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억압해 견제수단 상실" 야권 추천 KBS 이사들 "운영규정 날치기 개정" 비판
  • ▲ KBS 소수이사들(서재석·천영식·황우섭)이 5일 오전 9시 20분 서울 KBS 본관 2층 시청자광장에서
    ▲ KBS 소수이사들(서재석·천영식·황우섭)이 5일 오전 9시 20분 서울 KBS 본관 2층 시청자광장에서 "지난 7월 31일 통과된 'KBS이사회운영규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상윤 기자
    지난달 31일 KBS이사회에서 통과된 'KBS이사회 운영규정' 개정안에 소수이사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방송법과 정관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 '독소적 월권 조항'이 담겨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야권 추천을 받아 임명된 KBS소수이사들(서재석·천영식·황우섭)은 5일 오전 서울 KBS 본관 2층 시청자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31일 열린 KBS이사회에서 다수이사들은 소수이사들의 반대 속에 일방적으로 이사회 운영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며 "개정된 운영규정은 소수이사들에 대한 압박조항들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했다.

    소수이사들은 이사가 의장의 의사 진행을 방해할 경우 퇴장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 '의장의 퇴장명령권'이 새롭게 이사회 운영규정에 포함된 것을 지적하며 "의장이 편파적인 진행을 할 경우 이를 이사들이 적극 견제해야 하는데, 운영규정 개정으로 그러한 견제수단이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소수이사들은 "방송법에서 동등한 이사 지위를 부여받은 이사들끼리 누가 누구에게 퇴장을 명령한다는 말이냐"며 "문제가 있으면 정회를 하고 이견을 조정한 다음 원만한 의사 진행을 하는 게 정상이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회의 도중 상대방을 쫓아내는 것은 독재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 ▲ KBS 소수이사들(서재석·천영식·황우섭)이 5일 오전 9시 20분 서울 KBS 본관 2층 시청자광장에서
    ▲ KBS 소수이사들(서재석·천영식·황우섭)이 5일 오전 9시 20분 서울 KBS 본관 2층 시청자광장에서 "지난 7월 31일 통과된 'KBS이사회운영규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좌측이 황우섭 이사. ⓒ정상윤 기자
    소수이사들 "의장의 '편파적 진행' 견제할 수단 사라져"

    또한 소수이사들은 "운영규정에 '보조동의안 제출' 조항이 신설된 것 역시 KBS이사회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또 다른 발상으로 보여진다"며 "소수이사들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토론 종결을 요구하는 '보조동의안'을 제출해 토론을 끝내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소수이사들은 "해당 조항은 1인 이상의 재청으로 바로 토론 종결이나 심의 연기를 할 수 있는 악성 조항"이라며 "앞으로 '시사기획 창'에 대한 청와대 외압 의혹이나 '오늘밤 김제동'의 공정성 논란 같은 논의는 KBS이사회에서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우섭 이사는 "KBS는 방송법에 의해 만들어진 기관이고, 대통령이 임명한 KBS이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방송기관"이라며 "이러한 이사들을 옥죄는 운영규정을 만든 것에 대해 1차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할 것이고, 필요할 경우 법적인 조치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이사는 "이사의 의무 조항을 신설해 비공개 회의 내용을 평생토록 발설하지 말라고 규정한 조항도 악성"이라며 "그동안의 회의를 보면, 알리지 말아야 할 비공개 회의는 사실상 없었는데도 이 같은 조항을 신설한  이유는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소수이사의 입을 막기 위한 독재적 조치"라고 해석했다.
  • ▲ 이날 기자회견에서 KBS소수이사들을 돕는 공익·공동변호인단을 출범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이헌(좌) 변호사와 김기수 변호사. ⓒ정상윤 기자
    ▲ 이날 기자회견에서 KBS소수이사들을 돕는 공익·공동변호인단을 출범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이헌(좌) 변호사와 김기수 변호사. ⓒ정상윤 기자
    김기수 변호사 "KBS에 '공산당식 민주집중제' 도입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KBS소수이사들을 돕는 공익·공동 변호인단을 출범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이헌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공동대표)는 "소위 민주화 운동세력을 자처하는 정부가 집권한 이후 KBS의 편파성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며 "시청자를 대변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각 분야 대표성을 고려, 대통령이 임명한 KBS이사들을 옥죄는 것은 결국 국민을 옥죄는 것이고 공영방송을 집권세력의 수하로 두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기수 변호사는 "개정된 KBS이사회 운영규정을 보면 의사진행 방해 여부를 이사장이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의사진행 발언 자체도 다수결로 봉쇄할 수 있게끔 돼 있어, 이사들이 합리적 토론을 거쳐 KBS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KBS이사회의 본질과, 의결 권한과 집행 권한을 엄격히 분리한 방송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가장 민주적이어야 하는 방송사에, 상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공산당식 민주집중제'가 도입됐다"며 "이는 중국 공산당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로, 소수의견을 다수결로 봉쇄하는 '얼치기 공산주의'이자 '얼치기 민주집중제'"라고 꼬집었다.

    기자회견 직후 소수이사들은 "개정된 이사회 운영규정 아래에선 KBS이사가 방송법과 KBS 정관에 따라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운영규정 조항의 방송법 위반 여부를 유권해석해 달라는 민원신청서를 냈다.

    앞서 KBS이사회는 지난 7월 31일 여당 추천 이사들의 찬성(7명)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한 이사를 의장이 퇴장시킬 수 있고 ▲각 이사가 1인 이상 이사의 재청으로 상정된 안건에 대해 '심의 연기' '토론 종결'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이사회 운영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