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회의 90분 만에 종료… 트럼프 “시 주석, 아름다운 편지 보내” 타결 여지 비춰
  • ▲ 지난 1월 말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 왼쪽이 중국, 오른쪽이 미국 대표단이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월 말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중 무역협상. 왼쪽이 중국, 오른쪽이 미국 대표단이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 미·중 무역전쟁 개전이 다시 하루 연기됐다. 미·중 양국 무역협상 대표단은 9일(이하 현지시간) 첫날 회의를 불과 90분 만에 마쳤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류허 중국 부총리,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회의는 10일 재개될 예정이다.

    1차 회의 종결 뒤 美 25% 관세 부과

    이런 가운데 미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은 10일 자정을 기해 중국산 제품 2000억 달러(약 235조2400억원)어치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관세 부과 대상은 10일 자정 이후 미국으로 발송된 제품이다. 그 이전에 미국으로 수출된 제품의 관세율은 10%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미·중 무역협상 회의가 끝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를 인상하기로 한 2000억 달러 이외에) 3250억 달러(약 382조2650억원)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서류작업을 오늘 시작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강한 압박에 중국 공산당 정부도 강경하게 맞섰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일 “중국 상무성은 이날 미국의 관세 추가 인상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면서 필요하다면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 관영매체들은 지난 9일부터 ‘대미 보복’이라는 표현을 계속 써대며 미국을 자극했다.

    트럼프 “어쩌면 시진핑에게 전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중국 공산당의 진심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기자들에게 “어젯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매우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어쩌면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지도 모르겠다”며 미·중 무역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여지를 남겼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협상을 타결하지 못할 경우 그 영향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일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DJIA)는 전일 대비 0.54% 하락했고, 나스닥과 S&P 500 지수도 각각 0.41%와 0.3% 하락했다. 영국은 0.87%, 프랑스는 1.93%, 독일은 1.69%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도 0.23% 하락했다.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 또한 각각 3.04%와 2.84% 하락했다.

    세계 주요 증시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인 이유는 ‘세계의 시장’이라는 미국과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 간 무역분쟁이 신흥공업국뿐 아니라 산업선진국들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 ▲ 지난 4월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류허 중국 부총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4월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류허 중국 부총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의 구매력 vs. 중국의 생산력…승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딱지를 붙이고 미국으로 수출되는 상품 가운데 대부분은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한국 브랜드다. 특히 미국 업체가 중국에 주문자표시부착방식(OEM)으로 만들어 가져가는 상품이 가장 많다. 이런 상품은 이베이와 아마존 등에서 판매되고, 제조사의 주식은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소유한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에 수출되는 품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보도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0일 자정부터 25%의 관세가 부과되는 중국산 제품은 모두 5700여 가지로, 가구·가전·식료품· 생활용품 등 미국인이 사용하는 소비재의 거의 대부분이다.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버티려는 자신감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모르는 걸까. 아니다. 그는 미국이 가진 구매력과 금융계 표준이 얼마나 영향력이 강한지 잘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기업은 물론 외국기업들에 “미국 내에 일자리를 만들라”고 종용하는 것도, 국제사회와 별개로 북한과 이란에 대해 독자제재를 가하는 것도 이런 힘을 잘 알기 때문에 취하는 조치다.

    다만 중국은 규모가 다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쉽지 않은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관세 말고도 지적재산권, 비자 발급, 수출금지품목 지정, 북한과 이란 제재를 통한 ‘세컨더리 보이콧’, 미국이 부담하는 중국발 상품 운송료 등 수십 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다만 한꺼번에 모든 수단을 썼다가는 ‘무역전쟁’이 아니라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타결되려면 실리와 체면 나눠 갖는 수밖에

    이 같은 배경 위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힘겨루기를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5월10일이 되면 미·중 무역분쟁이 타결되고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투로 말했다. 그러다 지난 5일 갑자기 “중국이 약속을 어겼다”면서 10일부터 대중국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리겠다는 트윗을 올렸다. 이튿날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중국이 지적재산권 문제를 비롯해 기존의 합의를 무시하고 새로운 협상을 요구했다”며 관세인상을 예고했다. 그렇게 미·중 무역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태도를 보면 협상 타결의 여지도 있어 보인다. 류허 부총리가 9일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번에는 성의를 갖고 미국을 방문했다”면서 “최종적으로는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한 점이나 시진핑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점, 트럼프 대통령이 9일 “협상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밝힌 점은 양국이 합의점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물론 중국 관영매체들이 ‘보복’ 운운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것을 근거로 “미·중 무역전쟁이 터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통치 논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실리’가 아니라 ‘체면’과 ‘권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번 미·중 무역협상은 미국은 ‘실리’를, 중국은 ‘체면’을 챙기는 방식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 공산당이 ‘비이성적 의사결정’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