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 사용 급증에 "창조" vs "파괴" 한글 논란… "어법·맞춤법 맞게 써야"
  • ▲ 8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경기도어린이 박물관을 찾은 한 가족이 알록달록한 유리 모자이크 타일로 이루어진 한글벽화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 8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경기도어린이 박물관을 찾은 한 가족이 알록달록한 유리 모자이크 타일로 이루어진 한글벽화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올해로 훈민정음 반포 573돌을 맞은 가운데,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말 사용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늘어나는 신조어와 외래어 사용을 두고 ‘창조냐, 파괴냐’ 하는 논쟁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이다.

    “어제 인터넷에 올라온 댕댕이 사진 봤어? 렬루 커여워. 오지고 지려서 롬곡옾눞 흘릴 뻔했잖아. 빼박캔트 ㅂㅂㅂㄱ임.”

    대략 해석을 하자면 이렇다. “어제 인터넷에 올라온 강아지 사진 봤어? 정말 귀여워. 너무 좋아서 폭풍눈물 흘릴 뻔했잖아. 반박할 수 없을 정도야.”

    각종 신조어와 언어유희가 난무하는 이 어려운 말은 10대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언어습관이 됐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과연 이를 보고 ‘롬곡옾눞’ 흘리실까. 

    한글학회 소속의 한 전문가는 “한글과 우리말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말이 변화한다고 해서 언어파괴가 일어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말로 새로운 말을 만드는 건 큰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외래어를 포함한 국적 없는 말이 우리말 속에 침투해서 자리를 잡는 게 우리의 언어를 더 병들게 한다”고 말했다.

    신조어 사용… 언어 파괴 VS 문화 창조?

    ‘한글’과 ‘언어’는 엄연한 차이가 있지만, 한글이 우리말을 담는 그릇인 만큼 변화하는 언어 현상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언어는 늘 변하는 것으로, 사회문화 현상을 반영한 하나의 창조적 놀이라고 보는 반면, 과도하게 사용되는 신조어가 언어파괴를 일으켜 세대 간 소통의 단절을 심화시킨다는 입장이 극명하게 나뉜다. 

    수도권 4년제 커뮤니케이션학과 A 교수는 “새로운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말이 창조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신조어는 그 시대의 사회문화현상을 그대로 함의하고 있어 문화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조어 사용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며 “그러나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남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정권 4년제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B 교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새로운 언어들은 그들 세대 간의 소통을 더 자연스럽게 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변화하는 언어 속에는 사회문화 현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새로운 언어가 파생된 배경을 보면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의 다양성은 인정하나, 기성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단어가 나올 때마다 부담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그들에게 신조어는 세대 간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며 외계어처럼 낯설기만 하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직장인 C씨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할 때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짐의 줄임말)’가 되기 일쑤”라며 “회사에서도 젊은 직원들에게 틀딱충(노인 폄훼 신조어), 꼰대(늙은이의 은어) 같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신조어 등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어교사인 30대 이모 씨는 “10~20대 어린 친구들이 자기들만의 언어 세계에 몰입하면서 기성세대와의 높은 언어 장벽을 만든다”며 “이에 따라 소통이 힘들어져 세대 간의 단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어 축약과 신조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거부감을 느낀다”며 “언어는 소통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급격한 변화가 이뤄진 경우에는 소통의 도구를 상실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어 “말과 글은 결국 연결돼 있고, 고정된 언어는 없다”며 “말의 변화가 글의 변화를 가져오는 건 일정부분 이해하지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언어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말·글 변화, 자연스런 현상… 과도한 사용, 언어환경 해칠 수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조어와 같은 새로운 언어 환경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말과 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강제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조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언어 환경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남대 국어연구원 관계자는 “기존의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나, 신조어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 다가갈 필요는 없다”며 “신조어는 유행처럼 빨리 생기는 것만큼 세대가 바뀌는 과정에서 금방 사라진다. 많은 언어가 나고, 자라고, 발전하고, 소멸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신조어 사용이 세대 간 소통의 단절이라는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는 건 과한 해석”이라며 “기성세대가 신조어를 학생들끼리 사용하기 위한 그들만의 언어로 여기며 도의적·사회적으로 선을 넘지 않게끔 지도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인환 한글문화연대 사무국장은 “오래 전부터 글자를 변형해서 쓰는 놀이문화가 있었으나 말놀이 문화가 언어 공동체 환경을 해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글은 우리말을 담는 그릇인데, 이 그릇을 잘 지키려면 먼저 우리말을 잘 담아야 한다”며 “어법과 맞춤법에 맞게 쉽고 바른말을 쓰는 게 우리 말을 잘 지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무국장은 “특히 개인의 사적 언어보다는 정부 보도자료나 신문방송과 같은 공공언어 분야에서 이 부분이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