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벤처투자, 文 사위 회사 도와준 '케이런'에 280억 출자…'투자결정' 한국벤처 대표는 경제보좌관 '영전'
  • ▲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한국벤처투자 사옥. ⓒ정상윤 기자
    ▲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한국벤처투자 사옥. ⓒ정상윤 기자
    공기관인 한국벤처투자가 신생 중소 벤처캐피탈(VC) 업체인 ‘케이런벤처스’에 전체 민간투자액의 60% 이상에 달하는 수백억원을 출자한 것으로 드러나 특혜 의혹이 일었다.

    케이런벤처스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위 서모 씨가 재직했던 토리게임즈에 수천만원의 자금을 빌려준 회사 임원이 설립했다. 특히 케이런벤처스에 거액의 출자를 결정할 당시의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자금지원 후 청와대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벤처투자 출신이 청와대로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지는 ‘케이런벤처스’를 둘러싼 수상한 자금 흐름을 4회에 걸쳐 추적한다. 

    민간투자의 2/3를 케이런벤처스에 몰아줘

    27일 자유한국당 김종석의원실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2018년 한국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 선정 결과’ 등 자료에 따르면, 한국벤처투자는 지난해 5월 케이런벤처스에 280억원을 출자했다.

    출자 배경은 이렇다. 케이런벤처스는 2017년 12월 과학기술산업부 산하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하 연구개발재단)이 공모한 733억원 규모 ‘연구개발특구 제2차 일자리창출투자펀드(이하 일자리펀드)’에 포스코기술투자(이하 포기투)와 공동 운용사로 선정됐다.

    연구개발재단은 선정 조건으로 재단 출자금 200억원과 대전·광주·대구·경북 테크노파크(TP) 등 특구지역 TP 출자금 200억여 원을 제외한 300억여 원을 6개월 이내에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케이런벤처스의 자금력을 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케이런벤처스는 자금 확보를 위해 군인공제회와 과학기술인공제회 등에 출자 여부를 문의했으나 모두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자금 조달 능력과 펀드 운용실적 등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런벤처스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한국벤처투자다. 한국벤처투자는 2005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근거해 설립된 중기부 산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소속 기관으로, 벤처업계 등을 대상으로 벤처투자 재원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벤처투자 덕분에 ‘733억’ 펀드 운용사 조건 충족

    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벤처투자는 ‘2018년 1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민간제안분야에 총 450억원을 투자했다. 이중 280억원을 케이런벤처스에 투자했다. 총 투자금액의 62.22%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민간투자액의 3분의 2가량을 케이런벤처스에 몰아준 것이다. 이 투자로 케이런벤처스는 연구개발재단의 펀드 운용 조건을 충족했다.
  • ▲ 케이런벤처스 CI. ⓒ케이런벤처스 홈페이지 갈무리
    ▲ 케이런벤처스 CI. ⓒ케이런벤처스 홈페이지 갈무리
    업계에선 공기관인 한국벤처투자가 케이런벤처스에 수백억원을 지원한 것에 대해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케이런벤처스는 연구개발재단 펀드 운용사로 선정될 당시 설립된 지 2년밖에 안된 신생 벤처캐피탈인 데다, 회사 연혁이 짧다 보니 펀드 운용실적 등 자금 출자를 평가할 근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수백억원 규모의 펀드 운용사 선정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업력과 실적”이라며 “그런데 설립 2년 밖에 안된 케이런벤처스는 실적이나 경력을 내세울 만한 게 없다. 경력이 월등한 다른 업체도 많은데 굳이 케이런벤처스를 지원한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벤처투자 측은 “일반적으로 출자심의는 1차 서류와 2차 PT 등의 절차를 거쳐 기계적으로 진행된다”며 “2018년 1차 출자사업에서 심의된 자금 역시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절차와 다른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심사기준이라는 것이 시대상황이나 사업마다 달라질 수는 있지만 심의과정에서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벤처투자 측은 "심사 채점표 등 평가기준을 알려달라"는 본지의 취재 요청에 "공개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업계에선 “이해 안돼”... 한국벤처투자 “문제 없다”

    그렇다면 한국벤처투자는 왜 ‘신생' 벤처캐피탈인 케이런벤처스에 수백억원의 출자를 결정했을까. 본지는 한 달여간 한국벤처투자와 케이런벤처스 의 관계를 취재했다. 그 결과 석연찮은 정황을 발견했다.

