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독재 에르도안 '반미' 내세워 지지세력 결집 의도… 미국과 갈등 더욱 커질 듯
  • ▲ 지난 2017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 참가한 S-400ⓒ뉴시스.
    ▲ 지난 2017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 참가한 S-400ⓒ뉴시스.
    터키가 러시아산 방공 미사일체계 S-400를 예정대로 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첫 인도분을 받은 레지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15일 연설을 통해 2020년 4월까지 이 무기체계 배치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터키의 S-400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터키가 나토 회원국인 만큼, 나토의 무기체계 관련 기밀이 러시아로 넘어갈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러시아와 군사거래하는 개인이나 국가를 제재하도록 하는 '미국 적대세력에 대한 통합제재법(CAATSA)'을 적용해 터키에 제재를 가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터키에 대한 F-35 스텔스 전투기 판매 중단 방침까지 발표했다.

    터키가 이 같은 미국의 위협에도 러시아의 S-400 도입을 강행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우선, S-400은 단·중거리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게 고안한 러시아의 지대공미사일 시스템으로, 미국의 사드 등과 비교했을 때 가격 면에서 강점이 있다.

    S-400은 5억 달러(약 5800억원) 수준으로 30억 달러(약 3조5000억원)인 사드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미국의 저고도 요격무기인 패트리엇 팩(Pac-2)의 가격도 S-400의 2배 수준인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는 가격 면에서의 강점 외에 터키에 기술 이전과 공동 생산 가능성까지 제공했다. 이미 지난 5월 에르도안 대통령은 S-400의 상위 버전인 S-500을 러시아와 공동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전문 자유기고가인 최현호 씨는 "터키는 미국과 갈등을 좀 키우더라도 필요한 것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에르도안 정부가 이런 의지를 보이는 것이 가능한 데는 유럽 내에서 미국보다 터키에 대한 반발이 생각보다 적은 것도 한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 ▲ 연설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뉴시스.
    ▲ 연설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뉴시스.
    한국지정학연구원의 신희섭 선임연구위원은 터키의 이런 행보를 미 패권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 규정하며 국제정치전략 측면과 터키 국내정치 상황에 주목해 분석한다.

    터키, "미국과 러시아 모두를 활용하는 것"

    신 선임연구원은 17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터키는 미국과 러시아 양 측 모두에게 지정학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미국으로서는 군사기지까지 두고 러시아를 견제하는 지점이란 점에서 터키가 상당히 중요하다. 반면 러시아로서는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플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데 다다넬스-보스포러스 해협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터키와 우호관계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신 연구원은 터키가 이러한 점들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 전략으로 잘 활용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비록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조금 겪을 수는 있겠지만 터키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는 미국의 사정을 이용하고,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우호관계를 이용해 러시아의 지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터키의 국내정치 상황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신 연구원의 지적이다. 그는 "터키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장기독재가 이어지면서 국민들 사이에 불만이 싹트고 있다"며 터키의 현 경제 체질과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정치상황으로 유럽연합(EU) 가입도 힘들기 때문에 경제 면에선 딱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지난 23일 이스탄불시장선거에서 야당에 패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치적 타격까지 입은 상태다. 이에 부분적 반미를 통해 국내지지세력을 결집하면서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친이스라엘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미국에 대해 '노(No)'라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의 효과 또한 감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 연구원은 터키의 S-400 도입으로 인한 미국과 갈등이 더 큰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터키를 적당히 제재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대신 동맹 파트너 관리에 더욱 힘써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더욱 밀착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북핵 문제에 한일 간 최악의 갈등 관계를 겪는 한국이 터키 이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