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법 "KBS, 진미위 권고로 내린 징계…절차상 위법" "본안 판결까지 징계 중단"
  • 法, KBS 적폐청산기구 '위법성' 재확인

    KBS가 사내 적폐청산기구인 진실과미래위원회(이하 진미위)의 권고를 받아 KBS 직원들에게 내린 징계가 '절차상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29일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부장판사 반정우)는 "정지환 전 보도국장 등 17명이 KBS를 상대로 낸 징계절차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진미위는 KBS 인사 규정상 징계요구 권한이 있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KBS 직원들에 대해 징계를 요구한 것은 절차상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진미위 설치 및 운영규정에 관한 무효 확인 소송 또는 신청인들에 대한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의 1심 선고가 나올 때까지 KBS 직원들에 대한 징계(해임·정직·감봉·주의촉구 등)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KBS는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 절차를 조속히 진행할 것"이라고 30일 밝혔다.

    대형로펌도 진미위 '위법성' 지적


    진미위에 '징계요구 권한'이 없다는 지적은 지난해 6월 진미위가 출범할 때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당시 KBS로부터 법률 자문을 의뢰받은 '김앤장'은 "진미위의 조사권과 징계권고권이 자체 감사기구의 권한과 중복되고,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와 방송법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KBS는 '적폐청산'을 구실로 정필모 KBS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미위를 발족시킨 뒤, 전 정권·경영진 시절 ▲외부 권력의 방송 개입 ▲여론전환용 관제성 특집 프로그램 편성 ▲방송의 사유화 ▲부당노동행위와 부당 징계 등이 있었는지를 조사했다.

    이와 관련, KBS공영노동조합(이하 공영노조·위원장 성창경)이 낸 진미위활동중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한 서울남부지법이 지난해 9월 "진미위가 사내 구성원들을 상대로 징계 등의 인사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절차상 하자를 안고 있다"고 판시하면서 진미위 활동에 제동이 걸리는 듯 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5월 열린 진미위활동중지 가처분 항고심에서 진미위 규정 중 징계 등 인사조치 권고조항(제10조 제1항 제3호)에 대한 효력정지 결정을 취소하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림에 따라, 진미위는 예정대로 22건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완료하고 일부 직원에 대한 징계를 권고했다.

    KBS, 진미위 권고대로 17명 '무더기 징계'


    KBS는 지난 7월 1일 인사위원회(17명 회부)를 열어, '기자협회 정상화모임' 결성을 주도한 정지환 전 보도국장을 해임하고 3명은 정직(1~6개월), 1명은 감봉 처분했다. 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홍보나 취재를 지시해 편성규약·보도위원회 운영세칙·취업규칙을 위반한 직원들과, '아침마당' 등 일부 프로그램에 특정 출연자를 출연시키거나 하차시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을 위반한 나머지 12명에게는 징계가 아닌 주의 조치를 내렸다.

    또 지난 8월 6일에도 인사위를 열어 2년 전 '프로그램 공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한완상 전 부총리의 라디오 출연 계획(2017년 7월)을 취소했던 담당국장 등 제작진에게 정직, 감봉, 경고 등의 징계를 내렸다. 이 역시 '진미위'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려진 처분이었다.

    이후 징계를 받은 직원 대다수는 서울남부지법에 징계무효확인 소송과 함께 징계절차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한완상 출연 취소'로 보직 해임… 2년 후 추가 징계

    2년 전 방송의 공정·균형성을 지키기 위해 한완상 전 부총리의 라디오 출연 취소를 지시했다 '평사원'으로 강등된 KBS 전 라디오 국장 A씨는 30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그 일(출연 취소 문제)로 이미 보직에서 밀려난 상태였는데 올해 사측이 동일한 사안으로 인사위에 회부해 정직 6개월의 추가 징계를 내렸다"고 토로했다.

    A씨는 "사측은 징계 사유로 2년 전 사건을 포함해 5가지를 거론했는데 그 중에는 징계시효 2년을 넘긴 사안도 포함됐다"면서 "사측은 '지난해 6~7월 진미위 조사 착수 시점에 징계시효가 멈췄다'는 주장을 펼지 모르나, 이는 진미위를 또 다른 '합의제 감사기구'로 볼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A씨는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KBS 이사직에서 강제해임된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거론하며 "2017년 당시 강규형 전 KBS 이사가 반대 세력에서 요구하는 자진사퇴를 거부하면서 몇 달 간 버텨주신 덕분에 진미위 출범이 늦어졌고, 우리로선 법적 대응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강규형 "KBS, 내가 오래 버티면서 '골든타임' 놓쳐"

    강규형 교수는 "MBC는 2017년 10월경 전국언론노동조합에 의해 장악된 이후 전광석화처럼 직원들을 징계했는데, KBS는 제가 끝까지 버티면서 '골든타임'을 놓쳤고, 그 사이 공영노조가 중심이 돼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전세가 역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KBS 이사회가 야권 이사들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당시 외부강의 등으로 중징계 심의 중인 정필모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앉히는 등 법에도 없는 괴상한 위원회를 만들어 이 난리를 폈지만, 결과적으로 가처분 신청에서 진미위의 위법성이 확인됐기 때문에 본안 소송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이어 "이미 초토화된 MBC와는 달리 KBS에선 해직자는 물론이고 사임자도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상태로 가게 될 것"이라며 "1차적으로 사측이 골든타임을 놓쳤고, 그동안 전열을 정비한 공영노조와 김기수 변호사 등이 시의적절하게 법적 대응에 나서 얻어낸 결과"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