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공부해 국가직 공무원 됐는데, 지방직으로 가라니… 처우 악화 불가피" 성토
  • ▲ '소방관 국가직 전환 요구'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는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청와대 유튜브 캡처
    ▲ '소방관 국가직 전환 요구'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는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청와대 유튜브 캡처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에 경찰조직 내부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소방은 발전하는데 경찰은 후퇴한다’는 게 내부 불만의 요지다.

    29일 경찰과 청와대 등에 따르면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지난 24일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대해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며 “경찰은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전환하는 게 당연하다”고 답했다.

    靑 “소방직, 국가직 전환 필요”

    정 센터장은 또 “(정부가) 자치경찰제를 하기 위해 경찰을 지방으로 보내려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경찰과 소방은 다르다. 경찰은 권력기관이고, 소방은 재난대응기관이다. 경찰 업무는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정 센터장의 답변 자리에는 정문호 소방청장과 정은애 소방관도 함께했다. 특히 정 소방관은 지방교부세의 ‘한계’를 지적하며 ‘국가직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 소방관은 “소방청 독립 후 정부 노력으로 소방안전교부세를 통해 노후장비 교체나 개인장비 지급은 상당히 개선됐는데 여전히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초동 지휘기관의 센터장인 제가 지휘는 못하고 불을 직접 끄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특히 예산이 적은 지방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소방관의 발언에 일선 경찰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방교부세에도 지방의 일선 소방서 상황은 열악하다”는 정 소방관의 증언에 비춰볼 때 “지방교부세를 배부하면 자치경찰의 처우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청와대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30대 경찰관 최모 씨는 “소방관들의 국가직 요구만 봐도 지방직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지 않으냐”며 “초기에는 국가예산으로 자치경찰을 운영한다 해도 결국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만큼 처우도 국가직보다 안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일선 경찰관들이 ‘소방만 중요하고 경찰은 중요하지 않으냐’며 볼멘소리를 한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일선 경찰 “지방직 전환, 처우 악화 우려”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도입한 ‘자치경찰제 도입안’에 따르면, 초기에는 자치경찰을 국가직 경찰처럼 대우해 국가 재원으로 운영한다.

    하지만 2022년 이후에는 완전히 지방직으로 전환해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한다. 대신 ‘자치경찰교부세’를 활용해 지역 간 치안 불균형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교부세란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을 보존하고, 자치단체 간 재정격차를 조정하기 위해 국가가 자치단체에 교부하는 자금이다.

    자치경찰제 도입안에서 ‘국가경찰에서 자치경찰로 전환될 4만3000여 명(전체 경찰관의 36%)의 신분은 2022년까지 전원 지방직으로 전환한다’는 구절도 논란이다.

    지구대 생활을 오래 했다는 이모 경찰관은 “힘들게 공부해서 국가직 경찰공무원이 됐는데 지방직으로 가라고 하는 것을 좋아할 경찰이 어디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소방청장과 일선 소방관만 있는 자리에서 청와대가 굳이 자치경찰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얘기하며 분란을 만들어야 했느냐”며 “경찰 얘기를 그 자리에서 하려면 경찰청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찰 한 명이라도 불러 우리 목소리도 들어줬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 ▲ 경찰청 전경ⓒ뉴시스
    ▲ 경찰청 전경ⓒ뉴시스

    자치경찰의 업무범위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정부의 ‘자치경찰제 도입안’을 보면 자치경찰은 해당 자치단체의 기본적 치안업무와 민생밀착형 단속, '여성·청소년'과 관련된 범죄에 관한 수사, 교통사고 조사·단속 등을 맡게 된다. 형사·수사·정보·보안·외사와 관련된 범죄 등은 국가경찰이 맡는다. ‘무늬만 경찰’로 전락하게 되는 셈이다.

    “무늬만 경찰, 자부심 떨어질 것”

    40대의 김모 경찰관은 “제주도에 있는 자치경찰 동료 하나는 ‘네가 뭔데 단속하느냐’ ‘니들은 경찰도 아니잖아’라는 소리를 계속 듣는다고 한다”며 “수사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경찰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아예 자치경찰을 하려면 미국처럼 수사권이 완전히 이양된 상태에서 해야지 일부만 주겠다는 것은 ‘사탕발림’일 뿐”이라고 성토했다.

    2017년 서울시와 한국정책학회가 제주자치경찰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72%가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고 답했고, 89%가 ‘국가경찰이 가진 ‘일반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자치경찰도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제주도의 자치경찰은 제주특별법에 따라 일반범죄에 대한 수사권이 제한되고, 환경·산림·공중위생 등 22개 분야 69개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서만 수사할 수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청와대가 ‘경찰은 업무에 따라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분리될 수 있다’고 답변한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며 항변했다.

    “국가직-지방직 경찰 업무 분리 힘들어”

    일선 지구대 경찰관 최모 씨는 "청와대가 말한 것처럼 경찰의 업무 분리는 쉽지 않다"며 "자치경찰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집회나 시위에서의 질서유지 부분은 교통계뿐만 아니라 정보계와 경비계 등 여러 부서의 공조가 필요하고, 성폭행 같은 강력사건도 형사계와 수사계의 협조가 이루어져야 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건 하나만 두고 자치경찰 사건인지 국가경찰 사건인지 구분이 모호해 관할권에 대한 경찰 내부의 분란만 계속 가중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경찰관은 "경찰권력을 분산시키려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라며 "단순히 경찰조직을 분리하기 위해 경찰행정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치안과 범죄수사를 더 힘들게 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40대 경찰관 이모 씨는 "신고가 들어와 자치경찰이 출동했는데 국가경찰이 해야 할 일이면 경찰이 다시 경찰을 불러야 하는 촌극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경찰관은 "자치경찰제 도입안에 따르면 '112 출동 시 현장 초동조치 공동 대응'이라고 되어 있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모두 출동해야 한다"며 "해당 사건을 어느 쪽이 처리해야 하는지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는 경찰력 낭비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