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前금융위원장, 유럽 은행 사례 언급 "BNP 파리바, 이란·쿠바 거래로 10조 과징금"
  • ▲ 프랑스 파리 이탈리앙가에 있는 BNP 파리바 본점 건물. ⓒ구글 스트리트 화면캡쳐.
    ▲ 프랑스 파리 이탈리앙가에 있는 BNP 파리바 본점 건물. ⓒ구글 스트리트 화면캡쳐.
    “(문재인 대통령이 은행들을 앞세워 남북경협을 밀어붙인다면) 일차적으로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게 될 것이다. 美달러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이는 파산이나 다름없다. 프랑스 BNP 파리바 은행은 2014년 이란·쿠바 등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국과 금융거래를 했다고 89억 달러(한화 약 10조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조선일보’가 지난 29일 보도한 신제윤 前금융위원장의 인터뷰 가운데 일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보다 미국의 독자 제재가 더욱 파괴력이 크다는 설명이었다. 신제윤 前금융위원장의 말은 지난 12일 美재무부가 국내 시중은행 준법감시인(부행장급)들과 컨퍼런스 콜을 갖고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말라”고 한 경고, 19일 국제 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총회에서 대북제재 위반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 것을 무시했을 때 벌어질 충격파에 대한 설명이었다.

    한국 금융기관의 경우 2016년 3월 IBK기업은행 뉴욕지점이 돈세탁 방지 등에 관한 규정(준법감시제도 미비 등)을 위반했다가 美뉴욕주 금융청에 적발됐고, 2017년 1월에는 NH농협 뉴욕지점이 똑같은 규정을 위반한 바 있다. 이 가운데 NH농협은 美정부로부터 1,100만 달러(한화 약 125억 3,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유럽계 은행들이 미국에게 부과 받은 과징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지금까지 미국의 독자 제재를 어기다가 벌금 또는 과징금을 물었던 유명 금융기관은 어디고, 규모가 큰 과징금은 어느 정도였을까.

    신제윤 前금융위원장이 언급한 프랑스 BNP 파리바의 과징금 89억 7,000만 달러(한화 약 10조 2,200억 원)는 2014년 6월에 부과된 것이었다. BNP 파리바가 미국의 이란·쿠바 제재를 무시하고 이들과 금융거래를 했다가 적발됐다. 美재무부는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했다”며 제재를 가했고 2015년 5월 과징금 액수가 확정됐다.

    그 다음으로 큰 금액은 2012년 12월 영국계 HSBC에 부과된 벌금 19억 달러(한화 약 2조 1,650억 원)와 과징금 6억 5,000만 달러(한화 약 7,400억 원)였다. 美재무부는 HSBC가 이란 등 제재 대상국과 수백만 달러 이상의 금융 거래를 하면서 미국의 금융전산망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이 같은 벌금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美제재 위반했다 걸린 유럽계 은행 ‘조’ 단위 벌금·과징금

  • ▲ 미국의 제재를 위반할 경우 막대한 벌금과 과징금을 매기는 것은 일본 은행도 피할 수 없었다. 미쯔비시 UFJ은행은 2013년 6월 이란, 수단 등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美정부에게 2억 5,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연합뉴스-EP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국의 제재를 위반할 경우 막대한 벌금과 과징금을 매기는 것은 일본 은행도 피할 수 없었다. 미쯔비시 UFJ은행은 2013년 6월 이란, 수단 등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美정부에게 2억 5,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연합뉴스-EP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5년 3월에는 독일계 코메르츠 방크가 이란·수단과 금융 거래를 했다가 14억 5,000만 달러(한화 약 1조 6,500억 원)의 벌금을 물었다. 2015년 10월에는 프랑스계 크레디 아그리콜이 이란, 미얀마, 수단과 거래한 사실이 드러나 8억 달러(한화 약 9,100억 원)의 벌금을 물었다. 2016년 6월에는 네델란드계 ING 은행이 쿠바와 이란의 대규모 자금 이체를 도운 사실이 드러나 6억 1,900만 달러(한화 약 7,050억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2012년 8월에는 영국계 스탠다드 차터드 은행이 제재 위반으로 6억 6,700만 달러(한화 약 7,600억 원)를, 영국계 스코틀랜드 로얄 은행(RBS)의 네델란드 계열사인 ABN 암로가 2010년 이란 제재를 위반해 5억 달러(한화 약 5,700억 원)의 벌금을 美연방정부에 냈다.

    미국의 제재를 어겼다는 이유로 벌금을 문 은행 가운데는 일본계도 있다. 미쯔비시 UFJ 은행은 2013년 6월 이란, 수단, 미얀마 등과 거래를 한 것이 드러나 2억 5,000만 달러(한화 약 2,850억 원)의 벌금을 냈다.

    사례를 보면 미국의 독자 제재를 어기고 거액의 벌금을 문 금융기관들 가운데 미국계가 안 보인다. 그러나 미국계 금융기관은 정부의 제재를 위반할 생각을 않는다. 미국 은행들은 또한 다른 이유로 상상을 초월하는 벌금을 낸 경우가 많다. 美금융감독당국은 2013년 11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JP모건이 불량한 자산유동화증권(MBS)을 “우량하다”고 속여 팔았던 사실을 찾아낸 뒤 130억 달러(한화 약 14조 8,0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JP모건은 이를 납부했다.

    美정부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미국 금융기관들의 불법적 행위들을 조사, 2010년부터 대형 투자은행들에게 엄청난 과징금과 벌금을 부과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티그룹, 웰스파고, 골드만 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 등이 2015년까지 정부에 낸 벌금과 과징금이 930억 달러(한화 약 105조 9,000억 원)을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美금융기관은 수십 조 벌금 내기도…한국 금융기관 못 견딜 충격

  • ▲ KEB하나은행, IBK기업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의 본점 모습(기사 본문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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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거액의 벌금과 과징금을 내고도 미국과 유럽, 일본 금융기관이 버틸 수 있는 것은 그 규모 덕분이다. JP모건의 자산은 2조 달러(한화 약 2,277조 6,000억 원)를 넘고, BNP 파리바는 1조 9,600억 유로(한화 약 2,539조 9,600억 원), HSBC 홀딩스는 2조 5,210억 파운드(한화 약 3,669조 5,900억 원), 바클레이스는 1조 1,330억 파운드(한화 약 1,647조 9,260억 원), 미쯔비시 UFJ 금융그룹은 286조 1,497억 엔(한화 약 2,891조 6,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국내 최대 규모라는 KB금융그룹은 총자산이 436조 7,850억 원, 신한금융그룹은 395조 6,800억 원, 하나금융그룹은 348조 1,780억 원 가량이다. 최근 미국의 독자제재 위반 소문이 나도는 몇몇 금융기관들은 이보다도 규모가 작다.

    신제윤 前금융위원장은 인터뷰에서 “국내 은행들이 북한과 거래한 단서가 미국에 포착되었다기 보다는 약간의 징후가 있었던 것 같다”며 “미국 측은 ‘우리가 지켜보고 있고, 만약 그렇게 하겠다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경고의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이 미국의 독자 제재를 위반했다가 적발될 경우 수천억 원의 벌금을 맞아도 어떻게든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위험한 것은 달러 금융체제에서 쫓겨나는 일이다. 이 경우 그 후폭풍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날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