    케이런벤처스의 설립자는 문 대통령의 사위 서씨가 재직했던 토리게임즈에 자금을 대여한 플래너스투자자문의 전 직원 A씨다. 플래너스투자자문은 2016~17년 재정 곤란을 겪던 토리게임즈에 8000만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문 대통령의 사위 서씨는 2016년 2월~2018년 3월 토리게임즈에 재직했다.

    토리게임즈의 주소지는 플래너스투자자문이 위치한 서울 역삼동 빌딩의 같은 층이었다. 토리게임즈는 2018년 11월 주소지를 역삼동 빌딩에 뒀다가, 수백억원의 정부 지원금 의혹이 제기된 이후 사명을 ‘제이알파게임즈’로 바꾸고 주소지를 삼성동으로 옮겼다.
  • ▲ 주형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뉴시스
    ▲ 주형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뉴시스
    A씨는 플래너스투자자문에서 핵심 VC 투자역으로 근무했다. 퇴사 후 2015년 10월 케이런벤처스를 차렸다. 케이런벤처스의 자본금은 6억원이며 2016년 기준 영업손실은 1억7000만원을 기록했다. 운용자산(AUM)은 300억원 수준이었으나 700억원 규모의 일자리펀드 운용사로 선정되면서 3년 만에 1000억원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토리게임즈와 법인 등기상 같은 주소지에 있던 벤처회사의 전 직원이 만든 창업투자사가, 설립 2년 만에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700억원대 펀드의 공동 운용사로 선정된 것이다.

    '출자 결정' 주형철 대표, 청와대 경제보좌관으로 '영전'

    케이런벤처스에 대한 출자를 결정할 당시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자금 지원 후 청와대 경제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긴 점도 미심쩍다. 경제를 총괄하는 자리에 IT 전문가가 임명된 탓에 인사의 '적절성' 여부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해당 인사를 ‘영전’으로 해석, "보은성 인사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지난해 2월부터 한국벤처투자 대표로 재직했던 주형철(55)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지난 3월 임명됐다. 한국벤처투자 대표의 임기는 3년이지만 청와대가 갑작스럽게 그를 불러들이면서 실제 재직기간은 1년여로 그쳤다.

    한국벤처투자가 케이런벤처스에 출자할 당시, 주 보좌관은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자 출자심의를 총괄하고 결정하는 출자심의회 의장을 맡았다. 그는 서울시 산하 서울산업진흥원 대표로 재임 중이던 2016년에도 케이런벤처스가 결성한 170억원 규모 VC 펀드 ‘케이런1호 스타트업투자조합’에 10억원을 출자해준 바 있다. 이 펀드는 케이런벤처스가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결성된 펀드다.

    주 보좌관은 컴퓨터공학 전공자로, 전임자인 김현철 보좌관과 달리 경제학분야에서 전문성이 확인된 바 없다. 그의 이력은 IT 기업의 임원으로 종사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벤처투자에서 청와대로 간 것은 주 보좌관이 처음"

    주 보좌관은 대전 대신고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네이버가 설립한 소프트웨어산업 전문 인재양성 기관인 NHN NEXT 교수, 서울산업진흥원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지난 4월부터는 대통령 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외교정책인 신남방정책을 책임지는 자리다.

    업계에선 한국벤처투자 대표가 청와대로 이직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벤처투자 전임 대표들은 대부분 증권업계나 학계 쪽에 있다"며 "청와대로 옮긴 것은 주 보좌관이 처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본지는 케이런벤처스에 대한 특혜성 의혹 관련 견해를 듣기 위해 주형철 경제보좌관실과 케이런벤처스 측에 수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