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합의서 1조 2항 "해안포 함포 덮개 씌우고 포문 폐쇄"... 한국 손해 뚜렷
  • ▲ 북한 해안포 진지의 모습ⓒ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한 해안포 진지의 모습ⓒ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평양공동선언’이 있은 직후 송영무 국방장관과 남관철 北인민무력상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이하 남북군사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에는 육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양측이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남북군사합의서를 가리켜 “남북 간에 사실상 불가침 합의를 한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합의서 제1조 2항 “쌍방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했다”는 대목을 보면 정의용 실장의 평가가 사실로 보인다. 이 가운데서도 “해상에서는 서해 남쪽 덕적도 북쪽부터 북한 초도 남쪽, 동해 속초 북쪽부터 북한 통천 남쪽까지의 바다에서는 포 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대목 뒤에는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이 내용을 글자대로 풀이한다면, 북한군이 연평도 포격 때 사용했던 각종 해안포의 동굴 진지를 폐쇄하고, 한국 해군은 여기에 대응하는 무기의 포구와 포신에 덮개를 씌운다는 의미로 보인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도발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의 해안포 진지 폐쇄 및 포구·포신 덮개 착용은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북한은 올 초부터 해안포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서울신문’은 군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판문점 선언’ 이후 해안포 진지를 거의 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정치적 선언이 있거나 남북관계의 긴장도를 높일 필요가 있을 때면 해안포 진지를 열고 포를 바깥으로 꺼냈는데 4월 말부터는 이런 행동이 사라졌다는 설명이었다. 지난 6월에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서북도서와 접한 서해안 일대 해안포를 철수시키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해안포 문제는 서해지역 군사적 긴장 완화의 핵심 조치 가운데 하나”라며 중요한 의제라고 설명했다.

    즉 이번 남북군사합의서에 “서해완충수역 일대의 해안포 포구를 막겠다”는 북한 측의 약속은 이미 계속 준비해오던 일의 연장으로 보인다.

    북한 해안포, 舊소련서 도입한 구형

    북한은 백령도를 마주보고 있는 황해도 장산곶, 옹진반도 일대에 76mm와 130mm 구형 해안포, 100mm 평사포, 122mm 평사포 등을 1,000여 문을이상 동굴 속에 배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76mm 해안포는 위력이 떨어져 지난 수 년 사이에 100mm 급 평사포로 교체됐다는 소식도 있다. ‘M-1955’라는 나토 코드가 붙은 100mm 평사포는 舊소련제로 사거리 21km, 분당 발사속도는 최고 7발이다. 그러나 구형이다 보니 포 1문을 운용하는 인력이 8명이나 된다. 북한은 ‘M-1955’ 100mm 평사포를 개량한 뒤 양산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 서해 방어의 핵심전력 '윤영하'급 고속함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해 방어의 핵심전력 '윤영하'급 고속함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1995’ 122mm 평사포는 사거리 24km, 분당 발사속도는 최고 6발이다. 운용 인력은 10명이다. 1940년대 말 舊소련에서 개발한 것으로, 주로 동맹국들에게 공여하던 무기다. 122mm 평사포의 가장 큰 특징은 장갑 관통능력이 우수하다는 점. 1km에서 185mm의 강철 장갑을 뚫을 수 있어 대형 수상함에는 먹히지 않지만 고속함이나 소형 초계함에는 충분히 위협이 된다. 북한군은 122mm 평사포 가운데 일부를 차량에 견인해 다니며 사용한다.
     
    ‘M-46’ 130mm 평사포는 사거리가 27km에 달한다. 다른 해안포에 비해 비교적 신형이어서 운용인력은 7명이다. 분당 발사속도는 최고 6발이다. 1954년 소련군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어 많은 친소국가들에 공여됐다. 한때는 적 포병을 타격하는 용도로 쓰기도 했다. 이상은 舊소련의 원형 모델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중국이 자체적으로 개조한 야포의 경우에는 분당 발사속도와 장갑 관통력, 최대 사거리 등이 대폭 향상된 포들도 있다. 이를 북한군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군은 육상에 서북도서 방위사령부 소속인 해병대의 K-9 자주포, 2013년부터 배치된 이스라엘제 ‘스파이크 ER’ 미사일, 육군에서 파견한 다련장 로켓(MLRS) ‘천무’ 등이 버티고 있고, 해상에는 백령도를 전진기지로 하는 ‘윤영하’급 고속함들이 배치돼 있다.

    서해서 남북 전력 양적 축소하면 한국 손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또는 서북도서에서 북한의 도발이 있으면, 일단 해병대와 육군의 MLRS와 스파이크 ER 미사일, K-9 자주포가 대응을 하고, 해상 도발은 일단 ‘윤영하’급 고속함들이 차단한 뒤 신형 호위함(FFV) ‘인천’함이 후방 지원을 맡는다. 두 종류의 함정 모두 대함미사일까지 탑재하고 있어 적의 고속정·어뢰정이나 공기부양정 차단 및 제거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이처럼 서북도서를 위협하는 북한군 전력은 선제 기습공격이 아니라면 우세를 점할 수 없는 전력이다. 반면 한국군은 적의 선제공격을 막아낸 뒤 반격까지 할 수 있도록 훨씬 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남북이 동일한 기준으로 무력사용을 금지한다면 한국 측이 손해다.

    그래도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는 말대로 했을 때 이것이 군사적 충돌 때 무력화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해안포나 함포의 포구와 포신에 덮개를 씌우고 용접해 막아버리지 않는 이상, 해안포 진지를 완전히 매몰시켜 폐쇄하지 않는 이상 무력 분쟁 때는 즉각 사용하기 때문에 이 표현은 ‘상징적 의미’가 더 강하다고 풀이할 수 있다.