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H-6K, 러시아 Tu-95 핵폭격기 동원… 조기경보기 띄워 사상 첫 아태 장거리 훈련
  • ▲ 훈련을 마치고 착륙 중인 중공군 전략 핵폭격기 H-6K. 2018년 촬영한 사진이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훈련을 마치고 착륙 중인 중공군 전략 핵폭격기 H-6K. 2018년 촬영한 사진이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러시아와 중국의 폭격기 4대가 지난 23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수 시간 동안 휘젓고 다녔다. 같은 기간 러시아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우리 F-16 전투기의 경고사격을 받고 물러났다. 

    정부는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에는 적극 대응했다. 반면 핵전쟁 때 동원되는 러시아와 중국의 폭격기가 KADIZ를 함께 침범한 '초유의 사실'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6·25 이후 처음... 러·중 폭격기 연합훈련

    러시아와 중국이 각각 KADIZ를 침범한 경우는 전에도 있었지만 두 나라 폭격기가 함께 KADIZ를 남에서 북으로, 다시 남으로 가로지른 것은 처음이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중국이 6·25 전쟁 이후 처음 실시한 연합 비행훈련이라는 점에서 섬뜩하다.

    러시아 타스통신과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사건 당일  “러시아 폭격기들은 비행계획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국제 규정을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쇼이구 장관은 이어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도 독도에서 25km 벗어난 공역을 비행 중이었다”며 “오히려 한국 공군의 F-16 전투기 2대가 러시아 폭격기의 이동 경로를 가로지르는 비전문적인 행동을 취해 안전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얼마 뒤, 국방부로 초치된 러시아대사관 차석무관(공군 대령)은 “중국과 연합훈련 중이었다”며 “기기 오작동으로 당초 계획했던 경로를 벗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어떤 의도를 갖고 KADIZ를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해명은 달라졌지만 “중국과 훈련”이라는 말은 그대로였다. 러시아는 “이번 훈련은 러시아와 중국이 아·태 지역에서 처음 실시한 장거리 초계훈련”이었다고 거듭 확인했다. 말만 초계비행이지 핵공격이 가능한 전략폭격기로 한국과 일본 사이를 비행한 것이다.
  • ▲ 영국 주변 방공식별구역에 접근한 러시아 Tu-95 전략 핵폭격기를 영국 공군 타이푼 전투기가 요격 중이다. ⓒ영국 국방부 공개사진.
    ▲ 영국 주변 방공식별구역에 접근한 러시아 Tu-95 전략 핵폭격기를 영국 공군 타이푼 전투기가 요격 중이다. ⓒ영국 국방부 공개사진.
    중국 유일의 전략폭격기 H-6, 러시아의 ‘도발의 상징’ Tu-95

    중국의 H-6 전략폭격기는 미군의 B-52H처럼 동체에 9t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고, 날개에는 순항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다. 항속거리는 6000km, 작전행동반경은 1800km로 미국이나 러시아 폭격기에 비해서는 성능이 조금 처진다.

    중국군은 H-6 전략폭격기를 1959년부터 사용했다. 1968년부터는 자체생산했다. 1990년대까지 180여 대가 제작됐으며, 120대가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중국군은 향후 수십 년 동안 H-6 폭격기를 사용할 계획이다.

    이 폭격기는 다양한 파생모델이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모델은 K형이다. 2007년 1월 처음 등장한 H-6K형은 2015년부터 실전배치됐다. H-6K 전략폭격기는 기본적으로 핵공격 능력을 갖췄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은 2018년 11월 “H-6K 폭격기는 새로 개발한 공대함탄도미사일 2발을 장착할 수 있는데, 그 중 한 발은 핵탄두”라고 밝혔다.

    러시아 Tu-95 또한 동체에 폭탄을 탑재하고, 날개에는 8발의 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장착한다. 1961년 인류 역사상 최대 폭발력을 보여줬던 수소폭탄 ‘차르 봄바’ 시험에도 쓰였다.Tu-95는 냉전 때부터 미국 알래스카, 서유럽과 북유럽, 일본 홋카이도, 동해 일대를 휘저으며 긴장감을 조성했던 ‘도발의 상징’이다. 러시아는 지금도 영국과 일본 등을 위협할 때 Tu-95 전략폭격기를 보낸다.

    러시아가 현재 사용 중인 Tu-95는 MS 모델이다. 길이 46.2m, 폭 50.1m, 높이 12.1m, 이륙총중량 188t에 이르는 대형 폭격기임에도 이중반전 프로펠러를 단 강력한 터보프롭 엔진 4기 덕분에 최고 속도는 925km/h, 항속거리는 1만5000km에 달한다.
  • ▲ 지난 23일 중국과 러시아 전략 핵폭격기의 방공식별구역 침범 시간 및 경로. 한국 정부는 두 나라의 방공식별구역 침범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3일 중국과 러시아 전략 핵폭격기의 방공식별구역 침범 시간 및 경로. 한국 정부는 두 나라의 방공식별구역 침범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 “KADIZ는 영공 아니므로 침범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 폭격기의 연합훈련이 사실상 핵전쟁 연습이라는 유추가 가능하지만, 우리 정부나 국방부는 이 점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러시아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이에 대한 요격 조치, 러시아에 항의했다는 대목만 부각했다. 24일에는 독도 영공에서 요격 조치를 한 것을 두고 일본이 항의했다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일본은 지난 23일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과 함께 한국 공군이 멋대로 영공을 침범했다는 주장을 폈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일본 영토에 대한 침범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면서도 “한일정보보호협정을 파기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게 전부다.

    중국은 KADIZ를 침범하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3일 국방부로 초치된 주한 중국대사관 무관 두농위는 한국 언론의 질문에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므로 자유롭게 비행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와 관영매체들도 같은 논리를 폈다.

    러시아는 24일 태도를 바꿔 “기기 오작동으로 인한 경로 이탈 같다”며 “사건을 조사하려 하니, 한국군이 확보한 사진과 영상, 위치정보 등을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지켜보고만 있다. 김영규 주한미군 공보관은 “러시아와 중국이 KADIZ와 독도 영공을 침범한 일에 대해 미군은 할 말이 없다”며 “<성조>지 등에 실린 기사가 미군의 입장”이라고 답했다. <성조>지에는 “러시아 공중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했고, 한국이 차단기동과 경고사격을 하며 요격했다”는 스트레이트 기사만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