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전 차장 "재판부가 유죄 예단"… 법조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의 공정성 가늠할 시금석"
  • ▲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종헌(60·사법연수원16기·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다.ⓒ정상윤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종헌(60·사법연수원16기·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다.ⓒ정상윤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연루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종헌(60·사법연수원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다. 재판부가 사건에 대한 예단을 가지고 소송 지휘권을 남용해 불공정 재판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은 정치적 부분이 개입돼 있는 만큼 법원의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릴 예정이었던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에 대한 속행공판이 무산됐다. 임 전 차장의 재판부 기피신청 때문이다.

    앞서 임 전 차장은 지난달 31일 “재판부가 소송 지휘권을 부당하게 남용했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헌 “재판부 예단...불공정 재판 우려”

    형사소송법에 제18조는 "검사 또는 피고인은 법관에게 제척 사유가 있는 경우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재판부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기피신청 목적이 재판 지연이라면 이를 기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진행 중이던 재판이 중지되고 기피신청에 대한 재판이 따로 열린다.

    임 전 차장이 기피신청을 한 이유는 재판부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예단을 갖고 있고, 이에 따라 불공정한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은 신청서에서 "윤 부장판사가 소송 지휘권을 부당하게 남용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했다"며 "어떻게든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 내지 투철한 사명감에 가까운 강한 예단을 가지고 극히 부당하게 재판 진행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은 이에 대한 근거로 재판부가 주 3회 재판 등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하면서 실무적 재판 운영을 하고 있으며 검찰이 부당하게 신청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법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접수된 제척·기피·회피 신청은 총 6496건에 달했지만 인용된 건수는 5건으로 인용률은 0.07%에 불과하다.

    박주현 법무법인 광화 변호사는 "재판부 기피신청의 경우 법원의 재량이지만 신청을 모두 받아줄 경우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안 받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예단·보복재판 지적 꾸준...이부진·임우재 사례도 있어”

    다만 이번 임 전 차장의 재판부 기피신청에 대해선 법원의 판단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시각이다. 법조계에서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정치적 손익이 개입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만큼 임 전 차장 입장에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 그동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과정은 ‘정치보복’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은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피의 정치보복”이라고 했다. 검찰은 지난 3월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를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했다며 기소하기도 했다.

    최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임 전 고문의 재판부 기피신청이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적이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 1월 대법원 특별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은) “해당 소송의 재판장이 과거 장충기 전 삼성미래전략실 사장과 연락을 주고받은 점 등을 고려할 때 불공정 재판을 의심할 객관적 사정이 있다”며 임 전 고문의 재판부 기피신청을 인정했다.

    이헌 한변 공동대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은 재판부의 예단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임 전 차장이) 이번 사건에 대해 예단이 개입됐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법원의 재판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이 정말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