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에 원조 요청… 지원 못받을 경우, 한국에 손 벌리려 정상회담 요청할 것"
  • ▲ 지난 16일 평양을 방어하는 공군 1017부대를 찾은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6일 평양을 방어하는 공군 1017부대를 찾은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은 현재 ‘포스트 하노이 전략’이라며 중국과 러시아를 우군으로 만드는 작업에 집중하며, 이것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만 한국에 손을 내밀고 4차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지난 21일 자신의 블로그 ‘주간북한동향 분석’에서 “김정은이 ‘포스트 하노이 전략’ 실현 기한을 올해 상반기까지로 정하고, 그동안에는 한국과 미국에는 강경 모드, 중국과 러시아에는 다각도로 접근하는 ‘우군 확보’ 전술로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5월 시진핑 방북설 퍼져”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김창선 부장 일행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내 푸틴과 정상회담을 서두르고, 중국 관함식에 인민군 해군사령관을 파견한 일, 평양 곳곳에서 학생들의 집단체조 연습이 시작되고, 북한주민들 사이에 “5월에 시진핑이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태 전 공사가 말한 ‘포스트 하노이 전략’이란 “미국과의 3차 정상회담을 성공시켜 핵무기와 미사일은 계속 보유하면서 제재 일부를 해제시키는 ‘핵보유국 굳히기’ 전략”을 뜻한다.

    북한은 지금 한국이나 미국의 대화 제의에 쉽게 응하면 제재 해제에 매달리는 자신들의 전략적 의도가 노출될 수 있다고 보고 “장기전으로 가겠다”며 일부러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은이 ‘장기전에 대비한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자신은 군사적 활동을 하고, 최선희와 권정근을 앞세워 미국을 비난하는 모습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태 전 공사는 해석했다. 북한 선전매체들이 4·27 판문점선언이나 9월 평양선언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도 한국과 대화에는 쉽게 응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 ▲ 지난해 5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전 시진핑을 찾아간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5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전 시진핑을 찾아간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푸틴과 만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시험을 계속 중단하는 조건으로 올해 말까지 추방 예정인 수만여 명의 북한 근로자들에 대한 체류 연장을 얻어내고, 5월 중에 시진핑의 방북을 성사시킨다면 6월까지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푸틴과 시진핑이 이렇게 움직이면 김정은에게 ‘산소호흡기’를 붙여주는 셈이어서, 한국과 미국을 향한 북한의 강경 모드는 올 연말까지 갈 수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해주지 않는다면 올 하반기에는 한국에 손을 벌리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게 태 전 공사의 분석이다.

    또 “지금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좋은 관계’를 비치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아직 경제적 지원 약속을 받지 못한 상태여서 일단 미국과 협상 채널은 계속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일성이 '자력갱생' 주장했던 1956년 언급한 점에 주목 

    이와 함께 최근의 최고인민회의에서 있었던 개헌이 김정은을 국가수반으로 명기하는 내용이 아니라 김정은이 위원장인 국무위원회가 최고인민회의까지 감독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과거에는 ‘공화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리돼 있었지만 이제는 그 장벽을 허물어 버렸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중국과 러시아에 메시지를 보낼 때는 자기 이름으로, 짐바브웨와 콩고 대통령에게 축전과 위로문을 보낼 때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최룡해 명의로 보내게 한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태 전 공사는 또 북한 선전매체가 “위대한 당을 따라 총진격 앞으로”라는 논설을 통해 현재 상황을 북한 사상 가장 불안정했던 1956년과 비교한 점에도 주목했다. 1956년은 김일성이 동유럽을 순방하는 사이 중국 마오쩌둥의 지시를 따르는 ‘연안파’, 스탈린을 지지하는 ‘소련파’ 등이 권력을 뒤집으려다 숙청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해다. 

    이로 인해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지 못한 김일성은 ‘자력갱생’과 ‘천리마운동’을 벌여 가까스로 난국을 타개했다. 태 전 공사는 “이런 때가 지금 북한상황과 비슷하다면, 내부사정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