한 각종 정치공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곳이 ‘중국 혁신투자사(China Innovation Investment Limited, 이하CIIL)’라는 회사다. 이 회사는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한국군의 합참에 해당)가 1993년 홍콩에 설립했다고 한다. 왕 씨는 자신도 이 회사 직원으로 위장근무를 했다며 “CIIL의 기본 임무는 홍콩 자본 시장 침투를 통해 군사첩보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IIL은 중국의 핵심 방산업체인 노린코(북방항공공업)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곳을 전진기지로 활용하며 홍콩, 대만, 호주에 대한 공작을 펼쳤다는 것이 왕 씨의 주장이었다. CIIL이 직접 나서기 어려운 경우에는 중국의 대형식품업체 왕왕그룹을 앞세워 투자했다고 왕 씨는 설명했다.

    그는 또한 2015년 일어났던 반중 서점 관계자 납치 사건을 언급하면서 “중국은 자기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며 “그래서 저는 홍콩에 있을 때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주장했다.

    왕 씨는 “저를 감독하던 상급요원은 현재 홍콩 반중 운동 활동가들을 납치하고 학대하는 감독관 가운데 하나”라며 “현재 그는 군에서 사단장급 지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군 첩보기관은 삼합회 같은 마피아도 끌어들여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중국으로 돌아갈 경우 죽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中당국 “왕 씨는 사기꾼” 한궈유 “돈 받았다면 사퇴”

    호주 주요 언론들이 왕 씨의 주장을 보도한 뒤 BBC, 텔레그라프, 가디언 등 영국계 언론은 물론 미국 뉴욕타임스, 독일 도이체벨레, 카타르 알 자지라 등도 관련 뉴스를 전했다.

    세계 언론들이 중국의 타국 정치공작을 보도하자 중국 당국은 “왕 씨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 공안국은 “왕 씨는 푸젠성 출신의 26세 무직 남성으로, 2016년 투자 사기극을 벌여 460만 위안(한화 7억7000만 원)을 가로채 집행 유예를 선고받은 적이 있으며, 지금도 사기 혐의로 수배 중”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의 자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한궈위 대만 가오슝 시장도 “내가 돈을 받았다면 내년 총통 선거에서 사퇴할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